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 전 북한 쿠웨이트 대사 대리를 만났다. 그는 1973년 평양에서 태어나 1995년 평양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했다. 조선인민군 공군에서 군복무를 마시고 외무성 중동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2017년 쿠웨이트 대사 대리로 근무하다가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북한인권주간을 맞아 호주를 방문해 북한 핵과 북한 인권을 주제로 강연회와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17일(목) 시드니 이스트우트 한 식당에서 민주평통 호주협의회(회장 서정배)가 주관한 평화통일 간담회에 참석한 류 전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을 통일을 위한 역사적 선언으로 평가했다.
다음은 류 전 대사에게 묻고 들은 내용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이라는 특수 신분과 이력을 갖고 있는데도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기초 생활수급자로 고생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취업에 가장 큰 장애물은?
- 제가 한국에 와서 국정원 조사를 마치고 막 사회로 나온 지 한 달 만에 코로나 19 사태가 터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했고 국제적으로도 국경을 봉쇄하고 인원 이동을 차단하던 때였습니다. 저만 아니라 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연예인들도 공연이 다 취소될 정도였으니 취업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일은 통일에 관련된 분야였습니다. 잘 안 되더라고요.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하면서 탈북민에 대한 차별 대우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해수부 공무원 사건도 있지 않았습니까? 북한 군인들이 사살한 것을 월북하려 했다고 하고 또 탈북민 2명을 살인자 누명을 씌어 강제 북송시킨 일 있지 않았습니까? 문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북한을 많이 의식했기에 탈북자들에게는 곤란한 점이 많았습니다.
쿠웨이트 대사 대리 시절 이사하면서 김일성, 김정일 선전화 분실 사건 때문에 탈북했다고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시면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을 것 같나?
- 솔직한 말로 그렇겠죠. 정상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그냥 일상 생활을 했을 겁니다. 그런 우연한 계기를 통해 북한 체제가 가진 모순과 정면 충돌하게 됐고 인생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도 북한 사회가 얼마나 한심하고 부조리하고 인권이 유린되는가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 바깥 세계와 북한을 비교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게 내재돼 있어 어떤 계기가 있으면 언제든 탈북했을 겁니다.
부인은 남한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무척 만족합니다. 여성들은 무엇보다 자식이 잘 되는 게 가장 큰 관심입니다. 제 딸이 한국에 와서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 원만히 어울리며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흐뭇합니다. 아내는 지금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며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말씀 들어보니까 호주로 이민 온 사람들과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여기서도 부모는 좀 고생을 해도 자녀들이 잘 크면 보람을 느낍니다.
-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탈북도 어쩌면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민처럼 생각할 수 있겠네요. 외교관 때는 다른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가 달라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한국은 문화는 많이 달라도 언어가 같아 정착이 훨씬 수월합니다.
고위층 출신인데 다른 탈북민들과 관계는 어떤가?
- 다른 단체 생활과 비슷합니다. 잘 어울리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대체로 다른 탈북민들과 관계를 꼼꼼하게 챙기며 원만히 지내는 편입니다. 지난 추석에는 친한 탈북민들과 파주에 가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북한에 있는 부모님 생각을 나누며 식사를 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하는 탈북민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윤석열 대통령께서 지난 광복절에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이라는 역사적 선언을 통해 우리 주체적 역량 다시 말해, 탈북민들이 가진 경험을 통일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또한 대통령이 직접 7월 14일을 북한 이탈 주민의 날로 제정해주신 것은 저희들에게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대 정부에서 하지 못한 일을 과감하게 실행해 주셔서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은 물론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탈북민 이야기가 남북 화합과 통일에 기여한다면?
- 성공한 탈북민이 많을수록 북한 주민들 가운데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이 커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고 돈을 벌 수 있고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겁니까? 북한은 계급 사회라서 탈북자나 국군 포로 자식처럼 출신성분이 나쁘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나도 절대 성장 발전할 수 없거든요. 여기서는 능력만 있으면 탈북민도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어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의사를 하는 탈북민 친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부하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의사가 되고 보니까 한국이 정말 능력과 재능에 따라 빛을 볼 수 있는 사회로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기여하려는 마음이 커졌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지만 탈북민은 ‘우리나라’라는 말이 잘 안 나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한국이 북한에 비해 지상낙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저절로 ‘우리나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나?
- 그게 문제죠. 이런 이야기가 전할 수 있도록 모든 경로를 시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북전단을 보내든, 북중국경을 통하든, 혹은 20만명에 이르는 해외에 있는 북한 주민들을 활용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는 원래 계급 없는 사회를 지향하잖아요. 북한도 공산주의 이론을 배울 텐데 현실은 출신성분에 따라 계급이 나뉘어져 있으면 문제라고 느끼지 않나?
- 과거에는 북한에서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1970년부터는 주체사상이라는 뚱딴지 사이비 사상만 가르칩니다. 저는 1989년 대학에 입학해서 1994년에 졸업했는데 주체사상만 배웠습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해 배운 건 1도 없습니다. 지식의 기초가 없어 뭐가 잘 되고 잘못됐는지 모릅니다.

주시드니총영사관에서 북핵 관련 강연을 했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나?
-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호주에서 강연했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분에 넘치는 격려, 사랑, 관심, 배려를 베풀어 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호주에 계신 교민들은 다 인덕이 후합니다. 호주가 평안한 나라라서 이곳에 사는 분들도 그런 성격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민주평통 상임위원을 맡고 있는데 태영호 사무처장을 만나 보았나?
- 물론입니다. 만나서 윤 대통령이 발표하신 8.15 통일 독트린을 세계 만방에 널리 선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데 서로 뜻을 같이 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으로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임명된 것에 어떤 의의가 있나?
- 북한 출신이라도 북한처럼 계급이나 과거에 대해 묻지 않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도록 장,차관 같은 정부 고위직을 맡을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은 차별 없는 나라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평양외국어대학 아랍학과를 졸업하셨는데 한국 동시통역대학과 수준을 비교한다면?
- 북한은 중고등학교 과정을 합친 외국어 학원이 있는데 거기에서 6년 동안 아랍어를 배운 후에 다시 대학에 진학해 5년간 전공합니다. 합쳐서 11년을 배우기 때문에 남한보다는 수준이 더 높지 않을까 합니다. 훨씬 오래 공부합니다. 외국어 뿐 아니라 음악 미술 무용 같은 예술과 컴퓨터와 해킹 같은 기술 분야도 어릴 때부터 집중 교육합니다.
북한에도 ‘김일성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 경쟁이 있나?
- 치열합니다. 거기에도 출신성분이 있어요. 혁명전사 집안 후손은 3대까지 20점 가산점을 받습니다. 남한처럼 북한 입시에도 ‘국영수’ 비중이 높은데 그것보다 최고 중요한 과목은 역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다룬 ‘혁명력사’ 3부작입니다.
호주 교민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최근에 한 유력 야당 정치인이 통일은 하지 말자고 주장한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통일은 누가 하지 말자고 해서 안하고, 하자고 해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함께 살아온 건 5천년이고 갈라져 산 건 70년 밖에 안 됩니다.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불리(不可不離) 한 핏줄로 이어진 동족입니다. 통일은 우리가 아니라 역사와 민족 전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특정인에게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필 8.15 통일 독트린이 나오고 한 달이 되기 전에 그런 말이 나와 진정 통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호주에 계시는 동포들께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한 마음에 동참해 주시고 부당한 체제 아래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대해 계속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주시고 통일 열망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과 대답 정리 = 정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