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팀 윈튼씨 초상화로… 아치볼드 103년 역사의 12번째 여성
시드니에 거주하는 여성 미술작가 로라 존스(Laura Jones)씨가 소설작가이자 환경보호 활동가인 팀 윈튼(Tim Winton)씨의 초상화로 ‘2024년 아치볼드 프라이즈’(Archibald Prize 2024)를 수상했다.
NSW 주립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AGNSW)이 주관하는 아치볼드 프라이즈는 10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호주 최고 권위의 초상화 공모전으로 꼽힌다. 존스씨는 동 공모전이 시작된 후 올해로 103년이 되는 오랜 역사에서 12번째 여성 수상자로 기록됐다. 지난해에는 시드니 기반의 여성 작가 줄리아 거트만(Julia Gutman)씨가 11번째 여성 수상자가 된 바 있다. 12명의 여성 수상 작가들 가운데는 아치볼드 최초의 여성 및 최연소 우승자인 노라 헤이슨(Nora Heysen. 1938년 수상), 두 차례(2008년, 2013년) 이 상을 차지한 델 캐드린 바턴(Del Kathryn Barton)씨가 있다.
지난 6월 7일(금) AGNSW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존스씨는 “이 순간이, 더 많은 어린 소녀들에게 호주 미술계에서 경력을 쌓는데 영감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렸을 때부터 쿠라종(Kurrajong. 시드니에서 북서쪽으로 75km 거리, 블루마운틴의 낮은 경사면에 자리한 작은 타운)에서 자라며 예술가가 되는 꿈을 꾸었고, 운이 좋게도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면서 “그 어떤 행사보다 오늘은 제가 완전히 미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는 말로 아치볼드 수상의 기쁨을 표현했다.
작가 윈튼씨의 초상화 작업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존스씨는 “윈튼씨와 환경에 대한 그의 옹호에 빛을 주고자 그를 묘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프리맨틀(Fremantle. Perth 남쪽에 있는 항구이자 관광지로, 광역 퍼스의 일부)에 있는 윈튼씨를 찾아갔을 때, 두 사람은 판화와 정치적 행동주의, 그리고 환경 이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존스씨는 그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있어 모노 타입(monotype. 평평한 시트에 페인트를 바르거나 잉크를 인쇄하여 일반적으로 회화적인 효과를 내는 방법)과 같은 유화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녀는 작품공모 때 제출하는 설명에서 “잉크가 종이로 스며드는 것처럼 유화가 캔버스를 가로질러 번지도록 하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썼다.
존스씨는 이 방식에 대해 “윈튼씨와 이야기했던 주제의 느낌을 보여주고자 그의 초상에 풍경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윈튼씨는 예술의 목적에 대해 ‘설득하는 게 아니라 매혹시키는 것’이라 말했다”면서 “나는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작품이 그것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9년 극작가 니키아 루이(Nakkiah Lui), 2022년 저널리스트 브룩 보니(Brooke Boney), 지난해에는 배우 클라우디아 카반(Claudia Karvan)의 초상화로 세 차례 아치볼드 최종 결승에 오른 바 있는 존스씨는 올해 네 번째 결승 진출에서 최종 수상의 기쁨을 맛봤다. 또한 그녀는 올해 공모에서 ‘Sliding doors’라는 자화상으로 ‘특정 주제, 장르 그림 또는 벽화 프로젝트’에 수여하는 ‘술만 프라이즈’(Sulman Prize)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아치볼드 공모에는 편집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줄리안 어샌지(Julian Assange), 영화 ‘Saltburn’ 주연배우 제이콥 엘로디(Jacob Elordi)의 초상화를 포함해 1,005편이 출품됐으며 이 중 57개 작품이 최종 결승에 올랐다.
이 가운데 존스씨의 초상화 작품은 동료 예술가 토니 알버트(Tony Albert), 캐롤라인 로스웰(Caroline Rothwell)씨를 포함한 AGNSW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우승작’이라는 선택을 받았다.
한편 이날(6월 7일) 아치볼드 우승 발표에 이어 오후에 공개한 ‘Sulman Prize’(상금 4만 달러)는 남부호주(South Australia) 주 북서부 먼 내륙에 있는 원주민 구역 ‘Aṉangu Pitjantjatjara Yankunytjatjara’(APY Lands) 소재 ‘Tjala Arts’ 소속의 원주민 장로(Elder) 화가 나오미 카추리니(Naomi Kantjuriny)씨의 ‘마무’(Mamu)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이 작품은 ‘좋은 영혼과 나쁜 영혼’을 표현한 것이다.
또 풍경화 작품(호주의 자연을 소재로 한)에 수여하는 ‘윈 프라이즈’(Wynne Prize. 상금 5만 달러)는 ‘miwatj’라는 작품을 출품한 원주민 예술가 자캉구 유누핑구(Djakaŋu Yunupiŋu)씨가 차지했다. ‘miwatj’는 원주민 욜릉 마타(Yolŋu Matha) 부족의 언어로 ‘해 뜨는 쪽’(sunrise side)을 뜻한다.

아울러 매년 아치볼드 프라이즈에서 AGNSW의 심사위원회가 선정하는 3개 시상과 달리 출품작을 패킹(액자로 제작)하는 이들이 뽑은 ‘Packing Room Prize’(상금 3,000달러)는 지난달(5월) 마지막 주 공개됐으며, 올해 패킹룸 상은 원주민 욜릉구(Yolngu) 부족 출신 래퍼이자 댄서, 배우인 Baker Boy(본명은 Danzal James Baker)의 초상화를 그린 멜번의 거리 예술가 매트 아드네이트(Matt Adnate)씨가 가져갔다.
예술에서의 ‘환경’ 주제
로라 존스씨는 시드니 서부, 블루마운틴(Blue Mountains) 북서쪽의 쿠라종(Kurrajong)에서 자랐으며 하이스쿨 때, 이번 아치볼드 초상화 대상인 팀 윈튼(Tim Winton)씨의 1992년 마일즈 프랭클린 문학상(Miles Franklin Literary Award. 호주인의 삶을 다룬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호주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 수상작 ‘Cloudstreet’를 공부했다.
오랫 동안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존스씨는 2016년, 아티스트 레시던시(artist’s residency. 예술가가 새로운 프로젝트 작업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임시 기간을 일컫는 말로, 일부 작가들은 특정 지역에서 이런 시간을 갖곤 한다)의 일환으로 퀸즐랜드(Queensland) 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 지역에서 해양 환경에 의해 영향 받는 산호초를 주목한 바 있으며, 이듬해인 2017년 환경보호 행사에서 많은 작가들을 만났다. 그녀가 QLD에서 보낸 레시던시는 그해(2017년) 시드니 올슨 갤러리(Olsen Gallery in Sydney)에서 가진 그녀의 단독 전시회 ‘Bleached’의 기초가 됐다.
존스씨는 지난해 서부호주, 닝갈루 리프(Ningaloo Reef, Western Australia)를 구하기 위한 팀 윈튼씨의 ABC 방송 다큐멘터리 ‘Ningaloo Nyinggulu’를 시청했다. 이 다큐 작품과 함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및 이에 대한 정부의 무반응에 도전하도록 촉구하는 윈튼씨의 연설은, 그녀에게 윈튼씨의 초상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존스씨는 곧바로 아치볼드 출품작들을 살펴보았고,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 중 윈튼씨의 초상화는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이어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의 초상화를 작업하는 것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출품작 제출에서 설명했다.
팀 윈튼씨와 존스씨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 유대감이 만들어졌다. 존스씨는 시상식 연설에서 “그는 닝갈루 리프를 구하고자 열심히 싸웠으며, 그 산호초는 ‘우리가 잠시 멈추고 그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아치볼드 수상자 발표 후 윈튼씨가 전화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면서 “그는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는 농담을 했다”는 말도 전했다.
이어 존스씨는 수상 연설 마지막으로 “그도 그렇고, (환경을 위해 행동하는)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가 모두 환경을 위해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저명 작가인 팀 윈튼씨는 특히 해양 보존을 위한 아주 열성적인 활동가이기도 하다. 2022년 퍼스 페스티벌(Perth Festival) 폐막 연설에서 그는 호주 예술 산업이 화석 연료 회사의 후원을 받는 것을 비판했었다.
이후 그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문에 대해 “엄밀히 말해 은행들, 수퍼 펀드, 투자자 그룹도 화석연료 기업 투자에서 철수하고 있다”고 언급한 뒤 “예술업계나 지역사회 단체들이 은행가와 투자자들에 비해 상상력이 부족하고 도덕적 인식이 그에 미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말로 예술가들이 기후변화에도 시선을 두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 Archies 2024 결승작
-총 1005개 출품작 가운데 57편 선정
-결승에 오른 작가 중 원주민 화가 4명
-여성 29명, 남성 28명
-25명 작가는 올해 처음으로 결승에 오름
-57편 결승작 중 5편은 자화상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