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수간호사가 내 남편에게 ‘액설런트’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고집쟁이 남편의 표정이 개선장군같이 흐뭇해 보인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휴가때 내 대신 일 좀 해달라고 부탁까지 하니, 별로 칭찬받아 본적 없는 남편이 신나게 펄펄 날아다닌다.
3일간 하루에 8시간씩 복막투석을 위한 교육을 받고 있다. 나이 70이 넘은 영감이 낯설은 의학용어로 강도 높은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 날 시험까지 통과해서 다행스럽고 기특하다. 또 다른 간호사가 ‘저런 남편이 있어서 행운’이라고 부러워하길래 내가 45년 동안 곁에 있어줬으니 이제부터는 당연히 저 영감 차례라고 못 박아 주었다. 말해놓고 보니 밴댕이 소가지가 들통난 것 같아 살짝 민망했다. 다시 6주간 수동식 복막투석을 집에서 교육받은 대로 실시해야 한다. 하루에 네 차례씩 해야 하니 종일 매달려 있어야 한다. 닭띠 동갑내기 우리 부부는 아직도 마주치면 티격태격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서로 피해 다니는 따로국밥인데 6주 동안 꼼작없이 코 맞대고 앉아 있어야 한다. 투석액이 내 몸 안을 통과해서 빠져나오는 동안 세심하게 관찰하여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한다. 평소 영감 성격으로는 집어 던지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참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젊어선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해서, 한가로이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겨를 없이 살아왔나 싶다. 게다가 성격과 취향이 극과 극이라 서로가 피하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지루한 6주간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사후퇴로 부산에 피난가서 살던 얘기를 하다가 어느 동네에 살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시청앞에 세들어 살던 시절 부산에 물이 귀해서 저녁 무렵이면 집집마다 서둘러 대문을 잠가버렸다. 은행집만 대문을 열어놔서 우리 식구들이 깨끗이 씻을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그 은행집이 자기네 집이 였다고 ‘너는 그때부터 우리집에 신세를 졌으니 평생 고마워해야 한다’고 거들먹거린다. 그래서 또 싸운다. 드디어 적응기간이 끝나고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씩 야간에 자동복막투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감지덕지 할 수밖에.
요즘 조영감이 가는데마다 칭찬이 자자해서 살맛나는지 싱글벙글이다. 교회에서 마누라 병간호 잘한다고 격려와 칭찬의 박수를 받고 신바람이 난 것 같다. 동문모임에서도 병간호 너무 지극해서 마누라가 회복이 빨라 모임에도 참석했다고 모두 기뻐한다. 칭찬 세례에 경상도 고래가 춤을 춘다. 하루에 한 번 잠자는 동안 기계가 투석을 자동으로 해준다고 했다. 말은 쉽고 참 고마운데 내 머리맡에 놓인 컴퓨터의 기계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기계에 연결된 고무호스는 내가 몸을 뒤척될 때마다 눌리고 꼬이면서 컴퓨터가 비명을 지른다. 매일밤마다 사투를 벌이며 토막잠을 자다가 투석이 끝나는 새벽 6시경에야 깊은 잠에 빠지곤 한다. 나 때문에 조영감은 여행은커녕 밤 외출도 못한다. 피치 못할 저녁모임에 참석했다가도 투석을 해주러 서둘러서 돌아와야 한다. 아무리 자동이라고 해도 기계 세척 세팅 뒷처리까지 만만치가 않다. 제일 지루한 것이 손 씻는 일이다. 특수 세제로 3분가량 손가락 하나하나를 문질러 깨끗이 씻어야 한다. 3분이란 시간이 그렇게 긴 줄은 처음 알았다. 그렇게 결사적으로 닦아 내고도 또 안티박테리아 젤을 듬뿍 발라서 부벼대니 손 피부가 상해 껍질이 벗겨진다. 시어머니가 보셨으면 얼마나 가슴 아파 하실까, 이제 내 목숨이 영감의 손에 달려 있으니 조신하게 엎드려 있어야 하는데 밴댕이는 역시 밴댕이다. 걸핏하면 죽는게 낫겠다고 투정부리고 유세를 떤다. 이민 와서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은퇴와 동시에 서울 딸네 집으로 도망가려고 했는데 그 때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일이란 참 묘하게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하던 남편의 도움을 이렇게 오지게 받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다.
어쨌거나 자격증 도전해 보라는 간호사의 말에 우쭐해진 백수 조영감은 이미 남자간호사가 되어 구름위에 올라 앉아 흐뭇해한다.
박조향/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