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호텔까지 데리러 온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케언즈(Cairns) 시내를 누비며 부시시하게 잠을 깬 여행자들을 태운다. 내 예상대로 대부분 이삼십대 청년들로 금세 꽉 차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툴리 강(Tully River) 급류타기에 남편과 나는 신체나이가 더 많아지기 전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호주의 동북쪽 퀸즐랜드(Queensland)는 열대우림지역으로 높은 온도와 습도,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를 자랑한다. 서쪽 하늘에서 비구름이 삽시간에 몰려오더니 차창을 두드리며 소나기가 쏟아진다. 안내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결이 불안정한 와이파이(Wi-Fi) 속에서도, 각자의 휴대전화기를 접속시켜 급류타기를 하기 전에 필요한 사항을 숙지하고 서명을 하라고 외친다. ‘당신의 생명은 당신이 알아서 챙기세요. 우린 도와 줄 뿐이예요. 마지막 책임은 바로 당신입니다.’ 수술실 앞에서나 여기서나 똑같은 명령어가 떨어진다. 서명을 하고 나니 사나운 빗줄기는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날씨가 펼쳐진다. 우리 모두의 환성이 무지개가 되어 우림의 창공으로 떠오른다.
강 상류의 출발점에 이른 후, 간단한 준비운동과 안전교육을 받고 구명조끼와 안전모를 착용한 뒤, 통통한 열 대의 고무보트에 각 여섯 명씩 배정받아 강물로 진입한다. 우리 배의 리더는 제임스라는 이름의 건장한 청년으로, 아버지에 이어 이 일을 즐긴다고 한다. 옆 팀의 리더가 제임스의 진짜 이름은 불독이라고 해 모두 웃는다.우리 보트는 국제적인 조직으로, 선두에는 오른쪽 어깨의 푸른색 문신이 인상적인 영국 청년과 여자친구, 가운데는 한국 이민커플, 뒷편에는 네델란드에서 여행 온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매, 그리고 불독은 선미에 버티고 앉아 씩씩하게 우리를 호령한다.
어느새 보트는 울퉁불퉁한 바위사이를 헤집으며 급류를 따라 빠르게 나아간다. 우리의 고함과 탄성도 계곡을 울리며 달린다. 리더의 지시에 따라 모두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노를 젓거나 몸을 움직여야 하고, 강물이 배를 덮칠 때는 배 가장자리에 걸쳐진 밧줄을 꼭잡고 납작 업드리는 등, 절묘한 힘의 분배와 조합을 이루며 배는 뒤집힐 듯 요동치면서 잘도 내려간다. 강 옆 언덕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차가운 물줄기를 맞을 때는 모두 노를 높이 치켜들고 밀림의 소년이 되어 ‘우우’ 소리지른다.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내리비치는 뜨거운 햇살에 살갗이 익으려 하면 갑작스런 소나기로 땀을 시원하게 씻어내 준다. 어떤 곳에서는 강낭콩만한 파리 몇 마리가 무임승선하여 우리를 괴롭히는데, 특히 내 앞 청년의 근육질 팔뚝에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노를 저으랴, 파리를 내리치랴, 빠른 물살처럼 손놀림이 바쁘다. 바위투성이의 강줄기를 지나 유속이 느려지며 호수처럼 아늑한 곳에 다다르자, 불독은 우리에게 강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한다. 머리를 상류 쪽으로 두고 배영을 하며 파란 하늘, 짙푸른 숲, 흘러가는 솜털구름과 미풍을 느끼며, 태초의 자연을 향유한다.
점심 식사와 잠깐의 휴식 후, 다시 힘차게 노를 젓는다. 모두 조금 익숙해진 듯 웃음과 휘파람과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전진한다. 얼마 뒤, 양 옆으로 큰 바위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폭포에 도착했다. 리더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노를 거두어 간다. 그리고 배의 앞자락에 모두 앉게 한 후, 팔과 손을 엮으라고 한다. 불독이 버티고 있는 배의 뒷쪽은, 한껏 올라간 시소처럼 들려졌다. 불독이 날렵하게 옆쪽 바위로 내려서는 순간, 배는 빠르게 폭포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우리 여섯은 소리지르며 물속으로 내팽개쳐졌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물맛을 보고 허우적거리며 위로 오르는데, 오른발에서 신발이 쏘옥 빠져나간다. ‘아, 신발을 한짝 잃었으니 어쩌나?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산 건데… 여기서 싸구려 물신발이라도 사야겠군. 참, 남편은 괜찮을까?’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은, 찰나는 영원, 영원은 찰나임을 느끼게 하였다. 자신이 태어날 때의 경험과 죽을 때의 경험을 동시에 인식하는 기분이 이럴까?
얼른 물위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바로 코앞에서 신발이 동동 떠내려간다. ‘아싸’ 소리치며 낚아채 배 위로 던졌다. 이젠 수영을 즐기며 주위를 살펴본다. doggie swimmer인 내 남자는 어찌 되었나? 여자가 생수를 반 컵 마셨으니, 남자는 당연히 한사발은 들이켰으리라. 물속에서 잘 올라왔는지 슬며시 걱정된다. 남편은 뒤집힌 보트 밑에서 가까스로 헤엄쳐 나왔다고 엄살이다. 개헤엄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자랑이지만 구명조끼와 헬멧이 한몫 한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한바탕 꿈같이 지난 하루를 반추하는데, 남자는 친구들에게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느라 분주하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래프팅 하기에 딱 좋은 나이야!’ 나도 지혜로운 여자가 되어 노래 부른다.
‘내 제비는 오로지 당신께 있나이다.’(시편 15장)
김인숙 /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