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기에 걸쳐 이어온 고가-희귀물품 거래 방식, ‘효율적 주택 거래’로 자리잡아
호주인들이 선호하는 매매의 한 방법… ‘사적 가격’ 비해 ‘공통의 가치’ 확인 가능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시드니 곳곳의 거리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 주말 진행되는 주택 경매에서 입찰 기회를 기다리거나 또는 이웃 주택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려는 지역민들이 거래 현장을 찾는 것이다.
그 곳에는 내집 마련의 꿈을 가진 첫 주택구입자, 현재 거주하는 주택의 규모를 줄여 이사하려는 다운사이저(downsizer), 반대로 늘어난 가족에 맞춰 보다 큰 주거지를 가지려는 업사이저(upsizer), 투자 자산을 확보하려는 이들이 한데 모여 종종 고조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경매 현장을 다녀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경매 현장에서 가격입찰의 에너지를 직접 느껴본 적이 있다면, 한 가지 의아함을 가질 수도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구매하고자 하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그렇게 경쟁을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공개입찰은
높은 투명성을 제공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전리품을 분배하는 로마 군대에서부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전개되는 화려한 골동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경매(auction)은 수세기 동안 값비싸고 귀중한 물품을 거래하는 한 방식으로 이어져왔다.
시드니공과대학(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제학과의 아이사 하팔리어(Isa Hafalir) 교수는 부동산 경매의 배후에 있는 이론은 매우 간단하다고 말한다.
잠재적 구매자는 나름의 조사를 기반으로 부동산에 부여한 ‘사적 가치’를 가질 수 있지만 공개 경매에서는 입찰에 참여한 이들의 제시된 가격을 통해 ‘공통 가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입찰자들은 서로가 해당 부동산의 가치를 재고하도록 자극한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상대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에 이 주택은 잠재적 가치가 있음에 틀립없다. 따라서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가격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 가격제시가 느리고 입찰자들이 망설인다면 입찰자는 사적으로 해당 부동산의 가치를 축소할 것이다.
경매이론은 입찰자가 행동함에 있어 ‘위험 중립적’(risk neutral)이라 가정하며, 향후 몇 년 동안 주택 가치를 능가할 가격을 지불하려고 시도한다는 가정이다. 하팔리어 교수는 “이 같은 가정 하에서 볼 때 경매는 완전히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가장 높은 가치를 제시한 입찰자가 해당 물품을 구매하고 공정한 가격을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감정은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뜨거워지기도 하며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경매 과정에서 해당 물품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가치에 비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경향)를 포함하여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낙찰을 받는 이는 이를 위한 입찰 경쟁에서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경매 열풍은 입찰자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하팔리어 교수는 이론적 논증을 통해 “공개입찰 형식이 개별 협상에 의한 판매와 비교해 입찰자가 구매자의 변심으로 끝날 위험을 줄여준다”며 “대부분의 경매는 매우 효율적이라고 본다”는 개인적 의견을 덧붙였다.
호주인들, 미국-영국보다
‘경매’ 거래방식 선호
호주는 물론 미국에도 거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팔리어 교수는 “두 나라의 부동산 경매에 대한 접근방식은 매우 다르다”고 말한다.
호주에서, 경매사(auctioneer)가 진행하는 경매 주택은 종종 다양한 가격대에서 인기 있는 매물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경매로 판매되는 주택은 ‘압류 자산’이라는 신호이다. 즉 일반적인 부동산 거래 방식은 아니라는 얘기다.
퀸즐랜드대학교(University of Queensland) 플라비오 메네제스(Flavio Menezes) 경제학 교수는 영국에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부동산 경매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주택을 거래하는 데 더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고가의 주택이나 상업용 부동산이 주로 이 방식으로 거래되지만 압류 대상 부동산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경매를 통한 주택 거래는 호주에서 상당히 인기 있지만 이 방식의 활용은 각 주 및 테러토리(State and Territory)에 따라 크게 다르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 ‘코어로직’(CoreLogic) 자료에 따르면 ACT, 멜번(Melbourne), 시드니는 경매를 통한 주택 거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애들레이드(Adelaide, South Australia)와 브리즈번(Brisbane, Queensland)은 이보다 덜 흔하며, 특히 퍼스(Perth, Western Australia)의 경우 지난 6월 한 달(4주) 사이, 매매로 공지된 전체 부동산 가운데 경매를 통해 매매한다는 부동산은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코어로직 팀 로리스(Tim Lawless)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이후 매물로 공지되는 주택 가운데 경매를 통한 거래는 다소 줄었다.
그는 “이런 추세는 애들레이드와 브리즈번 등 덜 경매 중심적 시장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주택판매 조건이 가열되는 가운데서 경매가 일시적으로 일반 신규 매물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는 했다”고 말했다.
가열되는 경매 열기,
부동산 시장에 주는 암시는
메네제스 교수는 호주 부동산 가격 급등이 최근 수십 년 동안 호주가 ‘경매를 통한 거래’ 방식을 채택하게 된 주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판매자가 주택에 대해 고정 가격을 책정할 때, 종종 유사한 부동산의 최근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면서 “하지만 가격 성장이 빠르게 이어지는 시장 상황에서 이 같은 접근방식은 잠재 구매자의 지불의지, 특히 구매자의 가능한 최고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호황을 누리는 시장에서 경매 방식은 판매자에게 더 유리한 것으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하팔리어 교수는 경매를 통한 거래 결과가 ‘현재의 부동산 시장 상황 파악’에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는 “호주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마다 많은 경매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한 거래가 높은 성공률을 보인다”면서 “반면 시장이 침체되면 경매를 통한 거래 매물은 급격히 줄어들고 또 낙찰률도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이 시장의 변화 상황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경매 베테랑,
낙찰받는 기술 알고 있다”?
케이트 바코스(Cate Bakos)씨는 주택경매 현장에서 낙찰을 받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즉 의뢰인을 대신하여 경매 현장에서 원하는 주택을 구매하는 에이전트이다. ‘Real Estate Buyers Agents Association of Australia’ 회장이기도 한 그녀는 “영국이나 미국 고객들이 호주의 부동산 경매에 대해 ‘아주 무서운 방식’이라고 말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녀 또한 경매 현장에서 경쟁하는 입찰자들에 의해 낙찰받지 못한 사례가 많다.
바코스 에이전트는 “입찰 경쟁에서 흥분하여 높은 가격을 제시, 낙찰을 받았다가 계약서에 서명한 준비가 안 된 사례를 많이 보아 왔다”며 “신중한 사전 조사가 경매 과정에서 당황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해당 부동산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하고 특히 가격 분석을 잘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그녀는 “입찰가 제시 금액을 올리려는 경매사의 독촉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바코스 에이전트는 경매 과정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있지만 어찌 됐든 주택거래에서 경매의 투명성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공개 경매에서는 게임을 하거나 경쟁 입찰자를 속이는 일, 또 허세를 부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경매는 공정한 가격이라 생각되는 비용을 지불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