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신입생 대상 ‘젠더 교육’ 논란
호주의 주요 명문대학 중 하나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신입생들이 개강 첫 주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학 측이 필수 과정으로 지정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iversity, Equity, Inclusion, 이하 DEI)’ 교육 때문이다. 이 교육은 젠더와 계층 간 불평등을 조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특히 법조계 내 여성 차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구성됐다. 강의 자료에는 여성 법조인의 승진이 남성보다 느린 이유로 ‘구조적 장벽’이 작용한다는 주장이 포함됐다.
그러나 현재 호주 내 법조계 종사자 통계를 보면 여성 변호사가 56%, 남성 변호사가 46%로 여성 비율이 더 높다. 정부, 기업, 공익 변호사 등 다양한 법률 직군에서도 여성의 수가 남성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법조계가 성차별적이라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신입생은 “강의 중간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로 강압적인 분위기였다”며 “누군가 질문을 던질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기업들도 DEI 정책 철회 움직임
DEI 논란은 대학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DEI 정책을 철회하면서 호주에서도 이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메타(Meta)는 최근 직원들에게 DEI 관련 프로그램을 폐지한다고 알렸다. 회사의 인사 담당 부사장인 자넬 게일(Janelle Gale)은 내부 메모를 통해 “미국 대법원이 최근 판결을 통해 DEI 정책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바꾸고 있다”며 “차별 금지를 강조하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하는 흐름”이라고 밝혔다. 메타는 이에 따라 고용·승진·구매 등 다양한 부문에서 DEI 목표 설정을 중단하고, DEI 전담 팀을 해체하기로 했다. 맥도날드(McDonald’s)와 월마트(Walmart) 등 다른 미국 대기업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주 기업들, 변화에 눈 감나
반면 호주 기업들은 여전히 DEI 정책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DEI 정책이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 주요 비판점이다. 즉, 자격이나 실적이 아닌 특정 성별이나 인종에 따라 채용과 승진이 이루어지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특히 ASX(호주증권거래소) 산하 기업지배구조위원회가 기업들에게 DEI 정책을 강요하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DEI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이제는 능력이 아니라 특정 DEI 요소를 충족하는지가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젠더 평등 목표, 개인의 선택 존중해야
DEI 교육과 정책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의 승진 속도가 남성보다 느린 이유가 반드시 차별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법조계에서 여성 변호사가 남성보다 더 적은 근무 시간을 원하거나 가정을 위해 경력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면, 이를 무조건 ‘구조적 차별’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성희롱 개념이 지나치게 확장되면서 직장 내 남성과 여성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조차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DEI, 선택 과목으로 바꿔야
대학과 기업에서 DEI가 ‘강제 교육’이나 ‘필수 정책’으로 자리 잡는 것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특히 대학의 경우, DEI 관련 강의를 선택 과목으로 바꾸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법학과 학생은 “법대에서 논리와 토론을 배우러 왔는데, DEI 교육에서는 다른 의견을 낼 분위기조차 없었다”며 “진정한 다양성은 사고의 다양성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DEI의 현실과 후퇴하는 흐름
DEI의 확대는 최근 몇 년 간 많은 분야에서 두드러진 변화였으나,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일부에서는 급격히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DEI 정책을 철회하고 있는 가운데, 이는 단순히 기업 문화의 변화가 아니라, 시대적 요구와 변화의 흐름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들이 DEI 정책을 재검토하며 “차별 금지”를 강화하는 법적 흐름에 맞춰 정책을 수정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반면 일부 예술과 학계에서는 여전히 DEI가 강력히 주장되고 있으며,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된 논쟁은 계속해서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예술과 학계의 DEI, 사회에서 점점 더 멀어지나
예술과 학계에서는 여전히 DEI가 중요한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과연 대중의 요구와 일치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예술과 학문 분야에서의 “정치적 올바름”은 점점 더 특정 집단의 의견을 대변하는 형태로 치우쳐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예술과 문학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일부 고전 작품에서 불편한 역사를 제거하는 작업이나 비판적인 시각을 첨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때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예술과 학문이 대중과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술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정치적 메시지로 압도되면서, 진정한 창작의 자유와 사고의 다양성이 억압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DEI의 확장은 단순한 사회적 가치의 증진을 넘어서, 특정 이념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 DEI의 원래 취지가 퇴색하고, 이를 강제하는 교육과 정책이 자칫 공정성과 개인의 선택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회 곳곳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킬 것이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