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야야, 아프지 않은 상처는 금방 문드러져 버린다. 야무진 손끝으로 소금 송송 뿌려가며 당신이 말했다. 싱싱하게 죽으려면 매번 처음처럼 아파야 해. 당신은 슥슥 살에 칼집을 내었다. 철컥 굳게 닫힌 당신의 성(城). 앙다문 입술을 뚫고 돋아난 푸른 가시. 비 온 뒤 서둘러 올라온 죽순 같아. 아무 맛도 나지 않고 아리기만한, 샐쭉 눈을 흘기는 당신이 안쓰러워 나는, 네, 저도 한번 실하게 아파보겠습니다. 말할수밖에없었다.
얼마나 속이 탔으면 소금이 되었다냐. 가스불에 후라이팬 올리며 당신이 말했다. 짠맛이 속까지 스며들려면 뭉근히 오래 두어야 한다. 꼭꼭 뚜껑을 덮었다. 야야, 다시 태어나면 나는 사람은 안되고 싶구나. 흰 살만 발라 내게 얹어주며 당신이 말했다. 저녁 밥상 위 날깃 날깃 찢긴 당신의 몸. 등 푸른 슬픔이 파헤쳐진 무덤. 달밤에 표정을 들킨 흰 뼈처럼 당신이 빛나서 나는, 싱싱한 당신의 죽음이 너무나 비려서 그만 나는, 네, 저도 한번 살뜰히 죽어보겠습니다. 말할수밖에없었다.
시작노트
내가 알던 세계에 균열이 생겼던 유년의 순간을 기억한다. 거대한 땅이 갈라지자 그 사이로 슬픔이라는 대륙이 드러났다. 유리 같은 어린 영혼이 깨지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 엄마는 자신의 슬픔을 적어도 내 앞에서만은 꼭꼭 감추려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 말대로라면 징그럽게 애늙은이 같았고, 어른들이 숨기는 것만 골라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정작 나를 지켜준 건 감추려 한 엄마의 노력이 아니라 그 투명한 노력 뒤에 놓인 파리한 사랑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에 절대적으로 압도당할 때, 발 딛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고 드러난 검은 입이 나를 삼킬 것 같아 공포스러울 때 나는 살길을 찾기 위해 꺼질 것 같은 사랑이란걸 붙잡았다. 그건 살기 위한 투쟁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내가 슬픔의 세계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간신히 붙잡은 나뭇가지. 그 가지 끝에 피어난 꽃 한 송이의 불타오르는 숭고한 아름다움. 나는 오직 그걸 보기로 했다. 내가 시인으로 태어난 첫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