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화학물질, 항공유 유출 가능성
영국 헐(Hull) 인근 북해에서 미국 군용 유조선과 포르투갈 국적 컨테이너선이 충돌해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두 선박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으며, 승무원들은 긴급 탈출했다. 현재까지 선원 1명이 실종된 상태로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이며, 선박에 적재된 독성 화학물질과 항공유가 바다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환경 재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충돌한 선박은 미국 국적 유조선 ‘스테나 이매큘레이트(Stena Immaculate)’와 포르투갈 국적 컨테이너선 ‘솔롱(Solong)으로, 사고는 월요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플램버러 헤드(Flamborough Head) 인근에서 발생했다. 유조선은 항공유를 싣고 정박해 있던 상태였으며, 솔롱이 이 선박을 들이받으며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거대한 폭발, 선원들 긴급 탈출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솔롱 소유주 에른스트 루스(Ernst Russ)는 성명을 통해 “솔롱의 선원 14명 중 13명이 무사히 구조됐으나, 1명이 실종된 상태”라며 “현재 집중적인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스테나 이매큘레이트를 운영하는 스테나 벌크(Stena Bulk)의 CEO 에릭 하넬(Erik Hanell) 역시 “우리 선박의 승무원들은 모두 구조됐다”고 발표했다. 사고 직후 두 선박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화염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승무원들은 긴급 탈출을 감행했다.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는 긴급 구조 인력이 대거 투입되어 당시 사고 해역에 있던 선박과 구조대가 즉시 출동해 38명의 승무원을 구조했으며, 일부는 헬리콥터로 긴급 이송되었다. 현재까지 구조된 선원 중 1명은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지 작업자 나이얼 스티븐슨(Niall Stevenson)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오전 9시 30분 무렵, 수많은 구급차와 수색·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하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대략 8~9대의 구급차와 경찰차가 출동했다”며 당시 상황이 “모두가 총력을 기울이는 긴급 대응”이었다고 덧붙였다.

해양 오염 우려
이번 사고로 인한 가장 큰 우려는 두 선박에 실려 있던 화물이다. 솔롱은 시안화나트륨(sodium cyanide) 15개 컨테이너를 적재하고 있었으며, 이 물질이 물과 접촉하면 치명적인 시안화수소(hydrogen cyanide)로 변해 해양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해양 생태계 중 하나로, 여름철 번식을 위해 50만 마리 이상의 바닷새가 도착하는 곳이다. 현재 퍼핀(puffin), 북방가넷(gannet), 바닷제비(fulmar)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해양 포유류와 물고기들도 풍부한 지역이기 때문에 독성 물질이 바다로 유출될 경우 장기적인 환경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셰필드대 해양생태학자인 톰 웹(Tom Webb) 박사는 “이번 사고로 인한 화학 오염은 조류뿐만 아니라 해양 먹이 사슬 전체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오염이 빠르게 확산되면 어업과 관광업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도 성명을 통해 “독성이 강한 여러 위험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심각한 경고를 내놨다. 폴 존스턴(Paul Johnston) 그린피스 연구소 수석 과학자는 “특히 항공유가 바다에 유출될 경우 어류와 해양 생물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군 연료 운송선, 충돌 원인 수사 진행 중
스테나 이매큘레이트는 미군의 연료 보급을 담당하는 선박으로, 전쟁 등 긴급 상황에서 항공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고 당시 선박에 실려 있던 22만 배럴(약 3,500만 리터)의 항공유가 미군으로 향할 예정이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해안경비대는 사고 발생 직후 긴급 구조 요청을 발송했으며, “화재 발생, 선박 포기”라는 메시지가 전파되었다. 이후 구조 헬기와 소방 장비를 갖춘 해양 구조선이 급파되었지만, 두 선박의 화재가 계속 이어지면서 진화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솔롱, 충돌 직전까지, 감속 없이 진행
사고 원인을 둘러싼 의문도 커지고 있다. 영국 해양 사고 분석가들은 선박 추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솔롱이 사고 당시 시속 16노트(약 30km/h)로 항해 중이었으며, 정박 중이던 스테나 이매큘레이트의 좌현을 강하게 들이받은 후 한동안 밀고 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양 사고 분석가이자 미 해군 역사학자인 살 메르코글리아노(Sal Mercogliano)는 “선박 추적 데이터를 보면 솔롱이 정박 중인 스테나 이매큘레이트를 향해 직선으로 이동해 충돌했고, 충돌 지점은 183m 길이의 유조선 중앙부였다”고 분석했다.
보통 해상 충돌 사고에서는 정박 중인 선박이 우선권을 가지며, 이동 중인 선박이 피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이번 사고가 단순한 조종 실수인지, 선박 간 통신 오류인지, 항법 시스템 문제인지에 대한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영국 해양 사고 조사국(MAIB)과 해군 당국이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며, 추가적인 구조 및 오염 방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충돌 사고가 환경과 해양 물류, 그리고 군사적 측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