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Tax Observatory 연구소, “범정부 차원의 글로벌 최저세율 강화” 촉구
해외 조세 피난처에 보유하고 있는 호주인들의 자산이 3,700억 달러 이상에 달하며, 다국적 기업이 저세율 국가로 기업 이익을 이전하는 경우 2020년 호주 재무부는 110억 달러의 세금 수입 손실을 보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EU Tax Observatory’ 조사연구소의 ‘Global Tax Evasion Report’에서 언급된 것으로, 보고서 공동저자인 가브리엘 주크만(Gabriel Zucman) 교수는 “탈세나 부의 은닉, 조세 피난처로의 수익 이전은 순리에 따른 법칙(laws of nature)이 아니다”면서 “이는 정책 선택의 결과이거나 특정 선택을 하지 못해 초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보고서는 해외 조세 회피처를 통한 탈세의 주요 형태 중 하나가 ‘지난 10년 동안 3배정도 감소’하면서 이러한 ‘선택’ 중 일부는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경제학계의 ‘주니어 노벨상’(junior Nobel)으로 평가받는 ‘John Bates Clark Medal’을 수상한 바 있는 주크만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과 같은 범정부 단체가 세금회피의 허점을 메우고 다국적 기업에 대한 글로벌 최저세율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한 “이 부문에서 제정된 정책의 결과를 평가하고 세금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또 다른,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글로벌 탈세와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 또한 그것을 바로잡는 방법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는 평가이다. EU Tax Observatory는 파리 경제대학(Paris School of Economics)이 운영하는 조사연구소로 유럽연합(EU)이 자금을 지원하며 수십 명의 정규 직원이 있다.
“한 번 승리하면
더 많은 싸움이 벌어진다”
지난 2017년, 각국은 해외 탈세에 맞서고자 은행정보 자동 국제교환(automatic international exchange of bank information)을 시작했고, 이는 효과가 있었다. 관련 연구를 보면 2010년대 이전,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약 90%는 제대로 신고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보고서는 “해외에 있는 비과세 자산이 전 세계 GDP의 약 12%에 달했지만 이제 그 수치는 3%정도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는 자산 소유자가 더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햤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억만장자들은 여전히 소득에 대한 세금 납부를 피하고자 유령회사(shell company)를 이용함으로써 부의 0~0.5%정도밖에 안 되는 낮은 유효세율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까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는 현 조세 시스템의 사회적 수용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기업 이익이 조세 피난처로 이전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에 대한 글로벌 최저 세율을 15%로 설정’하기로 한 2021년 140개 국가 및 지역간 합의가 약화되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초기에는 전 세계 법인세 수입에 8%를 더해 2,200억 달러(미화)의 세수 증가가 기대됐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약화시키는 허점이 있다. 보고서는 “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실질적 경제 활동을 하는 기업들은 해당 국가에서 15% 미만의 세금을 계속해 납부할 수 있게 됐다”면서 “그 결과, 기업들에게 세율이 15% 미만인 국가로 생산을 이전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에 유해하다
전 세계 각국은 COVID 부양책과 그 비용으로 인해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으며, 기후대응 일환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다른 부분의 지출을 삭감하거나 세금을 인상해 예산 적자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가중된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EU Tax Observatory의 쿠엔틴 파리넬로(Quentin Parrinello) 수석 정책고문은 “가장 부유한 이들이 비용 분담에서 제외되면 사회적 결속에 큰 위험이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 세계는 더 많은 부의 불평등, 생활비 위기, 기후변화 영향에 직면해 있다”며 “그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투자, 즉 이런 문제들에 맞서기 위한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탈세 가능성이 가장 큰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며 또한 규모가 큰 다국적 기업’이기에 이들로부터 합당한 세금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넬로 정책고문은 국제 은행의 비밀을 제거한 사례를 들어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면서 “10년 전만 해도 스위스 은행이 다른 국가와 정보를 공유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했던 일이었고, 은행정보 자동 교환 아이디어는 사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때 추적할 수 없는 자금의 블랙홀이었던 것이 이제는 세금 회피 행각을 단속하려는 각 국가 당국과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는 호주가 참여하는 2024년 브라질 G20 회의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파리넬로 정책고문은 “일반적으로 보통의 일반 시민들에 비해 소득 대비 적은 세금을 납부하는 글로벌 억만장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계획이 나와야 한다”며 “호주가 다른 G20 국가들과 함께 하여, 우리(EU Tax Observatory)가 이번 보고서에서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 다시 말해 억만장자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최저 세율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시민들의
‘과세 거부’ 위험
부의 격차는 물론 아직 해야 할 일들에도 불구하고 (조세 회피 차단의)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2001년)했던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경영국제관계학) 교수는 이번 보고서에 대해 “탈세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획기적 자료”라면서 EU Tax Observatory의 요구를 지지했다. 이번 보고서 서문에서 그는 “우리가 기업에 요구한 것을 이제 억만장자들에게도 똑 같이 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는 달성하기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은행의 비밀을 공개하고 기업에 대한 최저 세율을 도입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며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공정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 전체 조세 시스템이 훼손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반 시민들에게 ‘모든 이들이 공평한 몫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특히 부유한 기업이나 억만장자들이 합당한 자기 몫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피한다면, 이들(일반 시민) 또한 과세를 거부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EU Tax Observatory의
두 가지 핵심 제안
우선,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자금의 이동을 막는 방법이 있다. 은행정보의 자동 교환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를 살핀 EU Tax Observatory 보고서는 더 많은 옵션을 제시한다. △억만장자에 대한 세계 최저 세금은 이들 자산의 2%에 달해, 거의 2,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며(3,000명 미만의 개인으로부터), △허점이 없는 다국적 기업 대상의 강화된 글로벌 최저세는 또한 연간 2,500억 달러를 추가로 조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세금 시스템의 작동에 따른 모든 변화는 각 국가 정부 및 재무부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보고서를 보면 2022년, 미화 1조 달러 이상의 기업 수익이 조세 피난처로 이전됐다. 이는 본사가 위치한 국가 외부의 다국적 기업이 기록한 모든 수익의 35%에 해당한다. 특히 거대 기술기업이 문제의 핵심으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전 세계 수익 이동 약 40%에 책임이 있다.
부동자산,
조세 회피의 주요 위험
기업 수익의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호주 국세청(Australian Taxation Office) 데이터는 2020-21 회계연도, 호주 공기업 32%가 세금을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호주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 Australia) 사무총장인 마크 지린삭(Mark Zirnsak) 박사는 EU Tax Observatory의 이번 보고서를 크게 환영했다. “이는 우리가 조세 회피에 맞서 싸울 방법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그는 “조세 회피를 막는 일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계속되는 조세 회피의 사각지대는 부동산이다. 호주의 경우 에이전트와 부동산 양도 전문 변호사(conveyancer)를 포함해 자금 세탁을 막고자 마련된 법 준수를 강제하는, 이른바 ‘tranche two’ 개혁을 시행하는 데 있어 다른 국가들보다 뒤처져 있다.
부동산은 호주 주식시장의 3배에 달하는 가치가 있지만 부동자산 구입 자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똑같이 어려운 질문을 강요받지 않는다. 호주 금융범죄조사 당국인 ‘AUSTRAC’은 지난 2015년 브리핑에서 “다른 방법에 비해 주거용이든 상업용이든 부동산을 통한 자금세탁은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으며 사전 계획이나 전문지식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금세탁(money laundering)은 탈세와 다르지만 두 모두 주요 특징을 공유한다. ‘거래 내용을 국가 당국에 알리지 않으려는 욕구’이다.
지린삭 박사는 “대부분의 호주인은 우리 지역사회의 더 큰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기꺼이 납부하고 있다”며 “만약 일부 부유한 이들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려 한다면 일반 시민들 또한 자신들의 방식대로 세금 납부를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