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 해질 무렵
노릇한 해질녘은 너무 잘 익어서 애잔하다
엄마약손만큼이나 따듯한 날
평상위에 저녁나절이 펼쳐져 있고
간이 밴 풍경들이 홍동백서 순으로 배열된다
엄마와 이별한 바지랑대와 감나무는
제 그림자를 있는 대로 늘이고
비스듬히 누운 햇살 따라
음식 준비하는 누나도 삐뚜름하게 보인다
언제나 목발에 기대있던 엄마의 기울기다
새파란 하늘은 서글프다던 엄마처럼
슬픈 맛도 순해야 제맛이라며
구름을 한 스푼 더 넣는 누나
햇살을 밟고 선 누나의 두 발에는
엄마의 슬리퍼가 신겨져 있다
그늘이 마루를 거의 차지할 즈음
쟁반에 누워있던 풍경 냄새가
슬며시 일어나 허기를 건드린다
기억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엄마 손맛
담장 옆에 서있던 해바라기도
덩달아 까만 눈물 툭, 떨군다
프라이팬에 붙어있는 상표 blue sky가
불루한 스카이로 읽히는
바람기조차 없어 풍경이 숨 멎은 날,
잘 익은 해질녘은 노릇노릇해서 애잔하다
*사친문학 2019년 가을호 수록
시작노트
나는 열 번째 생일이 지나면서 삐뚜름해졌다.
생일 바로 전날, 엄마는 아침 일찍 장터 길을 나섰었다. 방학이라 동네 아이들이 아침부터 몰려다녔지만 나는 엄마가 많이 걱정되었었다. 음식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삼십 리 산골길을 걸어오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마을 어귀에 나가 해가 뉘엿뉘엿하고 언덕배기가 노랗게 구워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고 엄마의 신발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엄마는 산비탈 굽잇길을 그대로 내달린 트럭 적재함에 타고 있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만난 엄마는 똑바로 서지 않으셨다. 어쩌다 일어설 때면 목발을 집고 삐뚜름하게 섰다. 엄마가 똑바로 서지 않는 것은 순전히 내 생일 때문이라고 나는 자책했었다. 그래서 나도 그날부터 엄마처럼 모든것을 삐뚜름하게 보았다. 최소한 나만이라도 엄마와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렇게 이 년여를 똑바로 서지 않으셨다.
삐뚜름한 엄마와 같이 생활한 그 이 년여가 반백년이 다 되어도 여전히 내 정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조금만 열중하면 저절로 고개가 삐뚜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