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연구소 조사… 설문 대상자의 거의 10%, 12개월 사이 ‘성 관련 가해’ 인정
호주인 거의 4분의 1이 18세 이후 ‘일종의 성폭력’(some sort of sexual violence) 행위를 저질렀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호주 범죄연구소(Australian Institute of Criminology. AIC)가 최근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호주인 5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성인(18세)이 된 후 성폭력 행위를 가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AIC의 이 조사는 호주 전역 18세에서 45세 사이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거의 10%는 지난 12개월 사이, 성 관련 가해 행위를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들은 이미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음란물이 성폭력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이 연령대를 조사 대상으로 선택했으며, 또한 ‘10대와 성인이 된(18세) 초기, 인터넷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들’을 포함시켰다.
이번 연구는 국가 차원에서, 갈수록 증가하는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 DV)에 대처하고 있으며 건강한 관계 및 성에 대한 태도를 주제로 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AIC 최고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다울링(Christopher Dowling) 박사는 “특정 성폭력 행위를 수치로 확인한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것으로, 이는 우리의 조사 표본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 관련 폭력 행위를 했다고 자유롭게 인정한 것인지를 의미한다”면서 “이 조사에서의 피해자 비율, 그리고 호주 및 다른 국가의 관련 연구를 통해 오랫동안 수집할 수 있었던 내용, 즉 상당한 비율의 성인이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광범위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는 개인적 의견을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이번 조사 수치를 통해 성폭력을 가하는 남성과 여성의 수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성폭력 가해 확률,
남성 더 높아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26.4%가 성폭력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한 반면 여성의 같은 답변은 17.7%였다. 다울링 박사는 “또한 남성은 훨씬 다양한 성폭력 행위에 가담했다는 답변이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행위’는 성관계 강요, 파트너의 은밀한 부위를 사진과 동영상을 녹화해 공유하거나, 성폭행(sexual assault) 및 강간(rape)으로 간주되는 행위가 포함된다.

그는 “조사 대상자들은 설문 전부터 자신들의 제공 정보가 익명으로 처리될 것임을 통보받았다”며 “이것이 다른 형태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정직한 응답을 하도록 부추켰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사 대상자) 자신들이 밝힌 성폭력 행위 가해 남성과 여성의 비교는 성별 차이의 진정한 중요도가 과소평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간 및 기타 유형의 성적 폭력을 포함해 종종 경찰에 신고되는 일부 형태의 성폭력에 대해 사람들은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 다울링 박사는 “하지만 우리(AIC)는 이번 연구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신고를 고려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성폭력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자행되는지를 조사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반복적인 성희롱, 심리적으로 누군가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술을 마시도록 압력을 가하는 행위, 성관계를 갖기 위한 마약 복용 등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다울링 박사는 “이번 조사를 통해 가장 일반적으로 자행되는 성폭력 행위는 이런 유형의 폭력이었다”면서 “실제로 많은 이들이 더 자주 듣고, 치안 및 사법 데이터에서 종종 보게 되는, 육체적으로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형태의 성폭력보다 더 많다”고 설명했다.
여러 유형의 성 가해 행위,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기도
직접적인 신체적 성폭력 이외의 관련 가해 행위가 늘어난 것에 대해 라트로보대학교(La Trobe University), 젠더 기반의 성폭력 연구소 ‘Reducing Gender-based Violence Research Group’의 제시카 아이손(Jessica Ison) 선임 강사는 일종의 ‘자격 문화’(culture of entitlement)에 의해 가능해진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성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젠더 규범,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성 접대를 받을 자격이 있고, 여성은 섹스에 대한 압박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미디어나 영화 전반에 걸쳐 일반화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녀는 AIC의 이번 데이터에 대해 “놀랍지 않다”며 “우리 사회의 성 불평등이 성폭력을 부추킨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대인관계에서도 이런 부분을 겪게 된다는 아이손 강사는 “우리는 가정폭력 및 친밀한 파트너 폭력 상황에서 피해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폭력 대상에 대한 남성의 권리가 실제로 널리 확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멜번 소재 RMIT대학(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Centre for Innovative Justice’의 엘레나 캠벨(Elena Campbell) 부소장은 “음란물도 성폭력을 조장하는 하나의 동인”이라면서 “젊은이들이 성 관련 폭력을 친밀한 관계의 일부로 일반화하는 이미지나 그런 개념을 가질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캠벨 부소장은 성폭력을 경험한 이들에게, 트라우마에 근거한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법 개정 여부를 검토하는 ‘Australian Law Reform Commission’은 현재 성폭력에 대한 사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보고서는 내년 1월 중 연방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될 예정이다.
AIC, ‘성차별-여성 혐오적
태도’ 해결에 도움 기대
다울링 박사는 이번 연구가 향후 정책 입안에 유용할 것이라며 “우선, 경찰에 신고되지 않았지만 설문에서 확인된 성 관련 가해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광범위하고 표적화된 1차 예방조치의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성 관계에서의) 합의(consent)와 건전한 관계에 대한 교육,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태도를 타파하며 사람들을 폭력에 순응시키게 만드는 세대간 폭력 순환을 깨뜨리는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이 같은 조치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아울러 “그런 가운데 이번 연구의 또 다른 가치는 범죄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직접적인 척도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다울링 박사는 “이는 범죄를 감소시키기 위한 범위를 명확히 알릴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그 노력의 효과를 평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는 여성 및 아동 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