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에서 발생한 에어로졸 대기 냉각효과, 화산폭발 영향 맞먹어
중국발 코로나 19 대유행이 호주에 상륙하기 전인 2019년-20년 여름 호주 남동부를 집어삼킬 듯 할퀴고 간 유례없이 길었던 ‘검은 여름(Black Summer)’ 산불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발생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또한 산불로 발생한 미세먼지를 포함 에어로졸이 일으키는 대기 냉각 효과는 화산폭발로 인한 화산재 냉각 효과와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하반기부터 여름기간 내내 호주에서는 수백 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했고 특히 남동부에 집중됐다. 대규모 산불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최고 수준에 달했다.
2020년 3월 9일 기준 산불로 소실된 면적은 약 1,860만 헥타르에 달하며, 가옥 2,779채를 포함해 건물 5,900채가 파괴됐으며, 최소한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이나 건물뿐 아니라 수많은 동물이 산불로 스러졌고, 그 기간 생수로 화상을 입은 코알라를 구조하는 영상은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당시 구조된 코알라는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안락사됐다. 산불로 영향을 받은 동물은 육지 척추동물만 거의 30억 마리에 가까우며 많은 멸종위기 종들이 멸종 가까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산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모든 남부 및 동부 주에서 대기 질이 위험 수준으로 떨어졌다. 산불 처리 비용은 악명높은 2009년 검은 토요일 화재의 44억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경제전문가들은 2019-20년 여름 호주 산불로 인한 재산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1,03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해 피해액 기준 호주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2020년 1월 7일, 호주 산불 연기는 남태평양을 가로질러 약 11,000킬로미터를 이동해 칠레와 아르헨티나까지 이르렀다. 2020년 1월 2일 기준, NASA 추정 호주 산불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억 6백만 톤에 달한다.
양성 인도양 쌍극자, 호주
고온 건조기후 강화로 산불 장기화
한국과 독일, 키프로스 연구진으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팀은 지난 20년(2000-2020)간 축적된 위성 관측 자료를 기반으로 기후변화 인자와 산불 발생위험지수를 활용하여, 2019-2020 호주 산불 발생원인 이 기후변화의 영향임을 증명하였다. 국제 공동연구팀은 한국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장동영 박사와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과 독일 막스 플랑크 화학연구소, 국립환경과학원, 키프로스 연구소,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연세대학교 대기과학과,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으로 구성됐다.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호주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인도양의 해수면 온도 변화 분석을 통하여, 2019년 이례적으로 강한 인도양의 양성 쌍극자지수를 진단했다. 양성 인도양 쌍극자는 초여름과 늦가을 사이에 인도양 열대 해역의 수온 변화로, 동부의 낮은 수온과 서부의 높은 수온 분포를 보이는 대기 해양현상이다. 이는 인도양 주변 지역의 강수량에 영향을 주어, 인도양 서쪽에 위치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강수량을 증가시키며, 인도양 동쪽 지역은 강수량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양성 쌍극자지수는 호주의 고온 건조기후를 강화시켜 호주남동부지역에서 산불이 장기화하는 데 기여했다.
산불 대기오염물,
지표면 온도 최대 4.4도 감소
또한 산불이 미세먼지를 포함한 에어로졸의 양과 그로 인한 대기 복사강제력(radiative forcing)을 증가 시켜 대기 냉각 효과로 지표면 온도를 최대 4.4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보통 수준의 화산폭발 시 발생하는 화산재의 복사강제력에 맞먹는 정도의 영향력이다.
연구팀은 같은 기간 위성으로 관측된 화재발생지역, 활성화 화재 수 및 에어로졸의 광학 깊이 분석을 통하여, 화재발생지역의 식생과 기후조건, 복사강제력과 상호관련성을 설명하였다.
복사강제력이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여러 물질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단위면적 당 에너지 변화율(W/m2)로 표현한다. 이러한 복사강제력은 잠재적인 기후변동 메커니즘의 중요한 지표이다. 양(+)의 복사 강제력은 지표면 온도를 상승시키는 경향이, 음(-)의 복사강제력은 지표면 온도를 하강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복사강제력이 양수이면 지표 온난화가 진행되고, 음수이면 지표 냉각화가 진행된다.
이와 더불어 지표 알베도(albedo) 및 지상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경험 식을 활용하여 호주남동부지역 산불로 발생된 대기오염물로 강화된 대기 복사강제력을 -14.8 ~ -17.7 Wm-2로 진단했다. 알베도는 표면이나 물체에 입사된 일사 대비 반사된 일사의 비율을 말하며 퍼센트(%)로 표현한다. 눈이 덮인 표면은 알베도가 높으며 흙이 덮인 표면의 알베도는 높은 값에서부터 낮은 값까지 다양하다. 초목으로 덮인 표면과 해양은 낮은 값을 보인다. 지구의 알베도는 구름·눈·얼음·나뭇잎으로 덮인 지역 및 토지 피복도의 변화 정도가 변함에 따라 주로 바뀐다.
호주 남동부 지역 산불로 발생한 대기오염물로 커진 대기복사 강제력을 막스 플랑크 대기화학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후 화학 모델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냉각 효과는 지표면 온도의 약3.7-4.4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발생 빈도가 증하고 그 피해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증가하고 있다. 광범위한 산불은 엄청난 양의 에어로졸을 방출 시켜, 대기 복사 강제력에 영향을 주며, 주로 이는 강한 냉각 효과를 가져온다. 연구팀은 2019~2020년 호주 산불을 통해, 바이오매스 연소 에어로졸로 교란되는 복사 강제력이 보통 정도의 화산 폭발로 방출되는 화산재의 냉각 효과와 유사함을 보여줌으로써, 파괴적인 화재로 인한 에어로졸의 복사 강제력 변화가 지구 기후를 어떻게 교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기후재난 발생 시간문제
이번 국제 공동연구 책임자 정 수종 교수는 “작년 발생한 역대 최악의 불 난리에 이어 올해 최악의 물난리까지 연이어 최악의 기후 재난을 만난 호주 사례를 통해 경험했듯이, 한반도에서 역대 최악의 기후재난이 발생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이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지역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및 에어로졸 등에 대한 과학적인 감시가 강화되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미래 기후 변화에 대한 통합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국제 공동연구팀 분석 결과는 3월 30일 국제 학술지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온라인으로 발표되었다.
@copyright 한국신문 박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