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치권에서는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다문화 국가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우리의 다양성이 가장 큰 강점”이라는 표현도 정치인들의 공식 연설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는 호주 원주민들의 땅임을 인정하는 멘트와 함께 반복되며, 호주가 다문화 사회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세와 맞물려 이민자 사회 내 갈등이 불거지면서 이러한 표현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호주 내에서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다문화주의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논쟁이 커지고 있다.
이민자의 기여와 사회 변화
호주는 오랜 기간 이민자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초기 영국의 죄수 유배 시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호주에 왔다. 이들은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호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 출신 이민자들이 주요 다문화 집단을 이루며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왔다.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고,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는 한편, 호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호주 내 한국 이민자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한 한국계 이민자들은 소규모 사업부터 전문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 활동을 펼치며 호주 사회에 정착했다. 특히, 한인들은 교육열이 높아 2세대들이 법률, 의학, IT 등 전문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호주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한식당과 K-콘텐츠 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한국 문화가 호주 전역에서 인기를 끌며 다문화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이민자들은 출신국에서의 갈등과 편견을 그대로 가져와 사회적 긴장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민자의 호주 사회 동화’라는 개념이 다시금 논의되고 있으며, 정부의 이민 정책과 시민권 부여 기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 정책과 통합 원칙
과거 밥 호크(Bob Hawke) 정부는 다문화 국가 정책을 통해 “모든 호주인은 개인의 문화유산을 표현하고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면서도, “호주의 이익과 미래에 대한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존 하워드(John Howard) 정부는 시민권 시험과 기본 가치 질문을 도입하며 이를 더욱 강화했다. 밥 호크는 1983년부터 1991년까지 호주의 총리를 지낸 노동당(ALP) 소속 정치인으로, 경제 개혁과 사회 정책에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다문화주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정부는 다문화주의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알바니즈는 “호주는 다문화주의가 성공한 나라이며, 우리는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국제 갈등과 관련한 시위가 증가하면서, 정부는 사회 통합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를 고민하고 있으며, 현재’사회 통합’보다는 ‘공공 질서 유지’와 ‘극단주의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야당 대표 피터 더튼(Peter Dutton)은 “호주 시민으로서 민주적 신념을 공유하고, 법을 준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건”이라며, 최근 반유대주의적 시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호주 사회를 거부하거나 극단적 사상을 지지하는 경우, 시민권 심사에서 보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유대주의 확산과 대응 논란
최근 호주 내 반유대주의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드니 동부에서는 유대인을 겨냥한 방화 사건과 반유대주의적 낙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뱅스타운 병원에서는 이슬람 신자 간호사들이 “이스라엘(유대인) 환자를 치료하는 대신 죽이겠다”는 발언을 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정부와 경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유대계 호주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유대교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거나, 이를 개별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레바논계 무슬림 협회(Lebanese Muslim Association)의 가멜 케어(Gamel Kheir)는 “맥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을 비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일부 무슬림 지도자들은 “해당 발언이 무슬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민 정책 변화 필요성 제기
이민 정책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반유대주의적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호주 시민권을 갖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이민 시스템 전반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권위주의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비자 발급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민자 사회 내에서도 통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다문화주의가 호주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고 공존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는 “다문화주의는 일부 이민자들이 자신들만의 게토를 형성하도록 만들었으며, 이는 사회적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정체성과 통합을 강조해야 하며, 급진적 이맘(Imam)들을 추방하고, 호주 시민이 되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갈등, 해결책은 무엇인가?
호주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로, 다문화주의는 오랜 기간 호주의 정체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 정세의 불안과 함께 호주내에서도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기존의 다문화 정책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