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갓!
삼십 년이 다 되도록 살고 있는 우리 집 뒤꼍, 손바닥만한 채소밭에는 갓이 자라고 있다. 네 포기 모종을 얻어다 심은 여리던 갓이 씨를 맺어 퍼뜨린 뒤 삼대 째 내려온 것이다. 겨우 네 포기를 무엇에 쓸까, 씨를 받아 내년에는 밭에 가득 심어 갓김치를 담아 김치냉장고에 넣어 숙성시켜가며 먹을 궁리에 은근히 신바람이 났었다. 어느 세월에! 너무 큰 욕심이 아니냐고 식구들은 소리 없이 웃는 것 같았다. 언제 어느 손에 들려 시드니까지 온 것일까? 나랑 비슷한 처지에 애달픈 생각이 들어 아침저녁 들여다보는 정성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비오고 나면 쑥쑥 자라 한통의 갓김치가 되어 냉장고에 들어앉아 최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오래 전 여행을 힘들어하는 내 귀에 한국을 가면 꼭 여수를 가보라는 얘기가 들려왔었다. 지방자치제를 들먹이며 입에 침이 마른다. 남도 지방까지 갈 일이 별로 없던 터라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2박3일 짧은 여행을 떠났었다. 잔듯만듯 일어나 보니 피곤한 상전이 되어버린 몸이 시작부터 심통을 부린다. 차멀미가 무서워 눈치껏 버스 앞자리에 앉았더니 타자마자 아침식사 배식을 한다. 일회용 접시에 찰밥과 대여섯 가지 반찬을 담는 일이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동원되어 뒤로 뒤로 돌려 흔들리는 그 큰 관광버스에 만석인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려니 얼마나 서두르는지 정신이 번쩍 든다.
남편 고향인 김제까지는 가본 적이 있지만 전라남도는 처음이니 마음으로 인사를 한다. 차 창가에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눈길을 잡는 산세가 제법 수려하다. 완만하여 부드럽게 보이는 야트막한 높이의 산자락에 기름져 보이는 들판이 이어지며 한껏 모양낸 춘향이의 치맛자락처럼 우아하게 보인다. 가는 곳 마다 먹는 일이 우선인 듯 맵고 짭짤한 반찬이 한상 가득 어우러져 눈으로 먼저 유혹을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여수 돌산 갓김치가 가게마다 수북이 쌓여 있다. 제법 긴 골목 양쪽이 양념한 갓김치 가게로 포장까지 깔끔하게 해준다며 경쟁이 치열하다. 선물용으로 포장된 작은 상자 두 개와 말린 해산물을 사 들고 멀어지는 여수를 돌아다보며 히죽이 혼자 웃었다. 갓을 들고 가니 말이다!
언제부터 인가 오른쪽 귀가 조금씩 말썽을 부리고 눈이 점점 제 구실을 못하니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고 생각 없이 인터넷 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 아! 내가 어느 바람에 실려 다니지? 동네 골프 친구가 USB에 한국영화를 열심히 담아다 준다.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는데 서울 거리가 나오는 화면 앞에 나도 모르게 바짝 다가앉게 된다. 어느 날 담겨온 드라마에 조선시대가 나오고 갓 쓴 사내들이 보인다. 미국인 눈에 호기심일까, 갓 쓴 것이 좋아 보였을까. “나도”하며 쓰고 나서 “조선 사람들은 하나님을 머리에 이고 다닌다”고 하는 말에, 그것뿐인가 갓김치를 뱃속에 넣고 다니기도 하는데!
급할 때에만 ‘오 마이 갓!’을 외치는 서양인들보다 조상 대대로 갓을 머리에 쓰고 다니고, 먹기도 하는 한국 사람이 돌아 갈 본향을 찾는 때에 유리한 것 아닐까? 불볕 같은 여름, 살 날도 줄어들어 발 등위로 불 떨어진 내 생각이다.
송영신 /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