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을 까만 짜장에 비볐다
엄마와 나는 가끔 외식을 한다. 바닷가 산책을 하고, 예쁜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곁들인 브런치를 먹곤 한다. 오늘은 중국 음식에 마주 앉았다.
“간짜장 두 개 주세요”
“그건 짜장면하고 뭐가 다르니?”
“그냥 채소가 더 들어가고 좀 덜 텁텁해요”
짜장면과 간짜장은 분명히 다르지만, 차이를 생각하며 먹은 적이 없어 당황했다. 평소 전혀 묻지 않고 드시던 엄마의 질문이 생소해서 얼굴을 보았다. 아무 표정이 없다. 근심도, 관심도 없는 무심의 얼굴이 해탈한 보살 같다.
벽을 보니 세트 메뉴 광고가 코믹한 그림으로 가득 붙어있다. 짜장+짬뽕+탕수육 등. 그림 옆에는 처음처럼, 좋은데이, 참이슬 등의 소주병을 들고 있는 모델 사진이 붙어있다. 소주 이름이 참 참신하다. 그렇게 처음처럼 참이슬같이 좋았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뒤적여 보면 건져 올릴만한 날들도 있으련만 기억에 남는 건 아쉬움뿐이다.
짜장면이 나오자 조심스레 젓가락을 드시는 우리 엄마. 짜장 소스를 부어 섞고 또 섞어, 젓가락만큼 굵은 면을 집는데, 주르륵 면이 흘러내린다. 민망한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젓가락이 가늘게 떨린다.
저물어 내려앉은 여생의 낙조인 양, 섞이지 않은 짜장 사이의 양파처럼 희끗희끗하게 살아난 삶의 조각들이 맵싸하게 코끝에 올라온다. 맵고 야속한 것이 그뿐일까!. 굵은 주름, 가는 주름, 거센 세파를 온몸으로 받으며 짜 넣은 한 장의 카펫 무늬 같은 얼굴. 골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멍에를 숙명으로 알고 살아온 엄마의 세월이다. 땅거미 내린 노을을 건져 올리듯 돌돌 감아보지만, 투박한 손가락 사이 면발은 사발 안으로 내려앉는다. 나는 엄마의 짜장면을 가위로 몇 번 잘라드린다. 젓가락 사이로 겨우 따라 올라가는 끊어진 면발이 짬짬이 행복했던 시절처럼 애틋하다. 점점 불어 끊어지는 면발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날처럼 그릇 밑에서 겉도는 것은 애증의 세월일까. 까무룩 한 시간 너머에 있는 듯한 엄마의 시선을 불러본다.
“맛이 어떠세요?”
“다 그렇지 뭐”
‘그래요. 다 그렇지요,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노란 단무지와 함께 삼켜 버린다. 간짜장이나, 짜장이나 그저 짜장면일 뿐인걸. 쓰다만 공책처럼 한쪽은 늘 허옇게 비어있는 것이 인생이지.
어릴 적 엄마 따라 제천시에 가면 긴 나무 의자에 서로 좁혀 앉아 눈길을 주고받으며 먹던 짜장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굵고 쫄깃한 면을 엄마가 젓가락으로 눌러 끊어주면 입술을 모아 쪽 소리 나게 먹었다. 입가에 묻은 짜장을 닦아주는 엄마의 손 앞에 얼굴을 내밀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생각해보면, 은색 철가방에 담겨 배달되어 온 짜장면을, 신문지 펴고 둘러앉아 먹던 추억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다. 이사하는 날, 졸업식 날 등 아련한 추억이 서려 있는 짜장면은 우리 모두의 소울푸드였다.
그 시절을 회상하듯 힘겹게 짜장면을 집어 올리는, 마른 고목 같은 엄마의 손이 우둔하게 움직인다. 몇 자락 남겨 다독이는 엄마의 젓가락 끝이 애잔하다. 마주 앉아 짜장을 버무리는 엄마의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엄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고맙기만 하다. 이 순간들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지만 자주 함께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내 눈길은 숙어진 엄마 얼굴을 살핀다.
“더 드세요.”
“양이 많다.”
“그렇지요? 좀 많네”
“내가 언제부터 자장면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젊어선 이런 음식 안 먹었는데.”
사실은 잘 드셨는데, 비어있는 옆자리가 허전하셨을까? 마음에 없는 말씀이다.
내가 젓가락을 바로잡으려 내려놓으니, 엄마가 벌떡 일어나신다.
“어디 가세요?”
“오늘은 내가 사 줄게”
구순 넘은 허리가 사십오 도로 굽어진 엄마의 뒷모습이 계산대로 걸어가신다. 엄마의 손엔 빨간 지갑이 들려 있다. 엄마가 짜장면값을 계산하고 엉거주춤 서서 나를 바라보신다. 무엇인가 서리서리 엉긴 아쉬움의 타래를 면발 집어 올리듯 되짚어 보고 싶으셨던 것일까? 엄마의 마음을 까만 짜장에 비볐다.
‘엄마, 어 엄마아!’
“맛있다.”
“맛있었니?”
“잘 먹었어요!”
“잘 먹었어?”
엄마를 부축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하얀 머리카락이 하르르 날린다. 듬성듬성 붉은 살이 드러나는 머리를 뿌연 내 눈은 자꾸 더듬는다. ‘키는 왜 자꾸 작아지는 거야!’ 혼잣말로 구시렁거린다.
“엄마! 엄마는 그래도 머리숱이 많은 거야 그치?”
“그럼”
마음에도 없는 말로 위로하며 엄마와 나 사이의 세월을 속여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