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아가가각∼∼ 버스에 오르다가 깜작 놀라 멈춰서 멍하니 둘러본다. 고작 열 명도 안 되는 꼬맹이들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두리번거리는 내게 잘생긴 기사가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앉으라고 한다.
차가 출발할 때 좌석으로 돌아가 잠시 멈추었던 아이들이 다시 까마귀떼처럼 소란스럽다.
해질 무렵 나무가 우거진 역 근처 새떼들의 극성스런 아우성과 많이 닮은듯하다. 쇳소리가 난다. 혼이 반쯤 빠진 한국 할매가 정신을 가다듬고 버스 안을 다시 둘러본다. 허연 노인들 몇이 띄엄띄엄 앉아서 묵묵히 미소 짓고 있다. 아무도 이 시끄러운 아이들에게 제재를 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손주 녀석들의 재롱을 바라보며 즐기는 듯한 흐뭇한 표정에 모두가 동화되는 느낌이다. 기사가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해주길 기대했건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즐겁게 운전만 한다. 까칠한 한국 할매도 이들의 놀라운 인내심에 백기를 들고, 그래∼ 시끄러우니까 아이들이지. 살아있고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하자. 어린이를 이해하고 보호하며 존중해주는 이들이 진정한 어른이 아니겠는가. 내 손주들도 저러고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어본다.
고스포드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버스를 잘못 탔나보다. 기사가 교복이 같은 상급생을 찾아내어 학부모에게 연락하도록 부탁한다. 운전을 하면서 버스회사와 학교로 무전을 보낸다. 한참을 달려서 포인클레아 쯤에선가 학부형이 손을 흔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신속한 비상 연락망의 위력이 놀랍고 부럽다. 상급생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서 정확하게 인계하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기사가 상급생에게 굿걸이라고 칭찬한다. 버스 안의 승객 모두가 환하게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칭찬하기 좋아하는 할매가 친절한 기사에게 굿보이라고 크게 말해주고 혼자 뿌듯해한다. 이럴 때마다 객기 부리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영감은 지금 낚시터에 앉아 있고, 오버하지 말라고 눈 흘기던 딸은 한국에 있으니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는 자유로운 이 시간을 맘껏 즐긴다.
땅거미가 짙어지는 저녁 무렵,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버스가 꽉 찼다. 마지막으로 황급히 차에 오른 중년 여인이 출발하고 나서 목적지를 말한다. 기사가 잘못 탔으니 다음 정류장에서 갈아타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있는 여인이 피곤한 얼굴로 난감해한다. 앞 차를 놓치면 반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지혜로운 기사가 어느새 여인이 타야할 버스를 향해 전화를 걸고 있다. 그 버스를 꼭 타야할 승객이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들썩거리던 앞 버스가 멈춰서고 여인이 무사히 올라타자 맘 조리며 바라보던 승객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마치 우주선의 도킹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감동 받기 잘하는 한국 할매가 감격에 겨워 이 멋진 기사를 뒤에서 껴안아 주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울먹거리며 ‘굿잡’이라고 엄지를 들어 올려준다. 진정한 신사를 만난 희열에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계속된 열풍에 기진할 즈음 고맙게 오늘은 비가 내린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춥게 느껴지는 오후, 기차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낯익은 기사가 반긴다. 운전도 하고 배차도 하는 인상 좋은 기사는 이 동네 통반장이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도움을 주지만 특히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 같이 따뜻하고 정겹다. 그의 곁에 조그만 소녀가 커다란 책가방을 끼고 웅크린 채 풀이 죽어 앉아있다. 아마 버스를 잘못 타서 보호받고 있나보다.
소녀 곁에 좀 있어달라고 내게 부탁하고 대기 중인 버스로 달려가 커다란 점퍼를 들고 돌아온 기사가 떨고 있는 소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엄마가 곧 널 데리러 온다니 걱정 말라고 꼬옥 안아준다. 소녀가 끄덕이며 배시시 웃는다.
오지랖 넓은 한국 할매는 우리 동네 멋진 신사들 때문에 자주 눈물이 난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강조한 법정 스님의 잠언집을 끌어안고 잠들어야겠다.
박조향 / 수필가, 호주문학협회 회원, 서간집 <라일락 향기> 출간(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