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당들이 2025년 총선을 앞두고 주택 및 세금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양측 모두 일요일(13일) 각각의 공약을 내놓으며 대조적인 접근법을 선보였다.
유세 현장 분위기
노동당, 세련된연출, 자유당, 절제된무대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는 퍼스 컨벤션 센터에서 500명의 지지자 앞에서 선거 캠페인을 출범시켰고, 리처드 말스(Richard Marles) 부총리와 함께 더튼 대표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강화했다. 그는 더튼 대표가 호주 서비스를 ‘미국화’하려 한다며 비판했다.
알바니즈 총리는 “우리는 팁에 의존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 구조를 갖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름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더튼 대표를 미국식 임금 및 의료 시스템으로 몰아세우는 전략을 이어갔다.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 전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알바니즈 총리는 연설에 앞서 노동당의 산업 관계, 기후 변화, 재생에너지, 성평등, 건강 정책을 강조한 영상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This is What We Do)’을 상영했다. 로저 쿡(Roger Cook) 서호주 주총리, 앤 알리(Anne Aly) 장관 등도 함께 자리했다.
알바니즈 총리는 “노동당의 비전은 다른 나라의 정책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호주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식 임금 구조나 의료 시스템을 원하지 않는다. 호주 학생들이 평생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피터 더튼(Peter Dutton) 자유당 대표는 시드니 서부의 리버풀 가톨릭 클럽에서 조용한 분위기의 출정식을 열었다. 현장에는 약 250명의 참석자만 초대됐고, 자유당이 전통적으로 열세였던 지역구 웨리와(Werriwa) 탈환 의지를 드러냈다.
린지(Lindsay) 지역구의 멜리사 맥킨토시(Melissa McIntosh) 의원은 개회 연설에서 “서부 시드니는 이제 자유당의 심장부”라고 선언했다. 더튼 대표는 “이번 총선은 우리나라의 ‘슬라이딩 도어’ 순간”이라며 “자유당은 정부를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 호주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될 필요는 없다. 이번 선거는 선택의 기로다. 노동당은 호주를 더 약하고, 덜 안전하며, 더 힘들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더 강하고 안전한 호주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공약-첫주택 구매자 공략
더튼 대표는 신규 주택을 구입하는 첫 주택 구매자에 한해 주택담보대출 이자 상환액을 소득공제 대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외곽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를 되찾기 위한 전략이다.
더튼 대표는 일요일 연설에서 자유당·국민당 연합의 핵심 공약인 ‘첫 주택 모기지 이자 소득공제’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첫 주택 구매자가 최대 65만 달러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발생하는 이자 상환액을 본인 소득에서 공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에 따라 소득세율 30% 구간에 해당하는 납세자는 5년간 과세소득에서 총 6만 달러를 공제받을 수 있다. 자유당은 이 공제를 통해 연 1만 2000달러, 총 5년간 최대 6만 달러의 세금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자유당은 여기에 더해 1년간 유류세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60억 달러 공약, 연소득 14만 4000달러 이하 근로자에게 최대 1200달러를 지원하는 100억 달러 규모의 생계비 세액공제 정책도 함께 내놨다.
알바니즈 총리는 근로자의 업무 관련 비용에 대한 세금 인센티브와 1기 집권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며 맞불을 놓고 있다. 이번 총선 캠페인은 실질적인 조세 개혁이나 재정 건전성 회복보다는 단기적인 현금성 지원에 집중되고 있다. 알바니즈 총리는 첫 주택 구매자를 위한 주택 10만 채 건설에 100억 달러, 모든 근로자에게 최대 1000달러까지 자동 공제 혜택을 주는 정책에 24억 달러를 배정했다.
양당은 각각 퍼스(Perth)와 시드니(Sydney) 서부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주택 공급, 생계비 지원, 세금 감면책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유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포퓰리즘성 공약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부동산 시장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며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총선을 3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는 외곽 지역과 첫 주택 구매자, 현장 직종 유권자(tradie)를 공략하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노동당
▪첫 주택 보조금 확대-노동당은 첫 주택 구매자 보조금(First Home Buyer Guarantee) 제도를 대폭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소득 제한과 주택 가격 상한선을 모두 상향하거나 폐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제도는 2020년 모리슨(Morrison) 정부 시절 도입된 것으로, 첫 주택 구매자가 5%의 보증금만으로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연 소득 12만5,000달러 이하의 구매자만 신청 가능했고, 시드니(Sydney) 기준 90만 달러 이하의 주택에만 적용됐다. 연간 신청 가능 인원도 5만 명으로 제한돼 있었다. 노동당은 이 제한을 모두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소득 제한을 폐지해 모든 첫 주택 구매자가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주택 가격 상한선도 대폭 상향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시드니는 150만 달러, 멜번(Melbourne)은 95만 달러, 브리즈번(Brisbane)은 100만 달러까지 가능하도록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100,000채 신규 주택 건설-알바니즈 총리는 재집권할 경우, 첫 주택 구매자를 위한 신규 주택 10만 채를 건설하기 위해 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연방정부는 각 주정부와 협력해 미개발 또는 저활용 상태인 정부 소유지를 중심으로 ‘적절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인허가 절차도 신속히 진행되도록 압박할 계획이다. 클레어 오닐(Clare O’Neil) 주택부 장관은 “민간 부문보다 저렴한 가격의 주택이 될 것”이라며 “지난 40년간 호주는 충분한 주택을 건설하지 않았고, 신규 구매자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주택도 부족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야만 한다”고 말했다.
▪1,000달러 간편 세금 공제-노동당은 근로 관련 공제 항목을 간소화해 개별 항목을 따로 청구하지 않고도 1,000달러를 자동으로 공제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알바니즈 총리는 “영수증 박스도, 온라인 뱅킹 기록도, 복잡한 서류도 필요 없다. 그냥 박스를 체크하면 세금 신고가 끝난다”고 설명했다. 노동당은 전체 납세자의 39%에 해당하는 약 570만 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들은 평소 1,000달러 이하의 공제를 신청하는 납세자들이다.

■연립당
▪주택 대출 상환액 소득 공제-더튼 대표가 이끄는 연립당은 첫 주택 구매자가 주택 대출 상환액을 세금 신고 시 공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혜택은 새로 지어진 주택을 구매하는 첫 주택 구매자에게 적용되며, 최대 65만 달러까지의 대출금에 해당된다. 연립당은 이 제도를 통해 연 소득 12만 달러인 구매자가 65만 달러의 주택담보대출(이자율 6.1%)을 받을 경우, 연간 약 1만2,000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또한 “주택 건설 활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조금 상한 일부 상향-연립당 역시 첫 주택 보조금 제도의 확대를 약속했지만, 노동당보다는 제한적이다. 보조금 제공 인원 수에 대한 상한은 없애고, 주택 가격 상한은 노동당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밝혔다. 다만 소득 제한은 완전히 없애지 않고, 개인 신청자의 소득 상한은 17만5,000달러로, 공동 신청자는 25만 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생활비 세금 환급 제공-연립당은 ‘생활비 세액공제(Cost of Living Tax Offset)’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연 소득 4만8,000달러에서 14만4,000달러 사이의 납세자에게 최대 1,200달러의 일회성 세금 환급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총 비용은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공약은 과거 턴불(Turnbull) 정부 시절 제공된 저소득·중간소득 세액공제(Low and Middle Income Tax Offset)와 유사하다. 당시에는 연 소득 12만6,000달러 이하 납세자에게 최대 1,080달러가 지급됐다. 이 제도는 원래보다 오래 유지되다 2023년에 종료됐다.

경제학자들, 양당모두 현실외면
경제학자 크리스 리처드슨(Chris Richardson)과 솔 이슬레이크(Saul Eslake)는 양당의 공약이 모두 재정적으로 무책임하며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리처드슨은 “양당 모두 쓰레기 같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세계는 불타고 있는데, 우리는 ‘정치적 영리함’이 아니라 ‘정책적 영리함’을 선택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인플레이션은 ‘너무 적은 물건을 너무 많은 돈이 쫓을 때 발생한다’”며 “정부가 현금을 뿌릴수록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더 길고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솔 이슬레이크는 “양당 모두 집값 상승 압력을 키우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 선거가 코앞이라 그런가 보다”라고 꼬집었다.
자유당 캠페인 대변인 제임스 패터슨(James Paterson)은 노동당이 약속한 1000달러 업무비용 공제를 비판하며 “2012-13년 예산에서 노동당은 같은 항목을 폐지해 20억 달러를 절약하려 했던 적이 있다. 노동당은 말이 아닌 행동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부동산공약에는 긍정적
주택 및 건설업계는 양당의 부동산 공약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노동당의 공공주택 정책과 자유당의 ‘첫 주택 모기지 이자 소득공제’ 모두 주택 건설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자유당의 해당 정책은 연소득 17만 5000달러 이하 개인, 또는 부부 합산 25만 달러 이하의 첫 주택 구매자가 대상이다. 30년 만기로 6.1% 이자율의 65만 달러 대출이라면, 5년간 약 19만 달러의 이자를 부담하게 된다.
호주건축협회(Master Builders Australia)의 데니타 원(Denita Wawn) 대표는 “이 정책은 첫 주택 구매자의 대출 한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세금 감면책”이라고 평가했다.
주택산업협회(Housing Industry Association)의 조슬린 마틴(Jocelyn Martin) 대표 역시 “자유당 정책은 2029년까지 120만 채 주택 건설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 노동당의 정책 역시 신규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바니즈 총리는 벤 치플리(Ben Chifley) 전 총리의 “주택은 시민의 권리이자 필수”라는 말을 인용하며 노동당의 주거 정책을 강조했고, 더튼 대표는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택 소유의 꿈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더튼 대표는 총선 공약에서 자유당 정부의 재정 흑자 달성 방안은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노동당 정부는 집권 이후 지출을 4250억 달러 늘렸고, 이로 인해 금리 인하가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