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그동안 동창들의 부고는 드문 일이었다.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던 죽음의 발소리가 요즘 들어 부쩍 가까이 오고 있는 듯 느껴진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 K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떴다.
“야, 학교 다닐 때 왜 애 늙은이 같다고 해서 이름 뒤에 ‘옹’을 붙여 부르던 준수 알지?”
“어, 알지. 왜?”
“걔가 지난주 폐암으로 죽었단다.”
“그래? 평소 술 담배도 안 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러게……..”
학창시절 우리집이 있던 골목길의 가로등 옆 파란색 대문 집에서 살던 그 친구가 순식간에 기억 속에서 부활한다. 돌아보면 나는 유난히 부끄럼을 타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 치맛바람 덕분에 반장이라는 감투를 썼다. 이후 지구의 종말을 매주 한 번씩 경험해야만 했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운동장의 단상에 올라 전교생을 마주 보며 올바르게 이빨 닦는 방법 보여주기, 새로 나온 동요 부르기, 국민교육헌장 낭송하기 등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굣길에서 “떨리고 무섭지 않아?”라고 걱정하며 물어보던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이상 그가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내 삶에 허전한 공백을 만든다. 죽음은 매 순간 우리 곁에 있지만 항상 낯설다. 누가 그랬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이 연출하는 드라마는 항상 똑같다, 다만 관객을 바꿀 뿐이다”라고..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나는 창밖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는 습관이 있다. 건물과 도로와 자동차들이 점점 작아지다가 알아볼 수 없게 되고 개별적 인간의 흔적이 더 이상 감지되지 않을 때, 저 아래에 있는 고요한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왔을까? 라고, 자문한다.
해부학적 구조나 모습이 오늘날 우리와 같은 수준의 현생인류(modern Homo sapiens)의 조상이 출현한 시점은 대략 기원전 30만 년 전이라고 하며, 그 이후 총 1,060억 명의 사람들이 지구에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수가 약 79억 명이라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전체 사람 수의 약 7.5%가 현재 지구에 살고 있고 981억 명은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이 본래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데는 우리의 존재적 정체성에 대한 원초적 사유가 담겨 있다. 우리는 죽으면 땅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곳이 땅이니, 유래한 곳 또한 땅일 것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지구의 지표면 위에서 42 억 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죽음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는데,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아야 할까 고민 중이다.
엊그제 봄이 오는가 싶더니, 동네 주변에는 활짝 폈던 하얀 목련꽃이 금세 떨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