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뺑소니
“오늘 여기 모임에 오려고 준비하면서 다들 쭉쭉 빵빵이라 나서기 망설였는데, 아! 미경 씨가 있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놓여서 편하게 왔어요.”
C 선생이 회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순간, 나는 멍해졌다. 사람들은 멈칫하다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바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뭐라 말도 못 하고 그냥 넘어갔다. 머릿속에서 ‘이거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분명 나의 외모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 거라면 몸 관리를 안 한 내 문제인가? 그동안 내 행색이 그렇게 엉망이었나? 아니면 내가 정말 편하게 느껴졌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날 느낀 감정은 분명 봉변이었다.
가게에서 일할 때 호주 할머니들은 동양 사람의 나이 가늠을 못 해서 가끔 내가 임산부인 줄 알고 착각을 한다.
“임신한 사람한테 무거운 물건을 꺼내 달라고 해서 미안해.”
“오? 나 손자도 있는 할머니인데요.” 하면 내 손을 덥석 잡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갖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이니 그런 착각이 잘못은 아니다. 아직 동안인 내 모습 때문에 가임여성으로 본다는 것에 방점을 둔다면 웃고 넘길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지랖 할머니들이 공연히 내게 살 좀 빼라는 의미로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은 뚱뚱한 사람은 은연중에 만만해 보이나보다. 속에서 한번 거르고 생각하는 과정이 없이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펑퍼짐한 모습처럼 감정도 무디고 대충, 적당히 말해도 까다롭지 않게 다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이 한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은 ‘말 뺑소니’다. 분명 모르지 않을 텐데 상처를 내고 은근슬쩍 도망치는 것이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장착된 본성이 있다. 성격이 다르니 사람마다 말투도 다르다. 하지만 필터 없이 쏟아지는 말은 불편하다. 살찐 사람만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늘 쓰는 말에도 적절한 제어가 필요하다. 어쩌다 한 번 무심코 실수로 한 말이라면 괜찮지만, 사실 말투는 습관에서 나온다. 살아온 환경과 습관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속일 수가 없다. 은연중에 언제든 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나 역시 말실수에 관한 경험이 있다.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이 난다. 어느 날 가게에서 손님에게 물건 포장을 해줄 때 일이었다. 나로서는 꽤나 꼼꼼하게 잘 포장을 하고 있는데 그 손님은 필요 이상으로 비닐 팩 포장을 원했다. 버블 팩으로 꼼꼼하게 싸놓은 물건을 그가 가져온 쇼핑백에 넣으려 하자 그는 다시 비닐 팩에 몇 겹으로 넣기를 원했다. 요즘 지구 환경문제로 비닐 팩 포장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지시가 있던 차에 그렇게 자꾸 비닐 팩 포장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개념이 없고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쇼핑백은 뭐 하러 가져 왔누”
“한국사람입니까?” 내게 물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네”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사실 혀가 굳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그 사람도 한국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설령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던 내가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궁시렁대듯 말한 것은 손님에 대한 매너가 아니다. 그들을 어찌 생각하든 속으로 생각하고 말아야 했다. 평소의 마음이나 행동이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말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늘 말조심 하고 마음 씀씀이도 조심하라는 경험이었다.
나는 말도 별로 없고 겉으로 보기에 누구라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막상 속으론 그렇지 못하다. 처음부터 덥석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물러서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가까워져야 그때야 마음이 열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서로 좋다고 너무 촘촘히 감정에 얽혀 있으면 갑갑하고 그런 감정은 사실 오래가지 않는다. 조금은 무심한 듯 거리를 두고 바라 볼 수 있어야 제대로 모습이 보인다. 실제로 나는 사람들과 소통에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늘 적당히 괜찮다고 말하고, 알아서 짐작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내 마음을 알기도 어려운데 드러내지 않는 남의 속마음을 어떻게 알까? 속에 담아두고 말 하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주장이 꺾일까 봐 미리 단정하여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분명하게 내 감정을 말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착하고 의젓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 틀에 갇혀서 살았다. 그 말은 오히려 내게 독이 되었다. 나는 절대로 착하지도, 의젓하지도 않다. 마음속에 들끓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서투를 뿐이다. 그 서툰 감정은 가끔 제어되지 않고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것이다.
들끓어 터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미리 김을 뺄 필요가 있다.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제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관점을 조금 바꾼다면 내 마음도 다치지 않고 관계도 비틀어지지 않을 것이다.
C 선생은 그날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물론 내가 편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나도 그가 이모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분이다. 내가 정말 편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믿고 싶다. 그래도 궁금한 사실은 남아 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쭉쭉 빵빵이라는 거예요? 제겐 아무도 그리 안 보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