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의사를 전할 때 우리는 말로서 소통한다. 그러나 글이나 신호로서도 전할 수 있겠지만, 말로서 표현하면 의사 전달이 빠르기 때문이리라. 의사 전달을 잘하기 위하여 때로는 제스처나 얼굴표정, 몸가짐, 억양 등 감정까지 동원하여 자기의 생각을 잘 전하려고 애쓴다. 소통이 잘 되면 만사형통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낭패나 상처를 당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간에 있어서 소통으로 막히지 않고 효율과 효과를 올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대 공동체 사회에서 네트워크 없이는 아무것도 목표달성을 이룰 수가 없다.
오래 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졸업한 후 병원에 2년차 근무하던 딸이 갑자기 수녀가 되겠다고 했다. 청소년기도 지난 이때, 며칠 동안 방에서 식음도 전폐한 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도 금지하여 방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부모가 수도자가 되는 일에 허락을 해주지 않으니까 잠깐 시위를 보여주는 거겠지 하고 별일 아닌 양 대수롭게 생각하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하다 보니 덜컥 겁이나 잠긴 문을 비상 열쇠로 들어가 깨웠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귀 기울여 숨소리를 들으니 살아 있음에 마음이 놓였다. 침대 주위를 둘러보니 책상머리 맡에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겠느냐?’ 큰 글씨로 적어 놓고는 깨워도 이불을 더 뒤집어쓰고는 묵묵부답이다. 어찌 할 수가 없어 일어나지 않는 딸을 흔들어 깨우면서 식사라도 하고 시위하라고 하고는 그 방을 나왔다. 하나밖에 없는 딸 굶어 죽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의논해서 딸이 좋아하는 길로 보내자고 의견을 모았다. 영어권에서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이민까지 왔는데. 아내는 말렸지만, 결심이 단단히 서 있어 말릴 수도 없었다. 딸이 수도자의 길로 가면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허전할 것인가 생각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딸이 시집을 가든 수도자로 가든 헤어져야 할 건데 꿈을 향해 자유스럽게 훨훨 날라 성실하게 살아가라 마음속으로 빌었다. 부모로서는 결혼 정년기가 된 딸을 시집보낼 준비도 해야겠다는 설렘으로 기대도 하였지만, 부모의 생각이 과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딸에게 언제 입교하느냐? 물었더니 이틀 있으면 간다고 했다. 그렇게 갑자기…. 라고 말하고는 나는 말을 더하고 싶었지만 가슴이 아려 그 이상의 아무 말도 못하고 뒤돌아서 방문을 닫고 나왔다. 지금까지 잘 자라온 것만으로도 고맙기는 하지만 딸이 선택한 새로운 인생길이 두렵게 생각되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욕심과 평소의 소통 부족으로 인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딸의 생각을 읽지 못한 무관심과 몰이해. 서로가 마음고생과 고통만 안겨주었던 소통부족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자식과 부모의 인생길이 같지 않음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이야. 부모로서는 딸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랄 뿐이었다.
지난 내 어린 시절 동네 골목길에서 같이 놀던 여덟 살 옆집 친구가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깨끗한 옷을 입고 엄마 손에 이끌리어 학교를 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뛰어들어간 나는 엄마한테 애원하며 친구가 가는 학교에 가자고 졸랐다. 나이가 여섯 살이라 어려서 내년에 학교에 가야한다고 어머니 말에 철없는 나는 옆집 친구 따라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웠다. 그래도 안 되니까 마당에 뒹굴며 몇 시간을 울었더니 어머니가 어린 내 고집에 못 이겨 뒤늦게 깨끗한 옷을 입히고는 내 손을 잡고 학교에 가 용케 입학을 시켰다. 그 때 왜 그렇게 울며불며 억지를 부렸는지. 몸짓과 행동으로 생각과 감정을 쏟아 비언어적 표현으로 어머니에게 절박함을 나타내었던 철없던 그 어린 시절을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고3 시절 아버지한테 대학에 보내주지 않는다고 지붕 위에서 시위를 하다가 어머니가 안쓰러웠던지 결혼한 큰 누나를 불러 자초지종을 의논하여 등록금을 마련해주었다. 결국 나의 시위 (당시 나로서는 절대 절명의 행동이었다)로 대학을 마쳤지만 그 어렵던 시절 내 뒷바라지로 부모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딸아이도 시위하는 것을 아버지인 나한테 배웠나 하고 마음속으로 유추해 본다.
근세조선의 역사에서 배웠던 대원군의 쇄국정책도 외국과의 소통의 부족으로 이웃나라 일본에게 당한 36년간의 굴욕의 지배, 진나라의 분서갱유사건 (서적 불태움)으로 지식인과 백성의 소통부족으로 강성대국 15년도 채우지 못하고 유방에 의해 멸망, 오랜 서로마제국도 내부의 소통부족으로 인해 게르만족에 멸망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동서고금을 통해 역사적으로 어느 사회나 국가나 소통으로 국가의 흥망성쇠와 만사형통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세대간 소통, 문화와 종교간, 정치와 종교의 차이. 나라간의 영토분쟁, 역사적으로 미움과 갈등, 하물며 이념과 사상까지, 하고 많은 이 세상에서 분쟁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개인 및 사회에 대한 서로의 이해와 배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여 소통으로 생활에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화를 통해 열린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소통, 그것은 정녕코 인간이 풀어내야 할 영원한 과제로 남을 것인가.
양상수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