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방
지방으로 일을 떠났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6개월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서둘러 대청소를 했다. 그동안 내방에서 혼자 따로 쓰던 침대를 안방으로 끙끙대며 옮겼다. 퀸사이즈 침대 두 개가 들어차니 다소 갑갑하게 느껴졌지만, 온기가 도는 듯해 나쁘지 않았다. 바짝 붙여놓은 침대에 시트를 갈아 끼우려고 한참을 엎드려 버둥거렸다. 새 이불을 꺼내려고 이불장을 여는데 맨 아래 삐쭉하게 밀려 나온 비단 자락 하나가 눈에 띄었다. 혼수로 해왔던 색동이 섞인 청홍색 이불보였다. 그냥 버리기 아쉬워 솜은 오래전에 버리고 이불보만 남겨두었었다. 나를 따라와서 함께한 긴 세월을 가만 펼쳐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새색시 이불은 풍파 없이 살고 있는 복 많은 사람이 만들어야만 한다며 큰 이모에게 맡겼다. 남편의 키가 워낙 커서 유달리 크게 만들어야 했다. 이모는 두 팔을 위로 올리고 드러누웠다. 위아래로 움직이며 이만하면 되겠냐고 길이를 재단하다 까르르 웃곤 했다. 그렇게 크게 만들었던 이부자리라도 지금의 침대보다는 훨씬 작았다. 그때는 이부자리가 좁다는 생각을 인식하지 못했으니 우리가 어지간히 다정했던 모양이다.
아이 둘을 낳고 나서였을 것이다. 점점 이불이 답답해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싸움이 잦아졌다. 싸움은 주로 잠자리에서 시작되었는데 발이 차가우면 잠들지 못하는 나와 달리 그는 겨울에도 발이 더우면 잠을 못 잤다. 그가 발에 열이 오른다고 이불을 걷어 올리면 나는 발이 시리다고 이불을 끌어 내렸다. 나는 베개만 닿으면 곯아떨어지는데 귀가 예민한 그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버릇이 험한 나는 사방으로 움직이다가 다리를 그에게 턱 올려놓고 압박하곤 했다. 몸이 피곤한 날은 잠꼬대를 심하게 해서 그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그런 날이면 밤새 한숨도 못 잤다며 내게 원망을 쏟아내곤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그렇게 싸우면서도 잠은 한방에서 자야만 했다. 싸워도 각방을 쓰지 못한 것은 워낙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서 방이 빌 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정은 이민을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결혼하여 떠나고 차츰 집에 오는 손님들도 줄었다. 드디어 남게 된 방은 각자의 차지가 되었다. 그래도 잠은 한방에서 잤는데, 어느 날 다툼 끝에 방을 따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 필요한 말 이외엔 하지 않아도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그냥 밥 먹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분명 우리도 애틋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젊은 날 같으면 화해도 하고 다시 방에 들어오길 권했을 테지만, 점점 그런 마음을 쓰지 않았다. 굳이 아쉬울 일도 없이 시나브로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졌다.
방을 따로 쓰는 일은 생각보다 편안한 게 많았다. 한밤중에 일어나 덜거덕거려도 그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늦게까지 내 방에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 앞에서 뒤적거려도 괜찮았다. 그가 덥다고 펄럭거리며 이불을 말아 올리면 나는 도로 내리며 다투지 않아도 됐다. 점점 혼자 자는 편안함에 익숙해졌다. 가끔 그가 지방으로 일을 떠나면 휴가를 맞은 듯 반갑기까지 했다. 북적이던 집이 텅 비게 될 때면 호젓함을 누리며 마냥 좋아했다. 그런데, 다 늦게 내 세상이 온 것 같던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늘 바쁘게 살아야 하는 팔자인지 몸이 편해지고부터 자꾸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가 지방으로 일을 떠나기 전, 나는 갑자기 병이 나서 응급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집안 살림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하던 그는 혼자 짐을 꾸려서 떠났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잠을 자면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몽을 계속 꾸었다. 한집에 살아도 이렇게 지내면 잠을 자다가 어느 날 혼자 죽음을 맞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는 더 이상 방을 따로 쓰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새로 장만 해두었던 푸른색과 분홍빛이 고운 이불을 꺼내어 각자의 침대에 펼쳤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방문을 열더니 큰 목소리로 말한다.
“어! 방이 왜 이래? 침대로 꽉 찼네.”
“응. 당신 외롭지 않게 이제 함께 자려고.”
“아니, 다 늦게 무슨…….”
그의 얼굴에 픽하고 짧은 미소가 번진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모습이 추레하다. 염색할 시기를 놓쳐서 백발이 된 건 그렇다고 해도 머리가 너무 짧다. 가뜩이나 속이 훤한 머리를 사정없이 숱을 쳐내어 마치 교도소에서 방금 풀려나온 사람 같다. 샤워한다고 옷을 벗는 그에게 시선이 머문다. 자전거를 많이 타서 단단하던 허벅지 근육은 다 어디로 빠져나간 것일까. 종아리는 앙상해서 에너지를 느낄 수 없다. 남편은 결혼 후 지금까지 체중과 허리둘레가 변함없다며 허세를 부리지만 예전에 내가 알던 그의 모습은 분명히 아니다.
그가 내놓은 가방을 연다. 둘둘 뭉쳐진 속옷과 양말, 입다가 벗어둔 셔츠와 바지가 마구 구겨진 채 와르르 쏟아진다. 셔츠는 소매 단이 닳아서 너덜하고 바지는 주머니가 뜯어졌다. 멀쩡한 옷을 놔두고 하필 버리려고 한쪽 구석에 두었던 옷을 가져갔었나 보다. 작업복과 작업화는 큼큼한 쉰내와 함께 엉켜서 뒤죽박죽이다. 그동안 그가 겪었을 고단하고 옹색했던 시간이 느껴진다. 앞으로 우리가 살을 맞대고 지낼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우리에게 남은 열정의 시간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한편에서 올라오던 합방에 대한 우려가 가신다.
다 괜찮을 것이다.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아무리 요란하다 해도 나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이니 내가 먼저 잠들면 된다.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방귀쯤이야 이불 두어 번 펄럭이면 될 터이다. 어쩌면 그가 퀸사이즈 침대를 넘나드는 내 잠버릇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