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쿼리대, 사상 교육 강제 논란
맥쿼리대학교(Macquarie University) 법학과 학생들이 구두 시험을 볼 때 전통 원주민 소유권을 인정하는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Acknowledgment of Country)’을 하지 않거나 불충분 할 경우 낙제할 위기에 처했다. 이는 학점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평가 기준 중 하나로 포함되었으며, 특정한 방식으로 작성되고 발표되지 않으면 불합격 처리된다고 명시됐다. 이러한 조치는 일부 원주민 지도자들조차 ‘사상 교육(indoctrination)’이라고 비판하고 나서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램지 서양문명센터(Ramsay Centre for Western Civilisation) 설립 CEO인 사이먼 헤인스(Simon Haines) 교수는 “학문과 정치적 활동을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 표하기는 정치적 활동이며, 이를 학점 평가 요소로 강제하는 것은 충격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맥쿼리대학교 측은 “해당 과목인 ‘연령과 법(Age and the Law)’이 원주민 청소년과 법률 시스템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적절한 요구사항”이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 원주민 지도자들도 비판
몇몇 보수 성향의 원주민 지도자들도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야당의 원주민 담당 대변인인 자신타 남피진파 프라이스(Jacinta Nampijinpa Price) 상원의원은 “대학이 교육보다 사상 교육에 더 관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원주민 지도자이자 자유당 전 후보인 워렌 먼다인(Warren Mundine) 또한 “이것은 극단적인 활동가들에 의해 결정된 사상 교육”이라며 “법학과에서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은 맥쿼리대학교에서 반 이스라엘 성향의 학자인 란다 압델-파타(Randa Abdel-Fattah) 박사가 연구 윤리를 위반했다고 자랑한 뒤 87만 달러(약 11억 원)의 연구 자금이 중단된 사건 이후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제된 정치적 발언’ 이라는 비판
맥쿼리대의 이번 정책에 대해 보수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강제된 정치적 발언(compelled political speech)’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법학과에서 평가 기준으로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비판론자들은 ‘맥카시즘(McCarthyism)’이나 ‘사상 검열’을 떠올리게 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보수 언론인은 “맥쿼리대 법학과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학생이 존재할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학생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는 것은 대학의 본질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Welcome to Country’ 정부 지원 논란
한편, 정부 부처들이 ‘Welcome to Country ceremonies’ 행사에 거액을 지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야당이 정보공개법(FOI)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2~2024년 동안 21개 정부 부처가 총 300회의 ‘Welcome to Country ceremonies’ 행사를 개최하는 데 45만 2,953달러(약 6억 원)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평균 행사 비용은 1,266달러(약 170만 원)였으며, 특히 총리 및 내각부(41,801달러), 호주스포츠연구소(AIS, 47,003달러), 국가원주민호주인기관(NIAA, 60,342달러) 등이 높은 지출을 기록했다. 야당의 정부 예산 낭비 담당 대변인인 제임스 스티븐스(James Stevens)는 “이런 행사는 진정성 있고 의미 있어야지, 세금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세금이 원주민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라 형식적인 행사에 낭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 ‘정부 자금 낭비, 강제 행사 중단해야‘
야당 지도자인 피터 더튼(Peter Dutton)은 차기 정부를 구성할 경우 정부 부처가 진행하는 ‘Welcome to Country ceremonies’ 행사에 세금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더튼은 “원주민 및 토레스해협 군도 깃발을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행사가 국가를 불필요하게 분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당(현 정부)의 원주민 담당 장관 말란디리 맥카시(Malarndirri McCarthy)는 이러한 야당의 움직임을 “문화 전쟁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다윈 공습 기념식에서도 논란
최근 노던테리토리(NT) 수석 장관 리아 피노키아로(Lia Finocchiaro)가 다윈 공습(Bombing of Darwin) 기념식에서 유일하게 원주민 소유권을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지난 2월 19일 열린 이 행사는 다윈 폭격 83주년 기념행사로서, 호주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 리처드 말스(Richard Marles), 야당 재향군인부 장관 바나비 조이스(Barnaby Joyce), 호주 국방군 제1여단 사령관 더글러스 패슐리 준장(Brigadier Douglas Pashley)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다윈 공습은 호주 본토를 강타한 최악의 전쟁중 하나로, 1942년 2월 19일,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서 호주 북부 다윈이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받았고, 이는 호주 본토에서 벌어진 가장 치명적인 외국군의 공격으로 기록되었으며, 약 250명의 군인들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다윈 공습은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해군 항공대는 두 차례에 걸쳐 폭격을 감행했으며, 주요 목표는 항구, 군사기지, 비행장이었다. 정부는 당시 다윈이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공격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일본군의 공습 규모와 파괴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다윈 공습은 호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당시까지 호주는 본토가 직접적인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믿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방어 태세를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후 호주 정부는 북부 지역의 방어력을 대폭 증강하며, 미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일본군의 공습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다윈을 포함한 북부 지역 주민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일본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공포감이 확산되기도 했다. 다윈 공습은 호주가 본토 방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며, 현재도 다윈에서는 매년 2월 19일을 ‘다윈 공습 기념일’(Bombing of Darwin Day)로 지정하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당시의 경험은 호주의 국방 정책과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호주 역사에서 중요한 전쟁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이 행사에 참석한 다른 정치인들과 군 관계자들은 모두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언급 했으나, 피노키아로 장관은 참전용사 및 유가족만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원주민 원로 리처드 페조 시니어(Richard Fejo Senior)는 “수석 장관의 행위는 수치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피노키아로 장관은 이에 대해 “이전 노동당 정권에서는 모든 연설자가 반복적으로 원주민에 대한 경의를 표했지만, 이는 오히려 의미를 퇴색시킨다”며 “나는 모든 테리토리안(Territorians)을 대표하는 것이며, 참전용사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논란 속 이어지는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
호주 사회에서는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Acknowledgment of Country)’이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야당은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를 대형 국제 행사나 주요 국가 기념식 등으로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논란은 원주민 문화 존중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호주 사회가 여전히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맥쿼리대 사건을 계기로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적절한 사용과 강제 여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