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수 차례 받고도 조치 안한 경찰에 비난 봇물
가해자인 양모 ‘살인죄 처벌’ 요구 목소리도 커져
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 사건과 관련한 공분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과 관계 기관이 여러 차례 학대와 사망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론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에 올라온 관련 국민청원 게시글도 동의 인원 2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 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6일 오전 23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지난 4일 게시된 글은 하루 만인 5일 정부의 공식 답변 요건인 20만 명 동의를 넘어선 뒤 참여인원이 계속 늘고 있다.
작성자는 “최전선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국가 기관이 아동학대 신고를 수차례 받고도 묵인·방조했다”라며 “그 책임의 대가를 반드시 묻고 싶다”라고 적었다. 또 “2021년을 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2의 제3의 정인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에도 경찰과 관계 기관은 뒷짐지고 계실 겁니까?”라고 비판했다.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 사건을 담당한 경찰의 파면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6일 오전 현재 동의인원 23만 명을 넘어섰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정인 양의 학대 사실을 여러 차례 신고받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양천 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시민들의 항의성, 경찰 비난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폭주로 한때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정인 양에 대한 학대 신고 처리와 감독 업무를 맡았던 경찰관들이 ‘경고’ 처분에 그친 징계를 받은 것에 분노를 표했다.
경찰에 대한 질타는 정치권에서도 이어졌다. 주호영 국민의 힘 원내대표는 5일 “소아과 의사마저 112에 신고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경찰이 안일하게 방치했다”면서 “이쯤 되면 방조범이자 공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해 엄격한 책임을 물어 달라”라고 요구했다.
책임자인 이화섭 양천경찰서장은 언론과의 통화에서 “마음이 무겁고 참담하다.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정인 양 사건과 관련해 종료된 또 다른 국민청원도 동의 인원 20만 명을 넘어서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글쓴이는 정인이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뒤인 지난해 11월20일 가해자들을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16개월 입양아 학대살인사건 가해자부부의 신상공개와 살인죄 혐의 적용으로 아동학대의 강한 처벌 선례를 만들어주세요’ 라는 제목의 글에서 작성자는 양부모의 살인 고의성이 명백하고 영아의 생명을 짓밟는 잔혹한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해선 신상공개와 살인죄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후 16개월 된 정인 양을 상습 학대·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양모 장 아무개 씨가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정인이의 양모인 장 아무개 씨를 기소하면서 아동학대 치사와 아동 유기·방임 등 혐의를 적용했지만, 살인죄는 공소장에 적지 않았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죽이겠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사망에 이를 만한 위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검찰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살인의 고의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관계 기관의 지적과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검찰은 정인이 사망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재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살인 고의성 등이 입증되면 공소장이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인지하고 후속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안타깝게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 양은 지난해 10월13일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양부모로부터 상습적인 폭행·학대를 당했으며, 등 쪽에 강한 충격을 받아 사망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정인 양 입양 이후 3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은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부모에게 돌려보낸 사실이 알려지며 거센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copyright 이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