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헬스케어 플랫폼이 빠르게 발전하며 의료 현장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기업 히포크라틱 AI(Hippocratic AI)는 다양한 의료 분야에 특화된 AI 헬스케어 보조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AI들은 환자와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다양한 의료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카를로스(Carlos)는 독감 예방접종에 대해 상담하고, 환자의 상황에 맞춰 장단점을 설명한 뒤 가까운 병원 예약까지 도와준다.
줄리아(Julia)는 수술 후 회복 상태를 점검하는 AI로, 환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AI임을 밝힌 후 실시간 대화를 통해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안내한다.
이 AI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도하게 친절한 어조와 특정 단어를 강조하는 말투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환자가 AI와 소통하며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호주 의료계도 AI 도입 증가
AI 플랫폼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는 미국과 달리, 호주에서는 도입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미 많은 병원과 의료 기관에서 AI 챗봇을 이용해 예약을 받고 있으며, 콜센터에서도 AI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다.
AI의 의료 분야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의료진 부족과 고령화 사회로 인해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AI는 이미 전화 상담, 의료 영상 분석, 초기 정신 건강 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일부 요양 시설에서는 로봇이 입주자들의 생활을 돕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몇몇 연구에서는 AI가 초기 암을 기존 진단 방식보다 훨씬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원격 의료 지원을 통해 시골이나 외딴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가상 병원(Virtual Hospital)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 분야에서도 AI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의료진 보조하는 AI, 의료 서비스 질 높인다
호주 암 연구소(Cancer Research Institute) 역시 AI를 활용한 의료 영상 분석이 매우 유망하다고 평가했다. 연구소는 “AI는 의료 혁신의 중심에 있으며, 신중한 도입과 윤리적 접근이 전제된다면 백신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의료 혁명을 이끌 수 있다”고 밝혔다.
AI는 단순 반복적인 행정 업무를 대신 처리함으로써 의료진이 환자 진료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부 역시 2024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와 조산사들의 처방 및 진료 권한을 확대하며 1차 의료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AI, 의료진의 시간 절약에도 기여
시드니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마르코 라프토풀로스(Marco Raftopoulos) 박사는 AI 덕분에 진료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환자에게 AI 메모 작성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설명한 후, 환자의 동의를 받으면 AI가 진료 내용을 기록한다. 이 AI는 의료 기록을 정리하고, 중요한 키워드를 강조하며, 진료 후 의뢰서 작성까지 돕는다. 이를 통해 라프토풀로스 박사는 환자와의 상담 후 바로 다음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환자의 말을 놓칠 수도 있지만, AI는 모든 대화를 기록하고 분석할 수 있다. AI의 도움으로 시간 관리를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환자 진료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 AI 시스템은 호주 스타트업 메도우 헬스(Medow Health)가 개발했다. 창립자인 조엘 프라이버그(Joel Freiberg)는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문 분야별 AI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시드니에서 폐 전문의로 일하시는데, 많은 전문의들이 환자 기록을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의료진이 업무 부담을 줄이고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AI를 개발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보안 문제, 해결 과제 남아
AI가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 환자 정보 보호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호주의 주요 난임 치료 병원인 지네아(Genea)의 데이터가 해킹되어 다크웹에서 판매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퀸즐랜드 공과대학(Queensland University of Technology) 보건관리 및 건강정보학 과장인 산딥 레디(Sandeep Reddy) 교수는 “현재 호주에서는 약 25%의 일반의(GP)들이 AI 메모 작성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공식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며 “AI는 행정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환자와의 상담 시간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AI가 민감한 환자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철저한 보안 조치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AI가 사용하는 데이터가 해킹당한 사례는 아직 없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의료기관은 데이터 유출 시 정보위원회(Office of the Australian Information Commissioner)에 즉시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의료진의 AI 의존, 또 다른 위험성
보안 전문가들은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 역시 위험 요소로 지적한다. 엘라스틱 시큐리티(Elastic Security)의 보안 연구 책임자인 제이크 킹(Jake King)은 “AI는 빠르게 발전하며 특히 지식 기반 산업에서 활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AI가 생성하는 결과를 맹신하는 것이 사이버 공격보다 더 큰 위험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가 사실이 아닌 정보를 생성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도우 헬스는 이러한 보안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데이터를 호주 내 서버에 저장하며, 모든 환자 정보를 익명화하고 암호화하는 방식으로 보호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협력해 엔터프라이즈급 보안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환자의 데이터가 해외 AI 모델 학습에 사용될 위험이 없다.”라고 프라이버그는 설명했다.
AI, 의료진을 대신할 수 있을까?
하지만 AI 도입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호사들은 AI의 활용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AI의 추천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므로, 간호사의 판단과 검토가 필수적이다. 잘못된 조언이 환자 치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AI 기반 인력 배치 도구는 환자의 상태보다 숫자에 집중해 비현실적인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추천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AI가 잘못된 의료 조언을 제공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이에 대한 법적·윤리적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AI는 의사의 보조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지,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라프토풀로스 박사는 AI 덕분에 더욱 효율적으로 진료를 보고, 정시에 업무를 마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전에는 진료 후 환자 기록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뺏겼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을 절약하고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 덕분에 퇴근 후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의료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철저한 보안 대책과 윤리적 문제 해결이 의료계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