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시간
니체는 우리에게 더 나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을 예로 들었다. 첫째는 인간이 자연과 화해하게 됐고 문명이 자연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소적 인간, 둘째는 사려가 깊고 현명한 절제를 통해서 삶의 여러 가지 조건들과 갈등 없이 지내는 괴테적 인간, 셋째는 인간의 모든 질서가 비극적이며 일상적인 삶은 분열 그 자체라는 쇼펜하우어적 인간이 그것이다. 만약 니체가 지금의 세상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분류했을까 궁금해진다. 어쩌면 주류가 되어 있는 수많은 쇼펜하우어적 인간들을 보면서 그 특유의 시원한 독설을 쏟아내지 않았을까?
이성으로 통제 하지 못한 날뛰는 욕망에 끌려 다니다 욕망이 달성되는 순간 권태에 빠져 또 다른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군상. 그들은 욕망과 결핍과 권태를 오가며 비극적으로 일상을 지내는 무리들. 세계 속 패권국가들의 탐욕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키고 약소국의 천연자원을 탈취하고 국토를 유린하고 국민들을 분열시키며 자국의 이익만 챙긴다. 정체불명의 금융자본은 글로벌투자라는 가면을 쓰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 나라 저 나라 헤집고 돌아다니며 노동자들과 수요자들의 몫까지 수액처럼 이윤으로 빨아들인다. 수단과 방법은 상관없이 권력을 차지하고 돈을 많이 벌어들인 사람이 성공한 사람, 승리한 사람이다. 그들의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수단에 희생당한 사람은 실패자, 무능한 사람으로 불린다. 인격의 자리에, 정의의 자리에, 윤리의 자리에 돈이 앉아 있다. 멀쩡한 물건들이 신개발품에 밀려 쓰레기가 되고 입을 기회조차 없었던 옷들도 유행에 밀려 버려진다.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린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얼마 전에 본 영상뉴스는 충격이었다. 값싼 자선이라도 하듯 거리낌 없이 재활용통에 던져버린 옷들이 컨테이너에 실려 아프리카로 향하고 옷 꾸러미를 받아든 상인들은 시장에서 판매한다. 그러나 거기서도 남아도는 재고는 새 물건이 오기 전에 메마른 강속으로 던져진다. 시장을 뒤로 도는 강은 옷 쓰레기로 채워져 가는 장면이었다. 잦은 외식 무절제한 식생활문화는 한편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뒤덮이고 지구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굶고 앉아 있다. 미친 듯 생산해 내고 소비하고 있는 지난 백여 년 동안 소비한 천연자원과 식량이 이전 천년 동안의 사용량과 같다고 한다. 물질의 풍요와 물질 만능주의 반비례로 정신적 영역은 좁아지는가 보다. 대형서점에는 입시와 투자 그리고 성공신화와 관련된 서적이 한가운데 진열되어 있고 순수문학 서적은 한 귀퉁이로 밀려나 있다.
50년대 중반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나 마차와 달구지를 보며 어린 시절을 시작해서 나의 인지능력보다 빠를 다이나믹한 경제발전과 기계문명을 체험하며 지낸 적지 않은 세월. 강박관념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 느낌은 내 주변사람들이 욕망으로 충혈된 눈으로 절벽을 향해 달리는 양떼처럼 보였다. 그들과 함께 달리며 사방이 양떼로 둘러싸여 먼 곳을 볼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었다. 멈추어도 빠져 나와도 그 이름은 낙오자리라. 숨 막혀 달리기를 포기한 나는 낙오자라는 이름대신 이방인이라는 이름을 택해 이민을 왔다. 이방인이라는 어색한 삶 속에서 내 자신을 향하는 여유 있는 시선과 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보이지 않던 절벽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인류 전체로 볼 때 자연환경의 파괴와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로 지구가 회복불능의 상태로 인하여 인류가 자처한 멸망의 절벽을 의미할 것이다.
요즈음 양떼들이 멈추었다. 코로나19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보다 작은 병균이 전 세계 인간들의 질주를 멈추게 한 것이다. 공장 굴뚝에서,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던 매연가스들의 배출이 멈추고, 가로세로로 하늘을 가르며 구름을 흩어 놓았던 비행기도 사라졌다. 깊고 푸른 하늘은 어릴 때 보았던 고향 하늘 같고 두 팔 벌려 깊게 들여 마신 공기는 달고 맛있다. 갈 곳 없는 가족들은 삼시세끼 함께 먹으며 새삼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들. 사람이 살아 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고 한 권의 책으로, 화분을 들여다보는 행위로 행복할 수 있음을 배우는 시간. 무엇보다도 후손들이 살아갈 소중한 우리의 별 지구가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며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팬데믹 이래 유난히 많았던 기록적인 대홍수와 지진 등은 인간들에게 주는 지구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생존하며 소중한 지구도 지켜가는 많은 루소적 인간들이 이세상의 주류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