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소용돌이(와渦)속을 꿰뚫는 예리한 도끼(부釜)날 논평
최근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카일리 앤 제키 오 쇼’ 공동 진행자 카일리 샌딜랜즈가 청취자의 딱한 사연을 듣고 방송 중에 새 차 한 대를 선물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라디오 쇼에는 전화로 연결한 청취자가 60초 안에 상식 퀴즈 10개를 맞추면 1만 호주달러(약 850만원)를 주는 꼭지가 있다. 제키 진행자가 여기에 참여한 젊은 호주 여성에게 1만 달러 상금을 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성은 실직한 아버지와 벌이가 적은 어머니를 위해 차를 사주고 싶다고 답했다. 집을 새로 짓고 있는데 갑자기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 힘들어 하는 부모를 돕고 싶다며 울먹였다.
1분 동안 퀴즈를 풀었으나 안타깝게도 여성은 단 2문제를 맞춰 200달러 상금만 받을 수 있게 됐다. 한 문제씩 틀릴 때마다 여성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다. 제키는 200달러를 걸고 정답을 맞히면 400달러를 받고 틀리면 아예 상금이 없어지는 보너스 퀴즈를 제안했다. 여성은 우물쭈물 주저하며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옆에 있던 카일리가 배경 음악을 끄고 한 문제를 맞히면 자기 돈으로 새 차 한 대를 상품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순간 스튜디오는 얼어붙은 듯 조용하게 됐다. 각본에 없는 돌발행동이었다. 여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카일리가 빨리 문제를 내라고 재촉하자 제키는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은 어느 회사가 만든 캐릭터냐?”는 답이 뻔한 퀴즈를 냈다. 이에 여성은 “디즈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카일리는 새 차 한 대를 상품으로 탔다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옆에 있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아버지는 카일리에게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주위에는 우리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도와줘라. 우리는 괜찮다.”
카일리는 “딸이 정당한 게임에서 이겼다”면서 결국 사비로 차 한 대를 쾌척헸다.
카일리 샌딜랜즈는 재산이 4천만 달러 (약 340억원)로 추정되는 엄청난 부자이긴 하다. 그럼에도 라디오 진행을 하다가 청취자에게 곧장 차 한 대를 선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1만 달러 상금을 받으면 부모님께 차를 사드리겠다는 효심에 감동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주의가 발달했다는 서구 백인사회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다.
호주는 2년 이상 고물가, 고금리, 고에너지가격으로 서민 생활이 피폐 차원으로 떨어지고 있다. 라디오 쇼에 나온 가족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울 때 가족끼리 서로 위하는 마음 그리고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한 유명인이 가진 넉넉함이 신선한 감동을 준다.
여성의 아버지가 한 말에서도 호주 사회가 가진 깊은 힘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딸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한 셈인데 기쁨보다는 더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와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는 강인한 자립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카일리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차 한 대를 쾌척할 여유는 어려워도 여성의 아버지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