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기리기
매년 4월 25일, 호주 전역에서는 안작데이(Anzac Day)가 기념된다. 이 날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호주군과 뉴질랜드군(Anzacs)을 기리기 위한 날로, 전통적인 기념식과 함께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안작데이는 1915년 갤리폴리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추모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날의 주요 행사 중 하나는 새벽에 열리는 안작데이 기념식이다. 시드니, 멜번, 브리즈번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전사자들의 희생을 기린다. 기념식 후에는 퍼레이드가 진행되며, 퇴역 군인들, 군 관계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한다.
필수 서비스 주장, NSW 정부는 거절
안작데이 당일인 4월 25일,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 새로 시행되는 영업 제한 조치로 인해 슈퍼마켓, 주류 판매점, 자동차 부품업체 등 수백 곳이 영업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들 업체는 자신들이 ‘필수 서비스’에 해당한다며 예외 적용을 요구했지만, NSW 정부는 이를 대부분 기각했다.
이번 제한은 올해 처음으로 도입되는 것으로, 크리스 민스(Chris Minns) 주총리는 안작데이의 ‘상업화 확산’을 막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동안은 대부분의 소매업체들이 4월 25일 오후 1시 이후 영업을 해왔지만, 올해부터는 울워스(Woolworths), 콜스(Coles) 등 주요 대형마트가 종일 문을 닫게 된다.
소매점들 예외 요청, 슈퍼·주류점 포함
이번 영업 제한에 대해 예외를 신청한 곳은 IGA, 셀러브레이션스(Cellarbrations) 주류점, 프렌들리 그로서(Friendly Grocer), 스파(SPAR) 슈퍼마켓, AMX 오토바이 매장 등으로, 이들은 자사 매장이 지역 사회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호주 주류 유통 단체인 리테일 드링크스 오스트레일리아(Retail Drinks Australia)는 자사 소속 3163개 매장에 대한 예외 조치를 요청했다.
시드니 도심에 12개 매장을 운영 중인 레드 보틀(Red Bottle)은 “안작데이 당일 주류 구매를 기대하는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을 것”이라며, “글로벌 도시로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IGA 메리랜즈(Merrylands) 지점은 “지역 주민과 지역 학생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대기업이 아니다”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고, 페어라이트(Fairlight)에 위치한 프렌들리 그로서 매장은 “공휴일 하루 휴업이 빵, 소시지, 음료 등을 사려는 소비자에게 큰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윈저(Windsor)의 과자 가게 롤리스 앤 스터프(Lollies ‘N’ Stuff)는 “공휴일 매출이 연간 운영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고, 시드니 전역에 여러 매장을 둔 캠퍼다운 셀러스(Camperdown Cellars)는 “안작데이는 전통적으로 연간 최대 매출일 중 하나이며,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도심 상인도 불만, 종일 휴업은 불공정
시드니 중심업무지구(CBD)의 리버풀 스트리트(Liverpool St)에서 인도 전통 의류 시장을 운영 중인 라케시 쿠마르(Rakesh Kumar)는 “많은 고객들이 새 규정을 미처 알지 못해 불편을 겪을 것”이라며, “특히 CBD에서는 오후 1시 이후라도 영업이 허용돼야 하며, 하루 종일 문을 닫는 것은 소상공인에게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휴일에 쇼핑하려는 고객들도 많고, 바쁜 일정을 고려하면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NSW 소비자보호청(Fair Trading)은 예외 신청을 거부한 70건 이상에 대해 “하루의 휴업이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불편을 준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은 제한지지 “근로자 압박 줄여야”
소매업 종사자 노조인 샵·유통·동맹 노동자 연합(Shop, Distributive and Allied Employees’ Association)은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안작데이 전일 영업 허용은 직원들이 근무를 강요받을 수 있고, 가족이나 지역사회와 보내는 시간을 방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호주소매업협회(Australian Retailers’ Association)는 이번 변화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협회 대표 폴 자라(Paul Zahra)는 “법 개정은 호주인들이 안작데이를 기념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지 못할 것”이라며, “오후 1시 이후의 제한적 영업 허용이 기념과 소비자 선택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뤘다”고 밝혔다.

예외업종은 제한적, 약국·주유소·RSL허용
이번 제한 조치에서 제외되는 업종은 약국, 주유소, 일부 전문점, RSL(퇴역군인 복지회관) 매장 등이다.
한편, 지난해 시드니 하이드 파크(Hyde Park)의 안작 기념관 인근에서 열릴 예정이던 록 콘서트 ‘팬더모니엄(Pandemonium)’이 참전용사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이후, NSW 정부는 4월 25일 하루 동안 음악 페스티벌 개최도 금지하기로 했다.
민스 총리는 “이번 제한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기념일의 본래 의미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국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