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가 러시아와의 평화 협정이 체결될 경우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한 ‘자발적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가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전투를 종식하는 4단계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타머 총리는 캐나다, 터키를 비롯한 18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16억 파운드(약 3조원)의 금융 지원을 제공해 5,000개 이상의 방공 미사일을 구매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금요일 백악관에서 발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간의 충돌 이후 유럽 국가들이 단결된 친우크라이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미국이 유럽과의 오랜 동맹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럽 지도자들은 그 공백을 메울 방안을 논의했다.
‘자발적 연합’에 캐나다 등 참여 가능성
스타머 총리는 ‘자발적 연합’에 NATO 및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NATO 비회원국 및 비유럽 국가들도 포함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는 이번 위기 회담에 캐나다가 참석한 이유에 대해 “캐나다는 전통적인 동맹국으로,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군 훈련에 관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호주는 2023년부터 ‘쿠두 작전(Operation Kudu)’을 통해 2,00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군인을 훈련시키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주니어 리더 교육 프로그램까지 확대했다. 또한 호주 공군(RAAF)은 독일에 조기 경보 감시용 E-7A Wedgetail 항공기와 약 100명의 승무원을 파견해 러시아의 위협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호주에 ‘자발적 연합’ 참여 여부를 타진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스타머 총리는 “여러 국가들이 연합 참여를 준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발표는 해당 국가들이 직접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프랑스, 지상군 및 전투기 배치 계획
스타머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을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협상이 진행 중이며, 이는 영국군의 지상 배치와 전투기 지원을 포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이 이번 평화 계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지상 배치에 반대하며 “유럽이 자체적으로 국경을 방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스타머 총리는 “평화 협정이 체결된다면 반드시 방어 조치가 필요하다. 과거에도 휴전이 체결됐지만 후속 조치가 없어 러시아에 의해 쉽게 깨진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충돌, 유럽 전역에 파장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백악관 충돌은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은 방위비 지출을 대폭 확대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요일(현지 시간) 영국 총리 관저에서 스타머 총리와 만나 따뜻한 포옹을 나눈 후, 영국 국왕과 NATO 및 EU 정상들이 참석한 위기 회담에 참석했다. 스타머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은 평화 협정이 체결될 경우 우크라이나에 지상군을 파병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미국의 입장과 보조를 맞추며 친러시아 성향을 강화하고 있다. 마르크 뤼터(Mark Rutte) NATO 사무총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이 시급하다고 두 차례나 조언했다.
NATO 재편 가능성… 유럽 중심의 새로운 동맹?
전 NATO 유럽 총사령관 제임스 스타브리디스(James Stavridis)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NATO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유럽 조약 기구(European Treaty Organization)’가 출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인들은 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할 것인지, 모스크바의 독재자를 지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가 NATO 내부에 깊은 균열을 만들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우크라이나 문제를 넘어 미국과 유럽의 신뢰 문제로 확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러시아 자산 매각해 우크라이나 지원
스타머 총리는 위기 회담에 앞서 50억 달러(약 6.7조 원) 규모의 새로운 대출을 발표했으며, 이는 영국 내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매각해 마련된 기금으로 조달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금은 우크라이나의 무기 생산에 직접 투입될 것이다.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가 전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 축소로 인해 유럽과 호주 등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지국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재정 지원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킬 연구소(Kiel Institute)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3년 동안 우크라이나에 총 2,400억 달러(약 324조 원)를 지원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금액이 3,000억 달러(약 405조 원)를 초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지원 없으면 생존 불가” “전쟁 끝내려면 미 개입 필수”
우크라이나의 주호주 대사 바실 미로슈니첸코(Vasyl Myroshnychenko)가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우크라이나가 생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백악관에서 벌어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공개 충돌이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호주는 지금까지 15억 호주달러(AU$1.5 billion) 이상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으며, 미사일과 장갑차, 20대 이상의 부시마스터(Bushmaster) 군용 차량을 제공한 바 있다.
미로슈니첸코 대사는 “알바니즈 총리뿐만 아니라 야당 대표 피터 더튼(Peter Dutton)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약속했다”며 “다가오는 선거 이후에도 이러한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지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으며, 그들이 이를 보고 희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협상 가능성 낙관”
미로슈니첸코 대사는 호주 방송 프로그램 ‘인사이더스(Insiders)’에 출연해 “감정이 격해진 상황이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매우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며 “우리는 미국의 지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협상의 길은 열려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을 끝내려면 미국의 개입이 필수적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백악관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이 워싱턴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옥사나 마르카로바(Oksana Markarova)에게도 큰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마르카로바 대사는 당시 회의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금은 매우 힘든 시기이며, 특히 옥사나 대사처럼 거의 4년 동안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에게는 이번 사태가 너무나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우크라이나 지원은 국제법 수호”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호주의 “확고한” 지지를 거듭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알바니즈 총리는 2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최근 백악관에서 벌어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충돌과 관련해 질문을 받았다.
두 정상은 원래 주요 광물 협정을 함께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돌연 회담장을 떠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의 지원에 더 감사해야 한다”며 “세계대전을 걸고 도박하는 셈”이라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악화됐다. 이와 관련해 알바니즈 총리는 “나는 호주의 외교 정책을 책임지고 있으며, 그것은 호주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피했다.
그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투쟁을 국제 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으로 본다”며 “우리는 끝까지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무장관 짐 차머스(Jim Chalmers)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영웅”이라고 평가하며, “그는 매우 용감한 국가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이며, 호주는 그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머스 장관은 “호주는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우리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호주 야당인 보수 연합(Coalition) 역시 우크라이나 지원 입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앵거스 테일러(Angus Taylor) 야당 재무 담당 대변인은 “이것은 명백한 불법 침공”이라며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인 자유당의 제임스 패터슨(James Paterson) 상원의원은 “우방국 간에도 때때로 거친 외교적 논쟁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미국의 지도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을 겨냥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을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원하는 조건으로 휴전을 이끌어낸다면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의 커다란 승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이는 푸틴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특히 우리 지역에서도 또 다른 도발을 초래할 것이다”라며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유럽과 다르며, 미국은 이 지역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