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고율 관세를 두고 베이징은 “잘못된 조치”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그러나 중국 수출업계는 미국이라는 최대 시장의 상실을 대비해 ‘회색 경로(grey channels)’를 통한 우회 수출까지 고려 중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수출에 의존하는 중국 노동자가 수천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대중 강경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은 100%를 웃도는 상호 관세를 주고받으며 격렬한 무역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양국 기업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을 가장 나쁘게 대한다”고 지적하며, 국가안보와 관련된 산업에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케빈 해셋(Kevin Hassett)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국장은 “적국에서 대포알을 수입하면서 자국 대포를 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그 대포알에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국 해관총서 통계국장 뤼다량(Lyu Daliang)은 “미국의 고율 관세에도 중국 수출업체들의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외교 다변화를 꾸준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스마트폰과 전자제품을 관세 대상에서 제외한 점을 지적하며 “잘못된 상호관세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 대변인은 “종을 맨 사람이 그 종을 풀어야 한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며 미국이 먼저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영매체, 자책골조롱
중국 관영매체는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상승을 ‘자책골’이라며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수출업체들 사이에서는 실제로 미국 시장의 급격한 위축으로 인해 신규 주문이 중단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스마트 글라스 업체 코핀(Kopin Corp) 장후이취안(Zhang Huiquan) 대표는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전체 수출 중 약 15%가 미국으로 향하며, 이 외에도 동남아시아와 멕시코로 수출되는 반완제품 상당수가 결국 미국으로 재수출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제품의 우회수출을 돕는 국가들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이러한 고율 관세는 ‘회색 경로’를 통해 제품을 우회 수출하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한 국제 물류업체 직원은 “중국산 제품의 라벨을 다른 국가산으로 바꾸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며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분석에 따르면 약 2천만 명, 전체 중국 노동자의 약 3%가 미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loomberg Economics)는 대미 수출 감소로 중국 GDP의 최대 3%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진핑(Xi Jinping) 국가주석은 베트남을 방문했다. 트럼프 집권 이후 베트남은 중국 수출업체들의 주요 우회 경로가 됐다. 시 주석은 이번 동남아 순방 중 베트남을 비롯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를 찾으며 국제무역 수호자를 자처했다. 그는 베트남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은 승자가 없으며, 보호무역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희토류 규제 예고, 보복정책도 준비
베이징에서는 미국을 겨냥한 보복 정책도 준비되고 있다. 희토류 등 전략물자 수출에 대해 미국 구매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새 제도를 마련 중이다.
중국은 강력한 자석 제조에 필수적인 중희토류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 드론, 로봇, 전기차, 미사일, 우주선 등 핵심 산업에 사용된다.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소속 중국 전문가 라이언 해스(Ryan Hass)는 “중국은 자국 정치 시스템이 미국보다 더 단결되고 무역전쟁 압박을 견딜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굳건히 버티며 트럼프가 먼저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관세 우회 수출 작전 “메이드 인 베트남”
이 같은 회색 경로의 실체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Canton Fai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박람회는 중국 최대 무역 전시회로, 올해는 3만 개 이상의 업체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부스를 차린 한 마사지기 제조업체는 “트럼프의 145% 관세로 미국 수출이 멈췄다”며, “베트남 업체에 완제품을 판매하고, 그쪽에서 ‘메이드 인 베트남’ 라벨을 붙여 미국으로 수출한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3월 한 달간 중국의 대베트남 수출은 17% 급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의 베트남 방문에 대해 “어떻게 하면 미국을 골탕 먹일 수 있을까 연구 중”이라고 비꼬았다.
이번 캔톤페어는 미국의 관세 폭탄이 중국 제조업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미국이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일부 품목에 예외를 둔 점을 언급하며, 다수 중국 제조업체는 트럼프가 결국 물러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미국은 절대 못해” 가격경쟁력 강조
포산(Foshan)에서 온 한 노래방 기기 제조업체는 “미국에서는 절대 생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100여 명의 노동자를 둔 그의 공장은 부품 제조업체들에 둘러싸여 있고, 가정용 기기는 45달러, 차량용 기기는 50달러에 만들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고급형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이 가격을 따라올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에서 블루투스 스피커, 손풍기, 립스틱 모양 전자담배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텔레콤 장비 제조업체는 “우리는 박리다매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 제조업체 대부분은 수익률이 매우 낮으며, 여전히 미국 소비자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미국내 대규모 재고 확보
공식 통계로는 중국 수출의 15%가 미국으로 향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회색 경로를 통해 더 많은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다수 업체들은 미국 내 재고를 미리 확보해둔 상태다. 블루투스 헤드폰 제조업체 관계자는 “트럼프가 결국 예외를 둘 것이라 생각한다. 3~6개월이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을 중국 내 인건비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전했으며, 중국의 효율적인 인프라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대표 고객사 중 하나는 월마트(Walmart)다. 그는 “미국 고객사와의 관계 때문에 베트남 경유 우회수출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인도네시아에 새 공장을 열 계획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의 대중 고율 관세가 계속 유지될 경우, 동남아로의 공장 이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1,000만~2,000만 명의 중국 노동자가 미국 수출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미국 관세, 대미 수출 급감, 글로벌 경기 둔화의 삼중고가 중국 경제와 노동시장에 큰 압박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 성장률 일단 선방, 전망은 하향 조정
중국은 올해 1분기 GDP 성장률 5.4%를 기록해 예상보다 높은 성과를 보였지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하향 조정도 이어지고 있다. ANZ는 2025년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4.8%에서 4.2%로 낮췄다.
백악관은 중국에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카롤라인 리빗(Karoline Leavitt) 백악관 대변인은 “공은 중국 쪽에 있다. 미국은 거래할 필요가 없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미국 소비자”라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 항공사 보잉(Boeing) 항공기 주문을 취소하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광저우 캔턴페어 현장에서는 반미 정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메인 카페에서는 버드와이저 맥주만 팔리고 있었고, 스타벅스, KFC, 맥도날드 등 미국 브랜드는 여전히 대세였다.
서민만 피해입는 전쟁
허난성(Henan)의 한 공장주는 “이번 사태는 양국 국민, 특히 서민에게 재앙”이라며 “트럼프는 다음에 뭘 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골프카트에 부착하는 마그네틱 블루투스 스피커를 만드는 한 업체는 “미국 바이어가 여전히 주문하고 있다”며 우회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