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미국 관세 면제 협상 난항
호주가 미국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에서 면제를 받기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초기에 호주의 요청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최근 들어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등 고위 관계자들이 호주가 보조금을 받은 철강과 알루미늄을 미국 시장에 덤핑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협상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호주의 주미 대사 케빈 러드(Kevin Rudd)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와 막판 협상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돈 패럴(Don Farrell) 무역장관은 월요일, 관세 면제를 위해 마지막 순간에 워싱턴을 방문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는 호주의 철강 및 알루미늄 업계와 협의하며 대책을 모색 중이다.
트럼프, 턴불 맹비난
협상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전 호주 총리에 대한 맹비난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루스 소셜(Truth Social)’ 네트워크를 통해 “말콤 턴불은 항상 뒤에서 호주를 이끌던 약하고 무능한 지도자였다. 그는 중국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능력도 없었다. 나는 그가 약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했고, 호주 국민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라고 주장했다.
턴불 전 총리는 앞서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ㆍ알루미늄 관세 정책이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경제적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하며,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 경제를 경기 침체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으며, 시진핑(Xi Jinping) 중국 국가주석이 이를 이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트럼프는 한결같이 혼란스러울 것이고, 예측 불가능할 것이며, 무례하고 공격적일 것”이라며 “그는 더욱 거칠고 극단적인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턴불 전 총리는 ABC ‘7.30’ 프로그램에서 “트럼프는 사람들에게 아첨받기를 원하는 bully”라며 “우리가 백악관을 기어가서 그를 천재라고 칭송해야 하나?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ABC가 트럼프를 비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언론이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져야 하는가? 우리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언론의 자기검열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또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푸틴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며 “트럼프는 세계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나는 2018년에 트럼프 정부를 설득해 관세 면제를 받아냈다. 이번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와 호주 정부, 협상 교착 상태
패럴 무역장관은 호주가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협상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3일간 상황을 면밀히 주시한 뒤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알바니즈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호주의 면제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미 행정부 내에서 상반된 입장이 표출되며 논란이 가중되었다. 호주의 면제 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미 행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우려를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고문인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등은 호주가 보조금을 받은 철강과 알루미늄을 미국 시장에 덤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알바니즈 총리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동반자로서 호주의 국익을 위해 계속 협상할 것”이라며 “미국도 호주와의 교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AUKUS 협정을 통해 미 방산업체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정부 대응 비판. 패럴 “정치적 이용 경계”
야당인 자유당의 무역 대변인 케빈 호건(Kevin Hogan)은 “정부가 관세 면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중대한 실패”라며 “알바니즈 총리는 용기가 부족해 워싱턴을 직접 찾지 않았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와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Shigeru Ishiba) 총리는 직접 트럼프를 만나 협상했다”고 비판했다. 호건은 “턴불 정부는 2018년 트럼프의 철강ㆍ알루미늄 관세에서 호주를 면제받았다”며 “이번에도 면제를 받을 좋은 기회였지만, 정부가 이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반면 호주 상공회의소(ACCI) 대표 앤드류 맥켈러(Andrew McKellar)는 “정부는 가능한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며 “만약 면제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패럴 장관은 야당이 이번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자유당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200억 달러 규모의 무역 장벽을 남겼지만, 우리는 이를 해결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트럼프의 지난번 철강ㆍ알루미늄 관세 발표 후 면제받기까지 9개월이 걸렸고, 중국과의 무역 관계 정상화에는 3년이 걸렸다. 이런 협상은 결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이클론 알프레드 대응, 알바니즈의 최우선 과제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는 현재 미국 방문보다 사이클론 알프레드(Cyclone Alfred) 대응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24시간 동안 호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내 초점은 남동부 퀸즐랜드와 북부 뉴사우스웨일스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이클론 피해 복구를 위한 정부 지원책을 점검하고 있으며, 피해 지역 주민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이클론 알프레드 대응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24시간 동안 호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내 초점은 남동부 퀸즐랜드와 북부 뉴사우스웨일스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야당 일부 인사들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 가능성을 제기하며, 서호주(WA) 주총리 로저 쿡(Roger Cook)의 미 부통령 JD 밴스(JD Vance)에 대한 비판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당의 브리짓 맥켄지(Bridget McKenzie)는 “호주는 미국과의 관계를 신중히 다뤄야 한다”며 “턴불 정부 시절에는 트럼프와 협력해 관세 면제를 얻어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동당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입장이다. 노동당 소속 머리 와트(Murray Watt) 고용장관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확고하다. AUKUS 협정에 대한 초당적 지지도 여전하다”며 “이번 철강ㆍ알루미늄 관세 문제에서도 양국 간 협력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NZUS 동맹 흔들리나, 방위비 지출 두고 갈등
호주와 미국, 뉴질랜드 간 군사 협력을 규정한 ANZUS 조약이 1951년 체결된 이후 처음으로, 호주 총리의 발언이 동맹의 근간을 흔들 위험에 처했다.
알바니즈 총리는 최근 미국의 방위비 지출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는 발언을 내놓으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마침 중국의 무장 함정이 호주를 일주일 동안 일주하며 호주의 방위 역량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 시점에 나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논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보로 지명한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가 의회에서 “호주는 방위비로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3%를 지출해야 한다”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ANZUS 조약이 “각국이 무력 공격을 저항할 개별적 역량을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콜비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제이디 밴스(JD Vance) 부통령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미국은 ANZUS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위비 수치를 요구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호주에 공식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방위비 증가 요구 거부
그러나 알바니즈 총리는 이에 대해 “호주의 국익은 호주가 결정한다”라며 방위비 추가 증액에 선을 그었다. 그는 “정부는 이미 국방을 위해 상당한 추가 예산을 배정했다”라며 미사일 시스템 등 군사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호주의 국방비 지출은 GDP 대비 2% 수준이며, 정부는 2034년까지 이를 2.34%로 높일 계획이다. 반면 미국은 GDP의 3.4%를 국방비로 사용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들에는 5% 지출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방위비 지출 계획이 공개되면서, 콜비를 비롯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ANZUS 조약의 문구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은 최근 호주의 중동 지역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의 균열이 초래할 위험
오는 총선에서 호주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이슈는 물가 상승, 주택난, 이민 문제, 에너지 비용 상승 등이지만, 국가 안보 문제야말로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를 거절한 것이 ANZUS 조약 이행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초래할 경우, 이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사례에서 보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국가에 대한 군사 지원을 끊은 전례가 있다. 1950년대 ANZUS 조약을 성사시킨 당시 호주 외무장관 퍼시 스펜더(Percy Spender)는 호주의 방위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호주는 세계에서 8번째로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인구 대비 영토 면적도 10번째로 크다. 이는 방어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국방력 저하와 비효율적 지출
현재 호주의 국방비 지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0.5% 낮고, 고소득 국가 평균보다 0.8% 낮다. 하지만 호주는 지정학적 위치와 국토 규모를 고려할 때 훨씬 더 많은 방위 예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호주는 그동안 군사 장비 도입 과정에서 많은 실책을 범해왔고, 육군 전력을 크게 줄이는 등 국방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되었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4년까지 국방비의 대부분이 핵잠수함 프로그램에 집중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재래식 방위 시스템은 더욱 취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 동맹 ANZUS, 현대적 협력 AUKUS
미국, 호주, 뉴질랜드가 체결한 ANZUS(태평양 안보 조약)와 미국, 영국, 호주가 합의한 AUKUS(군사 기술 협력 협정)는 각각 냉전과 21세기의 안보 환경에서 출발한 협정이다. 두 협정은 모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 협력을 목표로 하지만, 내용과 목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ANZUS 조약은 1951년 냉전 시기 태평양 지역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세 나라가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상호 협력하여 대응한다는 방위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뉴질랜드가 핵 추진 및 핵무기 탑재 함정의 입항을 금지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미국과의 군사 협력이 중단되었고, 현재 ANZUS는 사실상 미국과 호주 간의 군사 동맹으로 기능하고 있다.
2021년 발표된 AUKUS는 미국, 영국, 호주 간의 군사 기술 협력에 초점을 맞춘 협정이다. 이 협정의 핵심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며, 사이버 안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첨단 미사일 기술 협력도 포함된다. 그러나 ANZUS와 달리 AUKUS에는 상호 방위 의무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군사적 지원보다는 기술적 협력을 강조하는 성격을 가진다.
ANZUS 유지 위한 역사적 교훈
1951년 ANZUS 조약이 체결된 것은 단순한 외교적 행운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외교적 협상의 결과였다. 당시 스펜더 외무장관은 1950년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미국 대통령과 단 15~20분의 면담 기회를 가졌다. 그는 원래 준비했던 연설을 접고, 대통령의 딸 마거릿 트루먼(Margaret Truman)이 언론으로부터 받은 비판에 대해 위로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이후 트루먼 대통령이 “이제 본론을 말해달라”라고 하자, 스펜더 장관은 “미국, 뉴질랜드, 호주 간 방위 조약을 맺고 싶다”라고 간단명료하게 요청했고,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ANZUS 조약이 성립된 것이다. 이후 호주는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이 개입한 주요 전쟁에 참전해왔다. 역대 총리들은 ANZUS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왔지만, 현 정부가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과거의 흐름과는 다른 길을 가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의 국제 정세와 ANZUS 조약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호주는 미국과의 방위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