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처럼 달콤한
아침이면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교양에 대하여 별도로 공부한 적이 없는데, 이러한 행동이 정말로 현대인의 교양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해 전, 늦깎이로 고국의 사이버 대학교에 입학했다. 처음 1학기 수강 신청에는 의욕적으로 전공과목만 6과목을 신청했다. 과목당 3학점이니 18학점이다. 4년간 이수해야 할 학점은 140학점인데 대략 반 정도는 꼭 수강해야만 하는 전공과목이며 나머지 70학점은 교양과목이다. 1학기를 마치고 2학기 수강 신청할 때, 제목에 관심이 가는 교양과목이 있어 수강 신청을 했다. 강의 제목은 <카페 이야기>이며 수강 정원은 600명이었다. 나는 주저함 없이 신청했으나 바로 전에 이미 종료되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지난해, 2학년 1학기 수강 신청엔 오픈 시각을 기다려 시작과 함께 바로 신청했다. 500번째가 지나 가까스로 수강 신청되었고 수초 후, 마감되었다. 3학점짜리 한 강좌가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는지, 교양과목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카페 이야기>는 교양과목이므로 안 들어도 졸업할 수 있는 강의이다. 내용은 커피, 차, 맥주, 와인에 대한 이야기이며 강의를 듣고 난 후 각 시음 기록을 작성, 제출하는 것이다. 나는 네 가지 중 커피가 가장 가깝게 다가왔다.
커피는 6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아비시니아 지방에서 살았던 목동 칼디(Kaldi) 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어느 날, 칼디는 이상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술에 취한 듯 흥분해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먹어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칼디는 이 신기한 사실을 수도사들에게 알렸으나 수도사들은 악마의 열매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불에 던져 버렸다. 불 속에 던져진 커피는 불에 타면서 향기로운 냄새를 뿜어냈다. 그 향기에 매료된 수도사들은 남은 열매를 수거하여 먹어보고는 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수도사들은 밤에 기도할 때,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지중해 무역을 통하여 유럽으로 들어오게 된 커피가 기독교에서는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악마의 음료, 사탄의 음료라고 마시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커피 맛을 보게 된, 제231대 교황 클레멘트(1592~1605)는 “참으로 감칠맛 나는 음료이다. 신을 모르는 이교도들만 이 음료를 마시게 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커피에 세례를 베풀어 기독교 세계의 공식 음료로 삼았다.
프랑스 작가이자 로마 가톨릭 성직자이었던 탈레랑 페리고르(1754~1838)는 커피를 향하여 “악마처럼 검으나 천사같이 순수하며, 지옥같이 뜨거우나 키스처럼 달콤하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다.
원산지가 에티오피아라는 아라비카(Arabica)와 원산지가 콩고라는 로부스타(Robusta)를 각각 구입하여 서로의 맛을 비교한 커피 시음기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시음 기록을 제출해야 학점을 받을 수 있기에 필요한 장비도 구입했다. 학생들의 리포트 복사 방지를 위해 장비 및 커피 원두 구입 영수증도 사진으로 제출해야 하며, 시음 장면도 사진을 찍어 제출하여야만 했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이곳저곳 다니며 칼날 형 커피그라인더, 필터, 커피 드립용 주전자 등을 구입하여 영수증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내가 고국의 사이버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한다고 했을 때, 우리 집 아들딸은 별로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서울의 형제들이 응원했다. 아이들은 아마도 소일거리인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가끔 집에 와 저녁을 먹고 나면 언제 커피를 줄 것이냐고, 아버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셔야만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재촉한다. 특별히 아버님의 드립 커피는 최고라고 엄지척하는 며느리의 칭찬에 이미 나는 커피에 취한다. 아내도 빨리 커피를 내리라고 빚 독촉하듯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커피 원두를 전기 그라인더에, 하루는 신맛이 좋은 아라비카 원두를 또 다른 하루는 쓴맛이 강한 로부스타 원두를 넣는다. 15초간의 웽 소리와 함께 좁은 거실에 뭉게뭉게 아지랑이같이 흩어 퍼지는 커피의 향을 맡는다. 종이 필터를 드리퍼에 설치하여 분쇄된 커피를 붓고, 꼬불꼬불한 주둥이를 통하여 주전자 속의 뜨거운 물을 부어 악마처럼 검으나 천사같이 순수하며, 지옥같이 뜨거우나 키스처럼 달콤한 커피를 내린다.

▶산문은 우리네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짧은 길이에 담아내면서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는 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이번 호부터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 8명을 선정, ‘시와 산문이 있는 자리’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문학이라는 예술적 시선을 통해 나온 그분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일상의 소소함에서 전해지는 감동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