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제가 우는지도 모르고 우는 눈물이
차마 떨어지지도 못하고 공중에 서 있다
슬픔이 우리에게 공평하게 젖어 들었다
젖는 줄 모르고 젖는 어깨가
어깨에게 기대 밤이 흠뻑 젖었다
안개 속에서 손을 뻗으면
자꾸만 사라져 우리는 서서히 투명해지고
사라지는 것은 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라지려는 손을 잡으려 계속 손을 뻗고
달팽이의 안테나가
눈인지 손인지에 대해 우리는 오래 얘기했다
끝까지 가야만 알 수 있는 마음과
알고 싶지 않아 끝까지 매달리는 마음 같은 것들을
지워지려는 길에서 지워지지 않으려
등 뒤로 하얀 돌을 떨구며 간다
지난밤의 뒤척임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애써 잠깐 풀잎에 맺힌다
서로를 버티는 어깨와 어깨의 골짜기
매일 태어나 새로 우는 안개
안개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이다
시작 노트
촉촉한 안개가 자욱한 유리 상자*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공간 감각이 사라졌다. 짙은 구름의 담요가 몸을 둘둘 감아 숨이 턱 막혔다. 코 앞 30센티 정도 살짝 보이다가 손을 뻗으면 그마저 사라진다. 앞에 있는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흰 망각뿐이다. 까무룩 무너진다. 스르륵 떨어진다. 위도 아래도 없을 텐데 어디로 떨어진 거지? 황급히 손을 뻗어 더듬거린다. 너의 이름을 재차 부른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자리에 있어도 괜찮을 텐데. 그러나 불안은 우리를 앞으로 이끈다. 앞으로 가기에 계속 불안한 것일까. 일렁이는 촛불처럼 흔들리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름 끝으로 찾았다. 마치 그것만이 내가 여기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는 듯이. 깜빡 죽어도 다시 살아날 주문이라는 듯이.
안개 안에서 우리의 내부interior와 외부exterior는 해체된다. 경계는 희미해지고 동시에 확장된다. 응축되어 점으로 소멸할까? 팽창하여 점점이 폭발할까? 간극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다시 한 발 내디딘다. 손을 뻗는다. 나의 손끝은 사라지지만, 두터운 시공간을 찢고 너의 손이 왈칵 들어온다.
*2007년 여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열린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의 전시, ‘Blind Light’.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인공 안개를 가득 채우고 관객이 들어가 체험하는 설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