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 빠
점심을 한참 넘기고서야 작품 합평 모임이 끝났다. 오늘은 집에서 기차 타고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페넌트 힐 클럽에 모였다. 점심 식사에 곁들여 맥주 한 잔도 했다. 낮술 탓인지 오랜만이라 반가웠는지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약속이 있다는 회원이 아니었다면 나는 더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내 속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일어나면서 같이 가자고 권한다.
“아니요, 나도 지금 가야 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순간 그러라고 할 뻔했는데 얼마 전 들었던 낄빠라는 단어가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쉬워하는 나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뒤통수가 뜨겁다.
낄빠라는 단어의 원문은 낄 때는 끼고 빠질 때는 빠져라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 문장의 줄임은 낄끼빠빠이고, 이를 더 줄인 말이 낄빠라고 한다. 젊은 층의 신조어로 물러설 때와 나설 때를 눈치껏 잘 가려서 행동하라고 주의를 줄 때 쓰는 말로써 젊은이들의 애용어가 된 듯하다.
적당히 빠질 때 잘 빠진 것 같은 생각 속에 기차역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동네 도서관에 들어갔다. 토요일 오후의 시간이기 때문인지 한가하고 조용했다.
17~8년 전쯤,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는 한 분이 우리 문학회에 참석했다. 주축 멤버들과의 나이 차이는 20여 년정도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합평의 시간이었다. 합평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실시되었는데, 나이 드신 그분이 한 작품을 발표했다. 그때에 합평을 인도하던 리더 회원이 그 작품에 대한 의견을 말했는데 그 말이 글 쓴 자신을 모독한 것이었다고 사과하라고 했다. 당사자가 사과했으나 그 사람은 자기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여러 달 모임을 힘들게 했다. 문학회를 대표해서 회장이 공개 사과를 하라고 했다. 결국 회장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고 그 사람이 더 이상 안 나오면서 마침내 혼란은 잠재워졌다. 그때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분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 보니 남의 말, 특히 자신보다 어린 사람의 충고 같은 의견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 이민 생활도 어느새 사반세기가 지났다. 이민 초부터 자연스럽게 문학회 활동에 참여하였으니 이 또한 25년이 넘었다. 자연스럽게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주변에서도 그리 알아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참여가 아닌 자발적 참여였다. 나이 차이나 서로의 생각 등이 어느 정도 비슷했기 때문인지 매월 한 번씩 만나는 동인 모임은 이민 생활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민 생활에서 많은 모임이 있지만, 나에겐 문학회 모임이 가장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지금도 계속 만남이 이어지고 있으며 때때로 의견이 다르기도 하지만 문학자체가 다양한 생각들의 집합이기에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종교, 학교, 고향, 정치 등만 끼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만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낄 때와 빠질 때에 나이는 중요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성정이 많이 바뀌었다. 아마도 지금 새로운 모임을 시작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을 생각해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말들도 적잖이 오갔는데 이런 것들을 소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세상에 끼었다가 이제는 이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빠질 일만 남았다. 그러나 또 다른,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희망은 버릴 수 없다.
도서관에서 두어 시간이 지났을 즈음, 진동음이 감지되어 핸드폰을 받아보니 오늘 같이 안 가길 잘했다는 이야기다. 안 가도 될 곳이었는데 괜히 힘들여 갔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