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케어 공약, 선거 전쟁의 핵심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가 내놓은 85억 달러 규모의 메디케어 확대 정책이 선거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피터 더튼(Peter Dutton) 야당 대표는 이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공공 부문 감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더튼은 연간 60억 달러, 총 240억 달러의 절감 효과를 목표로 하며, 노동당 집권 이후 증가한 3만6000명의 공무원을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유당, 메디케어 확대 전격 수용
지난 일요일 알바니즈 총리는 2030년까지 10명 중 9명이 무료로 GP(일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메디케어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 직후 더튼 대표는 이를 즉각 수용하며 오히려 정부안보다 5억 달러 많은 9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노동당과 자유당 모두 동일한 정책을 추진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더튼은 공공 부문 감축을 통해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공 부문 감축, 실현 가능할까?
더튼 대표는 “노동당 정부가 공무원을 3만6000명을 추가 고용했다. 이를 되돌리면 연간 60억 달러, 총 240억 달러의 예산 절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대변인은 선거 전까지 구체적인 감축 수치를 밝히지 않겠다고 전했다. 반면, 알바니즈 총리는 노동당의 메디케어 예산이 지난해 12월 중기재정전망(MYEFO)에 포함되어 있으며, 추가적인 예산 조정이 필요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동당의 85억 달러 공약 중 30억 달러는 MYEFO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GP들, 메디케어 개혁 회의적
정부의 대규모 메디케어 개혁안이 발표된 후, 현장에서 진료하는 일반의(GP)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의료진들은 새로운 정책이 현실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벌크 빌링 적용의 현실과 과제
호주의 공공 의료 시스템인 메디케어(Medicare)에서는 환자가 일반의(GP)를 방문했을 때, 진료비를 직접 지불하지 않고도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벌크 빌링(Bulk Billing)’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의료 제공자가 진료비를 환자로부터 받지 않고, 정부에 직접 청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최근 일부 병원과 의료 기관에서 벌크 빌링 적용을 제한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벌크 빌링, 어떻게 적용되나
GP가 환자를 진료한 후, 의료 제공자는 정부의 메디케어 시스템을 통해 진료비를 직접 청구한다. 이 과정은 전자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며, 정부는 GP에게 메디케어 환급액을 지급한다. 환자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 없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의료 기관의 부담 증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메디케어에서 지급하는 환급액이 GP의 실제 진료 비용을 충분히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일부 병원과 의료 기관들은 벌크 빌링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거나, 아예 시행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운영 비용이 높은 병원이나 농어촌 지역의 의료 기관에서는 벌크 빌링 대신 환자에게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혼합 청구(Mixed Billing)’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의 어려움
벌크 빌링을 제공하는 병원을 찾는 것이 어려운 지역도 존재한다. 도심보다는 지방이나 외곽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며,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들에게는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GP마다 벌크 빌링 적용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환자들은 사전에 병원에 직접 문의해 벌크 빌링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는다.
개선이 필요한 벌크 빌링 제도
벌크 빌링이 호주 의료제도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메디케어 환급액의 현실적인 조정과 함께, 벌크 빌링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공 의료 서비스의 본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대폭 확대된 인센티브
알바니즈 정부는 이번 개혁안을 통해 모든 환자에게 트리플 벌크 빌링(triple bulk-billing)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모든 환자를 벌크 빌링하는 병원에는 추가로 12.5%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10년 내에 전체 GP 진료의 90%가 벌크 빌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GP들이 환자를 벌크 빌링하지 않는 경우, 환자들은 이번 정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기존과 동일한 수준의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특히 메디케어 환급액은 매년 물가에 따라 조정되지만 여전히 의료 서비스 제공 비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많은 의사들이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병원 운영 어려워질 것”
서부 시드니 캠벨타운에서 진료하는 켄 맥크로리(Ken McCroary) GP는 “대부분의 환자에게 이번 벌크 빌링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병원 의사들은 복잡한 의료 상담이 많아 한 시간에 평균 두 명의 환자를 본다”며 “새로운 인센티브를 적용하려면 한 시간에 10명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20분 미만의 일반 진료에 대한 메디케어 환급액은 42.85달러다. 새로운 벌크 빌링 인센티브를 적용하면 62.56~86.91달러까지 늘어나지만, 여전히 GP들이 개별적으로 책정하는 진료비와 비교하면 20달러 이상의 차이가 발생한다.
“환자 혼란 가중될 수도”
브리즈번에서 진료하는 마리아 볼튼(Maria Boulton) GP는 “이번 정책이 의료 서비스에 대한 환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많은 환자들이 메디케어 환급액 자체가 세 배 늘어난다고 오해할 수 있다”며 “실제로는 벌크 빌링 인센티브가 늘어나는 것일 뿐, 개인이 지불하는 비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볼튼 GP는 또한 “긴 상담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더 높은 환급액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개편했어야 했다”며 “현재 시스템에서는 짧은 진료에 대한 보상이 더 크고, 긴 진료에 대한 환급액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지적했다.
“의료진 수익 감소 불가피”
서호주에서 근무하는 마이클 리빙스턴(Michael Livingston) GP는 “보편적인 의료 서비스 강화를 위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의사들이 벌크 빌링을 확대하면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단순히 메디케어 환급액 자체를 늘리는 것이었을 것”이라며 “이 인센티브가 향후에도 유지될지 확실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농어촌 의료진, 실질적 혜택 적어
전국농어촌보건연맹(NRHA) 수시 테겐(Susi Tegen) 대표는 이번 정책이 도시 및 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농어촌 지역의 의료 환경 개선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미 운영 비용이 높고,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더 복잡해 병원 운영이 더욱 어렵다”며 “이번 조치만으로는 농어촌 의료 시스템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꼽히며, GP뿐만 아니라 간호사, 치과의사, 기타 보건 전문가들의 부족도 심화되고 있다. NRHA는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실효성 논란 지속될 듯
정부의 이번 메디케어 개혁안이 발표됐지만, GP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의료계에서는 “현재의 정책이 병원 운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향후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보완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자유당의 추가 감축 계획
제인 흄(Jane Hume) 자유당 재무 대변인은 자유당이 노동당의 대규모 인프라 및 산업 투자 계획도 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축 대상에는 227억 달러 규모의 ‘Future Made in Australia’ 프로젝트, 100억 달러 규모의 ‘Housing Australia Future Fund’, 200억 달러 규모의 ‘Rewiring the Nation’ 프로젝트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제프 케넷(Jeff Kennett) 전 빅토리아 주 총리는 “정부 지출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면서 국가 부채가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며 “정치인들은 반드시 공약에 대한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바니즈, 더튼의 메디케어 공약 차별화 시도
한편, 스카이뉴스 진행자 폴 머레이(Paul Murray)는 알바니즈 총리가 더튼 대표의 메디케어 공약이 자신의 공약과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머레이는 “알바니즈 총리는 메디케어에 85억 달러를 추가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더튼 대표가 사실상 동일한 9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노동당의 선거 전략이 자유당을 상대로 한 공포 캠페인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 부상
자유당과 노동당이 메디케어 확대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도 재원 조달 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면서, 이번 선거에서 재정 책임성과 공공 서비스의 미래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노동당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의료 서비스 강화를 강조하는 반면, 자유당은 공공 부문 감축과 정부 투자 축소를 통한 재정 균형을 주장하며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의료계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규모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GP들의 운영 부담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실제로 무료 진료를 받는 환자의 비율이 예상보다 낮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