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금기에서
호주에서 소수민족 이민자로 뿌리내리며 살아온 지 삼십 년이 지났다. 삼십대 후반에 단행한 이민인데 철학자 김형석 교수에 따른다면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 (65세~75세)’의 중간 지점에 와있다. 백세를 살아내신 김 교수의 말을 진작 들었더라면 이 황금기의 전반을 달리 보낼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시드니의 어느 신학교 졸업식에 갈 기회가 있었다. NSW주 교육부 장관이 졸업생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했는데 ‘Never stop learning’ 배움을 멈추지 말라고 한 말이 나에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학위 증서를 받으러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들 중에 중장년의 졸업생들이 눈에 띄었고 지팡이나 목발을 짚은 이들, 골다공증으로 허리가 많이 굽어진 여성도 보였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 허리가 굽어진들, 백발일망정 그게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듯 당당한 모습들이었다. 졸업생 대표로 스피치를 한 여성이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8년 만에 해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때 박수가 터져 나왔다.
평생교육이라는데 나도 ‘죽을 때까지’를 목표로 꽤 오래 전부터 외국어 하나를 배우고 있다. 처음엔 그 나라에 관광 갈 목적으로 교실 문을 두드렸으나 점점 재미를 느낀 데다 치매방지에도 좋다니 은근과 끈기로 도전하게 되었다. 65세가 되던 해에 그 나라를 처음 방문하고 어린애처럼 좋아라! 했으니 인생의 황금기에 들어선 나이였음을 이제 깨닫는다.
매우 힘들었지만 큰 보람을 느낀 일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하여 귀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고 인연의 도미노 현상이 최근까지도 일어나고 있으니 좋은 시절임에 틀림없다.
동창회가 없었던 시드니에서 뉴욕동창회 주최로 모교의 창립기념음악회를 열게 되었을 때 이를 계기로 일곱 명이 모여 여고동창회를 발족시켰다. 시드니 곳곳에서 동창들을 찾아내며 모두 힘을 합하여 전석 초대권인 천석의 콘서트홀을 메운 일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서울, 미국, 일본에서 모인 동창들의 음악회는 대성공이었다. ‘왜 하필 그 먼 호주까지 가서 하느냐?’는 질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격조 높은 공연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아마도 내 생애에서 가장 성취감으로 만족했던 추억으로 기억되리라.
식상한 표현이나 해외동포들은 다 애국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올해는 2.8 독립선언 백주년, 3.1독립운동 백주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백주년을 맞는 해로 시드니에서도 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내가 한국에 살고 있었더라면 티브이나 신문 등을 통해서 기념식 관련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뜻 깊은 날들을 맞이했으리라. 그러나 호주에서는 달랐다. 기념식에 참석하여 만세삼창하고 왔으니 인생의 황금기다운 행보가 아닐까.
지인의 말을 빌리면 여고시절 교장선생님이 ‘첫째도 건강, 둘째도 셋째도 건강, 넷째가 공부’라고 했다한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넷째도 건강이다. ‘좋은 시절’의 후반부는 물론이고 이 시절을 길게 연장하고 싶다. 호주에 뿌리내린 우리 가족의 아름드리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그림을 마음의 캔버스에 그려본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또한 내 개인으로서의 그림을 그려본다. 이만하면 나도 슈퍼우먼 대열에 한발 내딛은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다.
권영규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