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복싱을 정식종목으로 확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성 복싱 경기의 참가 기준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행정부와의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복싱 기구 ‘월드 복싱’ 승인
IOC 집행위원회는 지난 18일 새로운 복싱 기구인 ‘월드 복싱(World Boxing)’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복싱 주관 단체로 승인했다. 기존 국제복싱협회(IBA)가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IOC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한 이후 IOC가 직접 복싱 경기를 운영해왔지만, 이번 결정을 통해 월드 복싱이 그 역할을 이어받게 되었다. 월드 복싱은 공식적으로 “포용성과 스포츠맨십”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며, “성별, 인종, 종교, 능력, 연령, 국적 또는 민족에 관계없이 공정성, 공평성, 정의 및 포용성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 경기의 참가 자격과 관련된 명확한 규정을 아직 마련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IOC가 지난 파리 올림픽에서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카테고리에 출전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월드 복싱이 같은 방침을 유지할 경우 미국 정부와의 충돌이 예상된다.

파리 올림픽의 성별 논란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는 뉴질랜드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Laurel Hubbard)가 35세까지 남성이었던 전력을 가지고 출전해 논란이 됐다. 허버드는 10대 여성 선수인 나우루(Nauru)의 로비엘 데테나모(Roviel Detenamo)가 출전할 기회를 빼앗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뉴질랜드 총리였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은 허버드를 지지했다. IOC의 당시 의무국장이었던 리처드 버짓(Richard Budgett)은 “트랜스 여성은 여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남성이 사춘기를 거친 후에는 어떤 의학적 조치도 신체적 우위를 제거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후 파리 올림픽에서는 더욱 논란이 심화됐다. IOC 위원장 토마스 바흐(Thomas Bach)는 여권상 성별만으로 여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결과 XY 염색체를 가진 복싱 선수 두 명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들은 일반 여성 선수보다 최대 2.5배의 근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낮은 체지방률로 인해 신장과 사지 길이에서도 경쟁 우위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국제복싱협회(IBA)의 성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두 명의 선수가 IOC의 결정에 따라 여성 카테고리에 출전했다. 이들은 모든 라운드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금메달을 차지했고, 이에 대해 많은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강한 반발을 보였다. 그러나 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은 이러한 논란을 “러시아의 가짜 뉴스 공격”이라고 일축했다.
월드 복싱 측은 “안전성 확보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며, 다양한 의료 및 과학적 데이터를 분석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정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충돌 가능성
만약 월드 복싱이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경기에서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경우,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행정명령을 통해 “생물학적 남성은 여성 스포츠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명시했으며, 미국 정부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 두 가지로만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IOC가 월드 복싱을 공식 승인함에 따라, 미국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부 국가들은 월드 복싱이 올림픽 복싱을 주관하게 되면서 기존 IBA를 탈퇴하고 월드 복싱에 가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IBA는 189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월드 복싱에는 80개국이 소속돼 있다.
IOC 신임 위원장 선거 앞둔 논쟁
오는 20일, 그리스 코스타 나바리노에서 차기 IOC 위원장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키어스티 코번트리(Kirsty Coventry)를 비롯해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Juan Antonio Samaranch Jr.) 등이 출마했다. 코번트리는 최근 여성 스포츠에서 생물학적 여성만 경쟁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며, 기존 IOC 정책보다 더욱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올림픽 경기와 국제 대회에서는 생물학적 남성과 생물학적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스포츠 참여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지만, 공정한 경쟁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녀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번트리 외에도 세바스찬 코와 사마란치 주니어 역시 유사한 입장을 보이며, 현재 IOC의 성별 정책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는 이 문제에 오래전부터 관여해왔다. 과거 리우 올림픽 여자 800m 경기에서 차별화된 성 발달(DSD)을 가진 선수가 시상대를 휩쓸었던 사례나, XY 염색체를 가진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의 법적 공방 등을 통해 여성 경기의 공정성 문제를 직시한 바 있다. 세계육상연맹(World Athletics) 회장을 맡고 있는 코는 “우리는 스포츠의 우수성을 유지하고, 여성 스포츠의 공정성을 보호하며, 도핑 방지 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이번 위원장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올림픽에서의 성별 정책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브리즈번 올림픽 종목 개편 예고
한편, 코번트리는 IOC 위원장에 당선될 경우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의 경기 종목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림픽이 단순히 규모를 키우기 위한 성장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스포츠를 반영해야 한다”며, “현재 올림픽에 포함된 종목들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청률과 인기를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리즈번 올림픽에서는 일부 기존 종목이 제외되거나 새로운 종목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추가된 스포츠 중 서핑, 3×3 농구, 스케이트보딩, BMX 등은 인기가 높지만, 브레이크댄스는 관심이 저조해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2028년 LA 올림픽에서 추가된 크리켓은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라크로스와 플래그 풋볼(Flag Football)은 IOC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특수한 종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향후 전망
LA 올림픽을 앞두고 복싱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여성 경기의 참가 기준과 관련된 논의는 IOC 위원장 선거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IOC의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브리즈번 올림픽의 종목 구성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이번 결정이 복싱과 올림픽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미국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