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이란의 주요 핵시설 인근에서 발견된 지하터널에 대해 이란 정부의 해명을 요구하며, 해당 시설이 고농축 우라늄을 은닉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위성사진을 공개하며 나탄즈(Natanz) 핵시설 주변에서 새로 건설된 깊은 지하터널과 기존 터널, 그리고 새로운 경계 구역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고농축 우라늄 은닉 가능
연구소장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는 보고서에서 “새 보안 복합단지를 보면 해당 터널들이 이란이 신고하지 않은 고농축 우라늄이나, 핵무기 수준까지 우라늄을 빠르게 농축할 수 있는 ‘수천 기’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보관하는 장소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지난해 이란은 포르도(Fordow) 및 나탄즈 연료농축시설(FEP)에 약 6,000기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설치했으며, 이는 모두 IAEA의 감시를 받지 않고 설치된 것”이라며 “이란은 새 터널 단지에 원심분리기를 은밀히 배치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은 이란과의 협상에서,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이나 원심분리기, 핵 관련 핵심 장비를 이 지하시설로 옮겼거나 이미 옮겼다면 이는 협상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AEA, “미신고 시설 우려”
라파엘 그로시(Rafael Grossi) IAEA 사무총장도 “그 터널에 신고되지 않은 핵물질이 보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을 방문한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제기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주 이란을 방문했으며, “모든 국가는 핵시설 인근에 새로 짓는 어떤 시설이라도 IAEA에 사전 통보해야 한다”면서도 “이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전 통보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IAEA가 ‘이건 뭐냐’고 묻자, 이란은 ‘당신들 알 바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감시 카메라 재설치 협의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IAEA 기술팀이 이란과 후속 협의를 진행할 것이며, 핵시설에 대한 감시 카메라 재설치 문제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2021년 2월부터 미국의 제재 해제를 유도하기 위해 일부 핵시설에 대한 IAEA의 접근을 차단했다. 당시 IAEA 감시 카메라는 계속 작동하도록 허용했지만, 2022년에는 이마저도 꺼버렸다.
IAEA는 2023년부터 일부 시설에 카메라를 재설치했으나, 그 사이 감시 사각지대에서 원심분리기 등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계속 제기돼 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매우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기술팀이 곧 테헤란(Tehran)을 방문할 것”이라며, “며칠 내로 이란 당국과 만나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민간 핵 프로그램 제안
이러한 우려 속에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는 이란이 우라늄을 자체 농축하지 않고, 전량 수입해 사용하는 방식의 민간 핵프로그램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국무장관은 <더 프리 프레스(The Free Press)>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이란이 민간용 핵프로그램을 원한다면,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수입 연료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우라늄을 자체 농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란에 핵프로그램 전면 폐기를 요구하던 기존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지만, 여전히 핵무기 제조를 방지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만약 이란이 우라늄이나 원심분리기를 은닉하고 있다면, 이런 합의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3차 협상 앞두고 긴장 고조
이란과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해법 제안 이후 이미 두 차례 실무 협상을 진행했으며, 이번 주말에는 기술적 사안을 중심으로 한 3차 협상이 예정돼 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협상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감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IAEA가 합의를 검증할 수 있다는 데 대한 신뢰가 형성되고 있으며, 지도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느낀다”고 전했다.
특히 왕이(Wang Yi)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이란 간 합의에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트럼프, “실패 시 군사 옵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이란과의 새 협정을 희망한다고 밝히면서도,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스라엘 주도의 군사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군사적 옵션에 대해 질문을 받은 그로시 사무총장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와 병행해 제재도 지속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22일 이란의 선박 운송 네트워크와 그 명목상 소유주에 대해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이란 외교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카에이(Esmaeil Baqaei)는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서 동시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선의나 진정성이 없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한국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