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주위는 아침 일찍 잠을 깨우는 요란한 웃음소리의 물총새와 현란한 깃털을 자랑하는 앵무새들, 가끔 뒷뜰에 와서 떠억 버티고 서 있는, 한 덩치 하는 시커먼 야생 칠면조까지, 새들과 숲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새들을 생각하며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시티를 향해, 10년을 한결같이 7시 15분 전 기차에 오른다. 큰새, 작은새, 펭귄 등 색다른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 찬 오층 건물의 자그마한 숲, 거기서 건져 올릴 골든코인을 위하여, 나 또한 한 마리 새가 되어 새벽마다 날개를 퍼덕거린다.
기차 승무원의 다문화적 발음에 따라 ‘쏭리, 똥니, 소올리… 등 미소를 머금게 하는 출발점을 뒤로 하고, 열 여섯 개의 역을 지나는 출근길 여정은, 활기와 설레임으로 시작하지만 때로는 지난밤의 뒤숭숭한 꿈으로 인해 피로와 비참함으로 아침잠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문이 열릴 터이니 조심하라는 방송이 들리면,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밀려들어와 자신의 선호에 따라 자리잡는다. Beecroft 역에서는 어김없이 특이한 모습의 그 여자가 내가 앉은 이층으로 올라온다. 옛 중국의 여인처럼 머리에 벙거지를 얹은 그녀는 배웅 나온 차창 밖의 남자에게 눈짓 손짓으로 인사를 나누고, 내 반대편 창가에서 이어폰을 꽂는다. 흑발의 뒷머리는 어깨를 지나 허리쯤까지 이르는데, 머리통은 가발을 쓴 것처럼 짧게 손질한 스타일은 언제부터인가 내 눈길을 끌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바로 앞에 앉았을 때, 그건 벙거지 가발이 아니라 정수리가 희끗희끗한 진짜 머리카락임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말을 건네 보진 않았으나, 그 뒤로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우정을 느낀다. 하루도 빠짐없이 플랫폼까지 나와 어깨를 감싸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정인을 뒤로하고 차에 오르는 그녀를 통해, 나는 저 거대한 대륙에서 왕국을 잃은 황녀가 이국에서 신분을 감추고 고된 일터로 나가는 듯한 착각을 한다. 안타까운 듯 애틋한 시선으로 차창을 올려다보는 그는, 그녀의 충직한 시종이 아니었을까? 매일아침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Epping을 지나 기차는 지하로 접어든다. Macquarie Park에 정차한 기차를 보며 에스컬레이터 위의 소녀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기차가 소녀를 태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문이 계속 열려있자, 소녀는 나무둥치 안으로 들어가는 날쌘돌이 다람쥐마냥, 몇 남지 않은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내려 기차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큰 숨을 쉬며 안심하는 듯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바이므로…. 바로 이전 역에서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었다. 한 남학생이 꼭 이 차를 타려는 결심으로 쏜살같이 달려오지만 코앞에서 문은 닫혀버렸다. 두 손을 높이 들고 한숨을 내쉬는 꼴이, 아카데미상 주연 후보에 올랐다가 마지막 순간 탈락하는 아쉬움의 표정과 몸짓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 녀석아, 일분만 더 일찍 오지 그랬니! 그러나 날 웃게 해줘 고맙구나. 사실 나도 미친 소처럼 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다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Chatswood를 지나 Artarmon에 이르면, 저만치 보이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신앙심 깊은 성가대 반주자 니카씨가 생각나고, 맞은편 타운하우스에 살았었던 초롱초롱한 눈매의 어린 제자 진영이도 기억한다.
Wollstonecraft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한쪽은 절벽, 다른 쪽은 빽빽한 나무로 벽을 이룬 기찻길이 나타난다. 기차 8량 중에서 항상 뒷쪽 세 번째 칸에 자리잡은 나는 이 지점을 지나는 시간을 좋아한다. 선로가 휘어져 있어 굽이쳐 돌아가는 기차의 선두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날씨가 아주 푸르거나 비가 부슬거리고 안개라도 드리워져 있으면, 열리지 않는 차창 밖으로부터 풍겨오는 박하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영혼과 육신이 피폐해져버린 한 인간의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꿈 많고 순진한 청년이 진흙탕 시대의 아픔을 겪고 껍데기만 남은 채, 꽃잎 날리던 순수의 강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념에 잠기는 순간, 영화가 끝난 듯 바깥이 캄캄해진다. 나는 얼른 숨을 가다듬고 하나, 둘, 숫자를 센다. 다섯이 되면 동그랗게 새로운 세상이 보이고, 일곱 혹은 일곱 반이면 터널을 지나 하버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는 Waverton에 도착한다.
언젠가는 이 기차에서 내려 골목을 샅샅이 훑어보고 싶은, 매혹적인 지붕이 즐비한 Milsons Point 역을 지나, 기차는 세상에서 가장 큰 옷걸이인 하버 브리지 위의 파란 애벌레가 되어 Wynyard로 진입한다. 어쩐지, 시드니의 바람이 다 모여 재편성 되고, 또 다른 방법으로 회오리 되어 사라질 것 같은 Wynyard, 애벌레 안의 사람들도 껍질을 벗고 바람과 함께 쑤욱 빠져나간다.
일상의 한 부분인 출근길에서, 사람들은 말로 굳이 표현하지 않은 인사와 배려있는 몸가짐으로 서로에게 하루의 출발을 격려하며 부드러운 에너지를 교환한다. 50분간의 나의 여정은, 승강장 역무원의 명쾌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낯설지 않은 익숙함을 내게 선물한다. 아, 이제 Town Hall이네. 나도 내려야겠다.
김인숙/호주문학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