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 주문하겠어요.’
느닷없이 불쑥 그가 던진 말이다. 며칠 후 남편은, 실제로 내게는 꽤 큰 30호 가량의 캔버스를 사서 내밀었다. 여기에다 당신이 주문한 그림을 그리라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그림은 뜻밖에도 ‘십장생도’였다. 침대 머리맡에 그 그림을 걸어놓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왕을 꿈꾸었나? 아니면 꿈에서라도 십장생도 아래서 오래오래 버티고 앉아있는 왕이 되고 싶었나? 저 속에서부터 치올라오는 나의 웃음은 우리 집을 가득 채우고, 몰래 베란다에 들어와 있던 옆집 고양이까지 화들짝 놀라 달아나게 하였다.
작년 초부터 나는 유화를 그리기로 하였다. 시드니에서 가장 독창적인 화풍을 갖고 있다는 이 화백 밑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대학 시절, 학교에서 수채화를 많이 그렸으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 반드시 바깥에서 풍경화를 그려 매주 석 점씩 제출해야 했는데, 나중에는 숙제내기에 급급하여 방안에서 머리속에 자리잡은 경치들을 그럴싸하게 그려내곤 하였다. 플라타나스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대학의 동관 건물, 6.25전쟁 때 포탄이 떨어져 연못이 되었다는 탄지 주변, 돌계단을 올라 자리잡은 숲속의 음악당… 그때 벌써 십장생도처럼 사실과 추상을 곁들어 그렸다고나 할까? 그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한때는 미술반을 이끌기도 했으나 정작 그림을 그리진 않았다. 그러나 그림 보기를 즐겨하여 미술관이나 특별전시회를 자주 들락거렸는데, 인상파를 열정적으로 설파하던 여고 미술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것이리라. 곱슬머리에 검은 빵떡모자, 헐렁한 옷차림의 선생님은 주황색을 가장 선호했고, 우리도 좋아하는 색깔을 정하였었다.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노랑을 나는 좋아하였고, 그 색깔이 바로 고흐의 빛이라고 자부하던 시기였다. 시드니로 이주한 뒤에도 그림사랑은 계속되었다. 유럽을 여행할 때는 그 많은 미술관과 성당을 방문하면서 지칠 줄 모르는 감동을 휩싸 안았다.
내 마음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쉴새 없이 퍼올려주는, 나의 십장생은 진정 무엇일까? 십장생도를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던 중, 문득 오래전 경복궁에서 그 아름다움에 뭉클하였던 자경전의 굴뚝이 생각났다. 먼저 캔버스 오른편에 큼지막하게 담장처럼 생긴 굴뚝을 그린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궁 굴뚝에서 연기를 피워 올린다. 그 연기는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민 온 우리 가족의 바람처럼, 오페라 하우스 지붕을 연상시키며 무지개 빛깔로 하늘에 퍼져나간다. 굴뚝 벽에 조각된 십장생들은 모두 동적으로 움직여 화폭 여기저기로 날아가거나 걸어 나가고, 그 안에는 담쟁이 넝쿨 위로 내가 올린, 흰 장미가 있는 빈센트와 테오의 무덤이 자리한다. 영화 아바타의 모델이 된, 가고 싶은 명산, 장가계의 봉우리들이 치솟아 오르고, 프랑스 노르망디의 해변, 에트르타의 코끼리 바위는 아직도 그곳을 즐겨 그렸던 쿠르베와 모네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 청정한 물빛에는 바로셀로나, 밤의 성가족 성당이 찬연히 잠겨있다. 이게 무얼까? 내심 미심쩍어 하는 남편의 눈길 속에서, 새로운 영감과 미래에 대한 돌파구를 제시하는 여행, 시간의 점을 찍은 내 마음의 십장생도는 그렇게 완성되어 갔다.
어느 날, 나는 캔버스 하나를 새로 마련하겠다. 그리고 그의 십장생을 그릴테다. 빛나는 해와 달 아래, 늘 푸른 기개의 소나무와 상서로운 구름이 걸려있는 높은 산, 거기에는 폭포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불로초를 먹는 사슴이 뛰놀며, 천년을 사는 학이 날아다닐 것이다. 맑은 물속에선 바위 같은 거북이가 나비처럼 헤엄치는, 그 이상향을 그릴 것이다. 그를 위해 정성을 다해.
김인숙 / 수필가, 시드니 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