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양가 집안이 5대째 호주에서 살아왔다는 법정 변호사(barrister)와 화려한 점심식사를 가졌다. 법정에서 가발과 가운을 쓰고 기 세게 변론하는 배리스터들에게 일감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 Solicitor들이기에 점심값은 항상 배리스터의 몫이다. 백인 남자들만의 전용인 듯한 영국식 고급 클럽 라운지에서 직원들로부터 전근대적 접대를 받으며 백포도주, 적포도주를 함께 한 멋들어진 식사시간이었다. 양가 집안 모두 영국에서 호주로 강제 이송된 죄수들의 후예였다는 배리스터는 옆 테이블에 자리잡은 대법원 판사와 NSW 주 법무부 장관과 반갑게 인사하는데 마치 죽마고우 마냥 농담을 나눈다. 연방 자유당 전 당수와는 대학교 동창이고 전 주 수상과는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시드니 저명인사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조상에 진사, 군수, 판서 정승은 없으나 죄수들의 후예들이 눈부시게 출세한 호주 상류사회다.
호주에서 마지막으로, 합법적으로 처형된 사람은 1967년 멜번에서 사형된 Ronald Ryan이다. 멜번 Pentridge 교도소에서 탈옥 중 간수를 총으로 쏘아 죽인 죄명으로 사형되었다. The Queen v Ryan and Walker라는 검찰청(여왕)이 Ryan과 공범 Walker를 상대로 한 형사재판이 진행되었다. 12명의 배심원들 앞에서 재판이 진행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 이후 호주에서는 사형선고가 없어졌다. 1996년 타즈마니아에서 35명을 사살한 mass murderer 마틴 브라이언트도 사형되지 않고 종신형으로 복역 중이다.
피의자가 형사재판에서 승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호주 검찰에서 형사재판을 진행할 때는 충분한 근거와 증거자료 수집을 마친 후에 소송을 시작하기에 그렇다. 반대로 형사처벌 또한 12명의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피의자의 죄를 Beyond Reasonable Doubt 수준의 확신을 가져야 혐의가 인정되는 것이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어려운 형사재판을 결정하는 사람은 판사가 아니라 12명의 일반인들이다. 1957년 명화 ‘12 Angry Men’에서와 같이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중한 책임이 법과 전혀 상관없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불과 2주 전인 9월 중순, NSW 대법원에서 중국계 여인이 피의자로 기소된 남편의 죽음 관련 형사소송에서 승소하였다. 12명의 배심원들이 90분 숙의를 마친 후 무죄를 선언하자 Clifton Hoeben 대법원 판사는 ‘대법원 판사 생활 13년 만에 첫 무죄 판결이군’ 하며 빙그레 웃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호주에서는 형법을 위반하여 기소될 경우 한국과 달리 합의라는 것이 없다. 폭행, 절도 등 모든 형법 위반은 경찰과 피의자간의 소송으로 경찰이 금전을 댓가로 한 합의에 동의할 리 만무하다. 피해자는 증인으로 남을 뿐 소송절차에서는 제외된 입장일 뿐 아니라 가해자와의 접촉이나 ‘흥정’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행위가 되어 그 자체가 위법이다.
호주 한인들 가운데 발생하는 형법위반 행위 중 불행하게도 살인, 살인미수, 절도, 폭행 등 강력범죄들도 포함되어 있다. 대다수가 한국 이민자의 정서와 감정을 배경으로 한 돌발사고일 경우가 많다. 돈과 영주권으로 얽매여서인지 놀랍게도 죄과를 경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변호사를 마술사로 착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은 엄청난 오산이다. 범죄의 댓가는 12명의 배심원 앞에서 에누리 없이 치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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