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박멸론
팬덤은 애초에 정치 언어가 아니었다. 스포츠나 연예계 스타에 열광하는 어린 극성 팬층을 일컫는 말이었다. 최근 몇몇 정치인을 애착하는 열렬 지지층을 두고 ‘팬덤 정치’라는 말이 생겼다. 소수지만 전체 여론을 좌우하는 강력한 집중력과 활동력을 보인다. 심지어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을 위해 비방, 모독, 인신공격, 사실 왜곡 등 극단적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팬덤정치’라고 하면 대체로 부정 이미지가 강하다. 정치인은 누구나 팬덤을 보유하고 싶어 한다. 무조건 지지하고 아이돌 스타처럼 숭배하는데 마다할 이유 없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선거에서 팬덤은 핵무기 같은 비대칭 전력이다. 팬덤 정치인은 경쟁 상대를 쉽게 압도한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문빠’로 불리는 지지자들 덕분에 단 한 순간도 대세론이 흔들리지 않았다. ‘문빠’ 팬덤은 ‘문자폭탄’과 ‘18원 후원금’ 등으로 상대 진영을 초토화시켰다. 이를 두고 문 후보는 “경쟁을 흥미롭게 만든 양념’으로 표현해 비판을 받았다.
정치인에게 팬덤은 알아서 경쟁자를 공격하고 처리해주는 익명의 군대다.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풀어주는 마법 몽둥이다. 표적이 된 상대에게 팬덤은 ‘양념’이 아니라 ‘독초’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든 눈에 거슬리는 빌미를 제공하면 집단 린치를 감수해야 한다. 온라인, 오프라인 구별 없이 무차별 파상공격을 당한다. 악성 댓글, 신상털기, 가짜뉴스 등 온갖 치사한 방법이 동원된다. 집단 가해 행동이라 피해자는 특정인을 꼬집어 책임 묻기도 힘들다.
팬덤은 같은 당(黨)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민심보다 작은 당심을 두고 벌이는 내부 싸움에서 더 치열한 적대감을 뿜어낸다. 이재명을 추종하는 ‘개딸’(개혁의 딸)은 민주당 내 ‘반명’ 인사들을 ‘수박’(무늬는 파란 ‘민주당’인데 속내는 빨간 ‘국민의힘’이라는 비유)으로 몰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실제로 지난 총선을 통해 대성공을 거뒀다. 여당인 국힘당도 마찬가지다. 비대위원장으로 총선 참패 책임을 져야 할 한동훈이 곧장 당 대표 경선에 나와 선두를 달리는 것 역시 팬덤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정치 팬덤은 애착하는 정치인과 정서적 유대감으로 끈끈하게 뭉쳐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잘 드러난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 ‘OOO은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재이니’, ‘동후니’, ‘재명이네’ 등 사적 친근과 친밀이 넘쳐난다. 나이가 많은 50~60대 정치인을 어린 자녀처럼 바라본다. 좋아하는 대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정치인이라는 공인(公人)을 판단하는 공적 기준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이만저만 심각하지 않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은 그에 맞는 견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도 좋다는 무책임한 말이다. 지지자는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제 역할을 못하면 비판을 통해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견인할 책임이 있다. 팬덤 현상은 모든 견제와 견인을 무력하게 만든다. 어떤 파렴치 허물이든 덮어줘야 미덕이다. 건전한 비판은 실종되고 북한식 ‘어천가(御天歌)’만 울려 퍼진다.
팬덤 정치에서 정치인은 지지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어처구니없게 지지자가 정치인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 선거 때는 어김없이 표를 던져 당 대표, 국회의원, 대통령을 만든다. 곤경에 처하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생업을 뒤로 하고 촛불, 태극기 들고 거리로 뛰어나간다. 세금을 내고도 따로 돈을 걷어 후원한다. 손가락이 닿도록 지지 댓글을 달기 위해 인터넷 곳곳을 돌아 다닌다. 가족과 친구와 정견이 다르면 원수처럼 핏대 올리며 싸워 준다. 팬덤 아래 국민은 냉철한 주인이 아니라 행복한 노예다.
정치인에게 권력과 명예를 주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국민을 지키는 소명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지못미’를 들을 때마다 역겨움이 치밀어 오른다. 누가 누구를 지키지 못해 미안해야 하나? ‘지못미’는 모든 영광의 원천인 국민과 지지자를 향해 정치인 입에서 나와야 할 고백이다. 정치인은 유한하지만 국민은 영원하다. 대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필요할 때 정치인을 뽑아 쓰고 효용이 다하면 바꾸는 체제다. 국민과 역사 입장에서 정치인은 소모품이다. 팬덤은 소모품이라야 할 정치인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영원해야 할 국민을 소모품으로 전락시켰다.
주인으로 섬김받아야 할 국민은 종노릇 하는데 종으로 섬겨야 하는 정치인은 주인 노릇 하는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의 암(癌)이요 적(敵)이다. 팬덤에 속해 있다면 하루 바삐 주권자로 존엄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팬덤을 거느린 정치인은 황망한 부끄러움을 알고 서둘러 공복(公僕)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팬덤을 박멸해야 비로소 건강한 시민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