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그리운 것
미운 오리 새끼마냥 정갈한 음식들 한 구석에 놓여있는 이 빠진 뚝배기가 눈에 들어온다. 콩을 제대로 거르지도 않은 된장, 국도 찌개도 아닌 것이 두부와 호박 서너 조각에 멀건 고춧가루를 띄우고 있다. 가짓수를 채울 일도 없는 데 참으로 성의 없이 만들어 낸 모양새다. 토속 음식의 맛에 취해 정신없던 중 무심코 맛을 봤다. 의외의 묘한 느낌에 잠시 수저를 멈춘 채 다시 음미하며 맛과 향에 집중한다. 깊고 은은함이 입안 가득히 퍼지며 작은 감동이 밀려온다. 전에 없던 경험이다. 국적 잃은 미각과 어눌한 영어에 늘 긴장해 있던 혀끝도 맥없이 녹아내린다.
전라북도 익산 외곽에 사시는 시이모님 댁에 들렀을 때다. 구순을 넘긴 노인이 손수 차려 주신 나물 밥상에 마음을 빼앗겼다. 각각의 향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두릅, 곰취, 실더덕, 참나물, 방풍나물을 파와 마늘 없이 약간의 된장과 집 간장, 들깨만으로 간을 했다. 아마 본연의 맛을 위해 다른 재료와의 타협은 사양했으리라. 자연이 귀하게 내어준 먹거리도 기나긴 숙성을 거친 장을 만나서야 비로소 제 가치를 다 하는 듯했다. 더 없을 기회를 즐기고자 천천히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눈도 적셔본다. 어릴 적 남편이 따 먹었다는 감나무 밑으로 시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는 해묵은 장독들이 시멘트로 겉을 때워 군데군데 검버섯을 피우고 있다. 말로만 듣던, 대를 이은 씨간장, 황금빛 된장 속에 박혀있는 장아찌, 곰삭은 젓갈들… 귀한 먹거리를 품에 삭히며 여인네의 울음을 지켜봤을 질그릇이 긴 시간을 닦아낸 내공 가득한 도인의 모습 같다. 누룩 향이 강한 막걸리 탓에 졸음이 밀려오며 온돌방에 눈을 붙인다.
나는 언제고 변신할 수 있는 빈 그릇이 되었다. 허영심에 어울리게 명품 본차이나 접시가 되어 고급 호텔 조리장의 음식을 담아 본다. 우아함의 극치 앞에 걸맞는 차림새를 갖춘 사모님들이 마음속으로 칼로리를 따지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화려한 만찬 후에 불어나는 뱃살은 헬스장을 찾아 운동 아닌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풍요로움이 부러우면서도 이 냉소적인 느낌은 열등감인가.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너그러워지고 싶어 고급 크리스탈 잔이 되어 본다. 찬란함과 영롱함에 맞는 고가의 술도 부어본다. 반사되는 빛에 눈이 부시다 못해 마음까지 시리다. 격에 맞추어 품위를 지켜야 하니 늘어지게 취하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맞지 않는 옷을 입었으니 이제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더운 국물이 채워진다. 대파 몇 쪽만으로도 잘 어울리는 누런 때깔의 묵은 된장이 녹아들며 거친 그릇을 데워준다. 촌스럽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동네 목욕탕에 퍼져 누운 기분이다. 내 이웃은 묵은지와 보리밥 한 사발이면 충분하다. 헐거운 고무줄 바지에 다리를 마냥 벌리고 앉아 먹어대도 배는 금방 꺼진다. 그저 털털함이 정겨워 정신줄 놓고 널브러지고 싶다. 찌그러진 막걸리 잔도 합류하려는데 호텔에서 나를 찾는단다. 가기 싫다. 그들은 우아하고 세련되었지만 도도한 차가움으로 왠지 나를 소심하고 주눅 들게 함이다. 싸한 눈빛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갑질이다. 겉모습보다 내면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는데 기분 좋은 바람이 잠을 깨운다.
찬바람이 불면서 남편이 감기로 누워있다. 고향의 어린 쑥에다 된장을 푼 구수한 죽을 기억해낸다. 구할 수 없는 옛 맛을 찾는 이쁜 짓을 하지만 나 역시 스산해지며 문득 그 장독대의 장맛이 그립다. 투박한 질그릇에 담겨있던 해묵은 장들은 질곡의 세월을 견디어낸 한 인간의 초연한 품성을 닮았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시댁 고향의 꾸밈없는 장독대, 늙은 엄마처럼 묵은 된장은 내 그리움을 치유하는 대상이 되었다. 도시에서 자라 고향이 사라진 내게 따뜻한 품을 내주었고 그림 같은 감나무도 심어 주었다. 마음에 담아 두고 귀하게 공들여 가꿀 일이다. 항시 기다려 주고 찾아갈 곳이 생겨 그리움을 가진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이 가을, 다시 만날 향기와 곰삭은 맛의 설렘으로 벌써 행복하다. 다만 어지신 시이모님이 백 살 넘게 사셨으면 좋겠다.
곽숙경 / 시드니 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