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이름과 사진 밑에 붙일 약력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어떤 스웨터인지, 캐시미어인지 앙고라인지
태그를 봐야 아는 것처럼
붉은여우 개미핥기 다람쥐 수달은 내세울 만한 꼬리 하나쯤 늘 지니고 있다 뱀은 꼬리가 너무 길어서 꼬리에 손발 꽁꽁 묶인 채 늘 어디론가 질질 끌려다닌다 공작새는 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머리맡에 펴 놓았던 걸까
하트모양 넓적한 꼬리가 달린 게코가 어느 날 내 캠핑 가방에 달려들어 왔다 세탁기 안에서 세탁물과 함께 탈색된 채 자전을 견디고 있었다 외계에서 온 것 같은 도마뱀이 나와 담요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몰아내려고 하자,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달아났는데 잘린 꼬리가 잠시 펄떡였다 얼마 안 있어 게코는 똑같은 하트를 달고 보란 듯이 담장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학교 담장에 내 그림이 붙었던 적 있다
시화전이 열리던 나무 그늘 밑
밤새 완성한 나의 분신이 잠시 펄럭였다
시작노트
위키피디아에서 유명해진 사람들 이름을 검색해보면 길거나 짧을 뿐, 이름 밑에 누구나 경력과 약력이 달려있다.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같은 사람을 검색해 보면 그사이 약력 밑으로 약력이 더 길게 자라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의 꼬리가 진화 과정에서 없어졌다고 학자들은 말하지만, 꼬리는 없어진 게 아니라 내공 안쪽 어디에선가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잃었다고 생각한 꼬리가 어느 순간 꿈틀거리는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