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가 기댈 영원한 품이기도 하다. 또한 자연은 잘못 되어진 현대문명의 커다란 해독제이기도 하다. 그 자연을 향해 우리는 고마움을 갖게 된다.
연초 내 생일이 다가올 때 그가 살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당신이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자고. 괜스레 들뜬 마음이 되어 따라나선 시간은 해가 중천에 떠올라 더위가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던 때였다. 서큘라키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2번 부두에서 타롱가 동물원 가는 배를 타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순식간에 더위를 몰고 갔다. 십여분 거리에 있는 타롱가 동물원 입구에는 주로 젊은층의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입장하고 있었다. 그 옛날 아이 둘을 데리고 이곳에 왔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옆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 속이었지만 옆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하늘이 보일 만큼 숲으로 뒤덮여 한낮의 햇빛을 피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조금 더 가니 오른쪽으로 조개 모양의 오페라 하우스와 세상에서 가장 큰 옷걸이 모양을 한 하버브릿지가 그림처럼 나타나니 나도 모르게 입이 크게 벌어진다. 절묘한 위치에 길이 나 있어 산책로를 걷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산속이라고는 하나 편편한 길 이어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 걷기에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만큼 경사가 완만하다. 도란도란 주고받는 이야기에 지루함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나는 어느새 자연과 하나 되어 숲 속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이런 것일까. 바다 내음이 물씬 내 코를 자극하고 숲 속의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를 마음껏 들이 마시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걷고 또 걷는 이 적당한 움직임이 바로 몸이 원하는 게 아닐런지.
한참을 걷노라니 시커먼 도마뱀이 살금살금 기어가는데 오히려 사람이 놀랄 지경이다. 이곳의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만나도 달아나지 않는다. 자기 영역이라 그런 걸까? 이름 모를 야생동물들이 줄 지어 나타나니 새로운 구경거리가 되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닭도 아니고 칠면조도 아닌, 붉은 왕관을 쓴 이 동물은 낙엽을 뒤적이며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 참 한가로워 보인다. 이곳은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나 보다. 호주 정부의 첫 순위 정책이 자연환경 보호라는 말이 믿어지는 현실이다.
한 시간여를 걸어 크립튼 가든에 도착하면 먼저 온 반가운 얼굴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모두가 모인 장소에 점심 식탁이 차려지면서 오늘은 또 어떤 음식들이 나올까 기대하게 된다. 부시워킹의 또 다른 즐거움은 아무래도 걷고 난 후의 점심시간일 게다.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인간의 기본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모두가 정성껏 만든 음식들을 꺼내 놓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각자 집에서 기른 채소로 어떤 이는 상추를 비닐봉지에 양념장을 넣고 갓 버무려 내놓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깻잎에 한 장 한 장 양념을 묻혀 적당하게 간이 배인 것을 꺼내놓아 우리는 하나같이 ‘명품 깻잎’이라 명명한다. 구수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큰 언니와도 같은 이 분은 묵은 김치에 다시 멸치를 듬뿍 넣고 자작하게 끓여 김치 특유의 맛을 살린 반찬으로 우리의 식욕을 돋구어준다. 어젯밤 내가 정성을 들여 만든 밤 묵도 매끈하게 잘 쑤어졌다고 한 마디씩 거든다. 며칠 후의 내 생일상을 미리 받은 듯하여 내심 미소가 입가에 걸려있다. 이렇듯 정성껏 마련한 식탁에는 건강이 보이고 우리의 부시워킹팀에 유대감이 형성된다. 같이 걷는 사람 모두가 서로의 사정이나 건강 상태도 알 수 있고 연령이 서로 다름으로 해서 이해의 폭이 더 넓어 우리의 끈끈한 관계는 오래 이어지고 있다. 어쩌다 한 번 이라도 빠지게 되면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이 남 다르다.
시드니 시내 한 복판에서 배를 타고 건너오면 하버 내셔널 파크가 자리하고 있고, 그 곳에는 자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을 걷는 우리는 대가 없이 주는 자연의 선물로 인해 고마움을 느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의 숲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맑은 공기와 햇빛! 그것은 우주적인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와 내가 이 아름다운 산 속을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오래도록 걷고자 하는 열망은 지나친 욕심일까?
김인호 / 호주문학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