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 야당(Coalition opposition) 측이 경제 악영향, 생산성 저하, 인력 부족 심화 가능성 등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순이민(net overseas migration)을 노동당(Labor)보다 10만 명 줄이겠다는 공약을 고수하고 있다.
피터 더튼(Peter Dutton) 연립 야당 대표는 최근 순이민 목표를 16만 명으로 재확인하면서, 노동당과는 다른 이민 정책 방향을 강조했다.
연립 야당은 “향후 몇 년간 노동당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며 강경한 입장을 이어갔다. 연립 야당의 계획에 따르면, 정권 초기 2년 동안 영주 이민 프로그램을 4만5000명 줄이고, 유학생 수를 3만 명 감축하며, 인도적 이민자 수를 6250명 줄이는 방식으로 총 이민자 수를 낮춰 입국자 수만으로도 8만1250명이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졸업비자 제도 개편 및 비자 남용 단속을 통해 출국자 수를 늘려 총 순이민을 첫해 기준 10만 명까지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졸업비자, 비자남용
연립 야당은 졸업비자(graduate visa) 제도를 재검토하고, 졸업 후 취업비자의 영주권 경로로의 ‘남용’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비자 규정 집행을 강화해 ‘비자 남용’과 ‘비자 점프’의 여지를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연립 야당이 제시한 감축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입국자 수는 총 8만1250명 줄어들게 된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졸업비자 제도 개편과 기타 이민제도 악용 방지 조치 등으로 출국자 수를 늘려야 한다.
연립 야당 대변인은 “우리가 약속한 조치들을 통해 첫 해 노동당 대비 순이민을 10만 명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이후에도 계속 노동당보다 낮은 수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학생 8만명 감축, 비자 신청비도 인상
피터 더튼 대표는 지난달 멜번(Melbourne) 기자회견에서 “젊은 호주인들이 집을 더 빨리 사고, 더 쉽게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계획”이라고도 설명했다.
공립대학에 입학하는 유학생 수에 약 25%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연간 국제 유학생 수를 노동당의 계획보다 3만 명 줄어든 24만 명으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이민이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며, 이번 조치가 주거비용 완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 감축 계획
연립 야당은 집권 시, 공립대학의 유학생 입학을 연간 최대 11만 5천 명, 사립대학 및 기술전문교육(VET) 기관 유학생은 최대 12만 5천 명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피터 더튼 대표는 “우리는 이민을 줄이고 호주인을 우선시하길 원한다”며 “호주인들이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 유학생 비자 신청비도 인상된다. 야당은 그룹 오브 에이트(Group of Eight, 호주의 8개 명문대학) 입학 유학생의 비자 신청비를 5,000달러로, 그 외 유학생은 2,500달러로 인상할 계획이다. 교육기관 변경 시에도 2,500달러의 별도 수수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아울러 유학 후 호주에서 거주·취업할 수 있는 졸업생 비자(Post-study work visa)에 대한 전면 재검토도 예고했다.
더튼 대표는 이 비자가 “호주 노동시장 진입 및 영주권 취득을 위한 경로로 악용되고 있다”며, 해당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유학생, 임대 위기 주범 아냐
하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국제 유학생은 호주의 임대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연구진은 “유학생 증가가 주택 위기를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는 주장은 근거 없다”고 밝혔다.
녹색당, 대학계 반발
녹색당(Greens)은 이번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민자와 유학생을 희생양 삼으려는 냉소적인 시도”라고 지적했다.
메흐린 파루키(Mehreen Faruqi) 부대표 겸 고등교육 담당 의원은 “비자 수수료를 세 배로 늘리고 유학생 수를 줄이려는 더튼의 계획은 선거를 앞두고 공포와 분열을 조장하려는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사실을 보면, 국제 유학생은 치솟는 임대료나 주거난의 원인이 아니다”며 “그 책임은 공공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고, 부유한 부동산 투자자들의 이익만을 우선시해온 역대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대학가, 국가 경제에 타격
호주대학연합(Universities Australia)은 이번 계획이 “경제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주택 위기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루크 시히(Luke Sheehy) CEO는 “전체 임대시장 중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6%도 되지 않는다”며 “해결책은 유학생 수 감축이 아니라 주택 공급 확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책은 지적 희생양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 만들어져야 한다”며 “우리는 실질적 해결책을 위해 모든 정당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번과 같은 삭감은 국가 번영을 해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명문대, 추가 부담에 반발
그룹 오브 에이트(Group of Eight) 대학들의 대표인 비키 톰슨(Vicki Thomson) CEO는 “이번 정책은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모두 잘못됐다”며 “유학생에게 주택난의 책임을 전가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계 100위 안에 드는 호주 최고 대학들에만 추가 부담을 부과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이 대학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유치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산업계, 기술인력은 유지돼야
호주산업그룹(Australian Industry Group) 대표 이니스 윌록스(Innes Willox)는 전체 순이민 목표와 관계없이, 영주 이민 프로그램 내 숙련 기술자 비중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윌록스 대표는 “총 숫자가 어떻게 되든 숙련 기술자 수는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유지해온 수준을 흔들어선 안 된다”며, “지금도 노동시장은 여전히 심각한 인력 부족을 겪고 있으며, 실업률도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는 “도축장 인력부터 첨단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서 인력난이 지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튼 대표는 연립 야당의 정책 하에 건설업계의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기술자 입국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디 오스트레일리안(The Australian)> 보도에 따르면, 연립 야당은 농업 부문도 인력 감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해당 업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튼 대표는 현재 연간 18만5000명인 영주 이민 규모를 14만 명으로 25%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프로그램은 장기 거주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신규 입국자 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관광·요식업계 직격탄 우려
호주호텔협회(Australian Hotels Association) 대표 스티븐 퍼거슨(Stephen Ferguson)은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및 유학생 수의 감소가 관광·요식업계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퍼거슨 대표는 “생산성을 높여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를 양측에서 다 하고 있지만, 인력을 줄이면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다”며, “주방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일자리 감소와 생산성 하락, 이자 상환 여력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계도 비판
호주경영자총협회(Business Council of Australia) 또한 국제 유학생 수에 추가 상한을 두는 것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협회는 “국제 교육은 호주의 주요 수출 산업 중 하나”라며 “이 분야에 대한 제한은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립 경제학자 솔 에슬레이크(Saul Eslake)는 이민 축소가 주택 수요를 줄이는 효과는 있지만, 동시에 공급망 압박을 심화시키고 노동력 부족을 악화시키며 물가 상승을 초래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민 축소에 집중하는 태도는 마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야당이 트럼프와의 선을 긋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는 대조된다”고 평가했다.
AMP 수석 이코노미스트 쉐인 올리버(Shane Oliver)는 이민 축소가 정부의 소득세 수입 기반을 줄이고, 전반적인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쳐 “경제가 더 약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리버는 “예산에 여유가 생기기는커녕, 예기치 못한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더 큰 예산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