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러
한나 안 / 에스엘 소설 문학회
‘덜거덕…. 덜거덕….’
방 밖에서 도어록 돌리는 소리에 은주는 이불깃을 머리 꼭대기까지 끄집어올렸다. 잠이 확 깼다. 재차 브론저 손잡이 칠이 벗겨진 도어록을 살살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누구야!’ 소리 지르려다 말고 협탁 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두 번 터치했다. 액상에 뜬 시간은 새벽 한 시. ‘이시간에 누구지?’ 아래층 가게 문들은 잠겼고, 외부에서 들어올 수 없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발소리가 멀어졌다. 암막 커튼 사이로 엷게 스며든 빛이 침대를 서늘하게 가로질렀다.
바랑가루 와프(Barangaroo wharf) 선창가 팝에서 취객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여태 들린다. 은주는 목재 방바닥을 살살 딛으며 복도로 걸어 나왔다. 옆방 인호 방문에 살짝 귀를 대 보았다. 방문 도어록을 돌렸다. 잠겨있지 않은 문을 열고 은주는 고개를 빼꼼히 안을 들여다 봤다. 방에는 작은 스탠드 불빛이 켜져 있었고 인호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방안은 고요했다. 인호 방 옆 사시미 담당 민우 방에도 가볼까, 생각하다가 은주는 그만 방으로 돌아왔다.
시드니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조오지 스트리트에서 큐비비 빌딩을 지나 바닷가 쪽으로 꺾어지면 어스킨빌 스트리트이다. 거리 입구에는 살구색 삼 층 빌딩 셋이 나란히 서 있다. 그중 첫 번째 빌딩 아래층은 수시 가게이고 꼭대기 층은 좁은 복도를 끼고 방 셋이 나란히 붙어있다. 전에는 허드레 살림 창고이던 방 들을 워홀러들 (Working Holiday Visa Student)이 몰려온 지난해부터 직원들 숙소로 쓰고 있다. 매캐하고 몽롱한 냄새, 가구래야 에보리진이 썼음 직한 투박한, 오래된 옷장 하나와 작은 책상과 의자, 키가 큰 사람은 발이 침대 밖으로 나오는 침대가 전부이다. 처음 왔을때는 벽 쪽에 침대가 하나 더 있었다. 코를 고는 홀서빙 여직원이 살고 있었고, 천정을 반으로 나눠 길게 쳐진 커튼을 경계로 방을 공유했다. 굴속 같은 방에서 그나마 두툼한 목제 창틀 유리를 통해 하버 브리지와 바다가 보이는게 은주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워홀러로 시드니에 처음 온 건 대학교 졸업을 일 년 앞 두고 후배 은혜와 함께였다. 은주는 키 165cm, 골격이 작고 호리호리하고 웃으면 볼에 보조개가 피어 학생들 사이에서 탤런트를 해도 될 비주얼이라고 불렸다. 은주는 그런 자신의 외모에 은근 우쭐해져 쉽게 일자리를 구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툰 영어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시내 한식당 주방보조, 허드렛일이 고작이었다. 지금의 롤메이커가 된 것은 출국하기 전부터 열심히 영어를 준비 했던 은혜 덕분이었다.
은주는 잠이 엉겨 붙어있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유리창에는 아직 어둠이 묻어 있었다. 시계는 새벽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은주는 ‘도쿄 수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내려와 부엌 앞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 내려온 건지 인호가 가스웍 한쪽에 튀김 냄비에 칼라마리 링, 크랩, 새우, 만두를 튀기고 있었다, 다른 편에는 프라이팬에 테리야키 소스를 부어 치킨롤에 넣을 닭가슴살을 볶고 있었다. 인호는 스무살 나이에 비해 체구가 작고 주방장으로 오른손을 많이 써서인지 한쪽 어깨가 약간 올라가 있다. 얼굴에 볶은 참깨 같은 주근깨가 많다. 인호의 볼품없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진주는 평소 인호와 말을 섞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젯밤에 도어록 돌린게 인호였을까? ‘아닐거야, 저 주제에 무슨.’
“일찍 내려왔네!” 은주는 전날 준비해둔 수시 재료 들을 냉장고에서 꺼내며 인호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마감 무렵 오이, 당근, 양상추 등을 썰어서 준비해두었던 야체 박스를 든 은주를 은호는 슬쩍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하고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은주는 수시 재료통을
허리춤까지 높이인 스테인리스스틸 벤치 톱 위로 놓았다. 종잇장처럼 얇게 썬 연어는 트레이 아랫부분을 들쳐 물기가 있나 확인 후 니기리 수시 머신(Nigiri Sushi Machine) 옆에 두었다. 은주는 야체 박스 센통을 마저 꺼내놓고 꺼내놓고, 아보카도 손질을 시작했다. 아보카도를 손바닥에 놓고 반으로 금을 그은 후 엇박자로 돌렸다. 가운데 박힌 도톰한 갈색 씨를 제거 후 얇게 저며 아보카도 통에 넣어 야채 박스들 곁에 가지런히 진열했다. 아보카도의 부드러운 초록빛 과육이 유난히 예뻐서 은주는 씨앗을 버리려다 손에 쥐어 본다. 단단하고 동그란 씨앗의 촉감,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꽉 쥐었다. 은주는 소바닥을 펴 아보카도 씨앗을 내려다 보았다. 씨앗은 그대로였고 손바닥에는 동그란 자국이 남았다.
키가 작고 뚱뚱한 사시미담당 민우가 두툼하고 큰 연어 필랫을 넓은 도마 위에 펴놓고 사시미를 뜨고 있었다. 왼손 검지로 연어 생선 가시 결을 피해 사시미 뜨는데 집중하고 있는 민우, 사시미 뜨는 솜씨가 달인인 민우는 니기리 컷, 사시미 컷, 롤 컷을 사시미 칼로 똑같은 두께와 크기로 빠르게 자를 줄 안다. 민우는 일자리를 옯겨도 길고 샤프한 큰 사시미 칼과 중간 크기, 그리고 검지 손가락 길이의 작은 사시미 칼 3자루를 분신처럼 꼭 지니고 다닌다. 민우에게 ‘간밤에 너였어?’ 하려다 잘못 건들었다가는 몽둥이처럼 단단한 민우 팔에 한 대 얻어맞지 싶어 그만두었다. 어깨가 넓고 셔츠 밖으로 근육 실루엣이 드러난 사시미도 워홀러로, 오사장이 시급을 더 올려 주겠다는 제안에 옮겨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은주는 전날 미리 타이머를 맞춰 앉혀둔 수시밥을 양푼에 퍼서 초대리를 섞어 식힌 다음, 은주는쌀을 씻어 다시 밥을 안쳤다. 얇게 저민 진분홍빛 살몬팩을 덮은 랩을 제거하고, 양념된 수시 밥을 김 위에 펴서 수시롤을 만들기 시작했다. 밥은 다시마 우린 물에 식초, 설탕, 소금이 적당하게 섞인 초대리에 버무려 식혀둔 것이다. 니기리 기계를 통과해 한 잎 크기로 뭉쳐져 나오는 밥 위에 살몬, 치킨, 비프 등을 놓고 싼다음, 야체를 곁들여 네모난 투명 팩에 담아 홀에 있는 수시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진열했다.
테이블을 닦으며 오픈 준비를 하고 있던 홀서빙 경식이 허리를 펴고 은주에게 ‘굳모닝’ 하며 알은채를 했다. 영어가 약한 경식은 처음 홀서빙 하던 날은 얼굴이 빨개지고 땀까지 흘렸다. 웃으면 눈가에 잔주름이 많은 그는 멀리서는 나이 들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스무살이라는 실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인다. 경식은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편이었다. 은주에게 무슨일이 있을때면 가장 먼저 경식이 마음을 써줬다.
은주는 간밤에 찾아온 사람을 찾는 일을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그러잖아도 걸핏하면 이직하려는 직원 들로 날카로운 오사장의 미운털이 자신에게 박힐 게 뻔해서이다. 지난주만 해도 핫 푸드를 도맡아 하는 인호가 시간당 2달러씩 더 준다는 말에 다른 수시 가게로 갈 뻔했고, 사시미 담당 민우도 기차역 건너 수시 트레인에서 시급을 주급으로 바꿔 더 준다는 제안에 오 사장에게 이 주일 노티스를 주어, 넋이 나간 오사장이 시급을 원하는 만큼씩 올려 주고 붙들었다. 한 시간에 수시 40롤을 마는 롤메이커, 능숙한 사시미 담당, 경력 있는 핫 푸드를 구한다는 것은 무척 힘들어서다. 홀서빙 여직원은 시급이 낮아 자주 바뀌고 구하기도 쉬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더운 여름에도 불판 앞에서 핫 푸드를 하는 인호 웨이지가 가장 높다. 은주는 홀로 나가 창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창밖으로 분주한 광경이 펼쳐진다.
가게앞 어스킨빌 스트리트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맨리비치 선착장에서 아침 7시 훼리를 타고 시내로 건너오는 출근객 들로 북적댄다. 도쿄 수시는 요즈음 들어 커피와 아침 식사로 수시 팩을 테이커 웨이 해가는 손님 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때 가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손님에 은주는 서둘러 주방으로 걸어갔다.
*
재판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대머리 도쿄 수시 오사장이 민원 도우미 법원 (Ombudsman) 문을 밀고 조오지 스트리트로 나온 시간은 낮 11시 30분이었다. 전철 탑승 플랫폼으로 올라가자 한 무리의 동양 젊은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워홀러 들로 보였다. 그들을 보는 오사장의 마음이 바위처럼 무거웠다.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그들 눈에 띄지 않게 얼른 기차에 올랐다. 레드펀 역사 밖으로 나가자 한 무리의 중국인 들이 가이드를 따라 유치원생 들처럼 조잘거리면서 걸어가는 게 눈에 띄었다. 그 뒤에 또 한 무리의 아시안 젊은 이들이 장난을 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오사장은 재빨리 가까운 카페 앞 비치파라솔 밑으로 몸을 숨겼다. 방금 법정에서 본 은혜와 친구들은 떠드느라 카페 앞을 지나면서도 오 사장 쪽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은혜를 자세히 보려고 자라목을 뺐다. 맙소사, 오사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은혜라고 생각했던 아가씨는 은혜처럼 보였는데 은혜는 아니었다.
관광객들로 시끄럽게 법석이는 앨버트 광장을 지나 오사장이 통유리 가게 문을 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기계 앞에 줄을 선 손님들로 가게 안이 꽉 매워 있었다. 여직원은 바퀴 달린 인간처럼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은혜는 출근 안 했니 ?” 오후 타임 출근 시간 1시간이나 훨씬 지나 있었다.
“네, 전화도 안 받고, 연락이 안 되네요 ”
오사장은 카운터로 가서 날렵하게 카운터 일을 봤다. 여직원 K 도 손님들이 흩트려놓고 간 의자들을 바르게 놓고 테이블 위를 훔치며, 혼자 동분서주 방방 뛰었다. 은혜도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K처럼 일을 잘했다. 적어도 그날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던 은혜가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았다. 결근은커녕 지각 한 번 안했던 은혜다. 그날따라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였고 노르베지언(Norwegian) 초 대형 크루즈가 시드니 항에 정박하면서 거리마다 관광객이 넘쳐났다. 은혜가 있어도 일손이 모자랄 판에 오 사장은 홀 직원 하나와 어떻게 점심 장사를 했는지 혼이 반쯤 나가 버렸다. 직원 한 명을 더 출근하도록 조치하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본 시계는 오후 2시였다. 부산하게 가게일을 한참 하고 나니 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간신히 한숨을 돌리며 은혜에게 급히 전화했지만, 삐, 하고 고막을 찢는 소리를 내며 메시지 음성녹음으로 넘어갔다.
오사장은 꼼꼼히 챙겨보지 않은 게 잘못이라 여기고 이다음 직원 채용 때는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지 하고 거듭 다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혜의 갑작스러운 결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웬일이지?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할 일이지 ?’ 오사장은 자꾸 궁금해졌다. 갑자기 한국으로 간 건가? 아니면 말도 없이 다른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건가? 주택 한 채에 4명의 워홀러 들이 같이 지낸다고 하던데, 플렛 메이트 연락처라도 받아두는 건데 싶었다. 오사장은 홀 의자를 정리하면서 아무 연락도 없는 은혜에게 스멀스멀 화가 났다.
은혜가 가게 일을 시작한 건 석 달쯤 됐다. 일자리를 구한다며 은혜가 가게로 들어섰을 때, 오사장은 아주 오래전부터 은혜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배꼽티에 구멍이 숭숭 난 청바지 차림도 아닌, 단정한 짧은 반소매 흰 티셔츠 청바지 차림에 호리호리하게 큰 키, 무엇보다 온화하게 웃는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오사장은 첫눈에 은혜가 마음에 들었다.
직원 한 명이 더 출근하자마자 오사장은 흰색과 푸른색의 줄무늬 야외 매트를 들고 가게 옆 공원으로 갔다. 40도가 넘는 낮 기온에 스페인 마드리드 도시 사람 들이 대낮에 가게 문들을 닫고 그늘을 찾아가 시에스타 (Siesta) 시간을, 낮잠을 즐기듯 쉬었다. 오사장도 우뚝 솟은 유칼립투스 고목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누워 낮잠을 청해봤다. 쉼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속이 시끄럽게 부글거렸다. ‘못 오면 전화라도 할 일이지? 이 무슨 근무태도인가.’ 오사장은 눈을 질끈감고 애써 화를 꾹꾹 눌렀다. 오사장은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유칼립투스 나무 건너 휑한 보도블록 위에 밟히지 않은 보랏빛 자카란다 꽃잎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꽃분홍 제라늄 너머로는 거다란 연못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게로 돌아가자 은혜 플렛 메이트가 오사장을 보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뛰어왔다.
”사장님, 은혜가 병원에 실려 갔어요. 은혜가 꼭 연락을 드리란 말을 한 뒤 갑자기 의식을 잃었어요. 사장님 전화번호를 몰라서 직접 찾아왔어요.“
“이럴 수가.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니. 미안해요. 어디가 어떻게 아파 쓰러진 건지 말해 봐요.”
“깨어났으니 곧 병원에서 나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직원 둘에게 가게 마감을 부탁하고 은혜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은혜를 만날 수 없었다. 환자 접수 창구에서 보호자라 해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담당 의사는 은혜가 한국에서 3개월 전에 두개골 수술을 받았고, 회복기 동안 시드니로 휴양차 여행 온 것이라 했다. 처음 본 은혜는 착하고 예뻐 보였다. 외양만 보고 채용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게에서 쓰러져 죽기라고 했다면 어떠했겠나, 오사장은 등에 마른 땀이 흘렀다.
며칠 후, 귀국하였으리라 믿었던 은혜가 수시 가게에 나타났다. 핼쑥해진 얼굴에 희미하게 웃는 은혜의 모습에 오사장은 그래도 반가웠다. 은혜는 다시 근무하고 싶다고 했다. 이를 어쩌나!.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은혜가 일하던 빈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 두었고, 더는 직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게 내에서 쓰러지는 일이 일어날까 봐 오사장은 겁부터 났다. 부드럽게 엄마에게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은혜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완강하게 한국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만 거푸 말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짐작해 보려고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은혜가 가게에 다녀간 일주일쯤 후, 예닐곱 명의 워킹홀리데이 여자들로 보이는 젊은 여자들과 떼를 지어 은혜가 가게에 나타났다. 간다는 인사차 들린 것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여자 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었고, 맨 앞에선 긴 생머리 여자는 전에 일하고 싶다고 이력서를 들고 와서 사정하던 워홀러였다. 단정하지 않은 머릿결 관리도 그랬거니와 운동을 많이 한 큰 체격이 수시가게 홀서빙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에서 오사장은 거절했던 기억이 났다. 거절당한 분풀이일까?, 몽둥이를 손에 들었다면 영락없는 조폭 두목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꼴이었다.
워홀러 두목은 왼손을 허리에 얻고, 중대한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깔고, 은혜를 계속 일하게 해주거나, 아니면 3개월 치 주급을 현금으로 당장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에 고발하여 가게 문을 닫게 하겠다고. 오사장은 속으로 더럭 겁이 났다. 일하게 해줄 수도, 돈을 줄 수도 없다고 버티었다. 은혜도 말을 보태려 했지만 그들의 말을 더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같이 온 여자 중의 하나가 은혜가 들고 온 가게 유니폼을 가게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밟으며 퇴직금을 달라고 거칠게 행동했다. 오사장은 심장이 벌떡거렸다. 목까지 심장의 고동 소리가 차올랐다. 어떻게 할까. 오사장은 순간 경찰을 불러야지 하다가 참았다. 그들을 신고하면 오히려 일이 커질 것 같아서였다. 쟤네들의 말마따나 직원들 세금을 신고하지 않고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한 자신의 잘못이 있기에 문제를 확대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이 뒷머리를 타고 올랐다. 다행히 직원 K가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그날의 소동을 종결시켰다. 그들이 한 말들이 조각배처럼 둥둥 떠다녔다. 정말 옴부즈맨에 신고하면 어쩌나!
얼마전 들은 김씨 아저씨 이야기가 떠 올랐다. 워홀러 남자와 여자가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해서 둘 다 채용했다고 했다. 아침 10시쯤 카페에 들렀더니, 새벽에 차를 대비해두고 워홀러 둘이서 커피기계며 믹서기, 부엌 기구를 모두를 싹 차에 싣고, 소형 금고는 통째로 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하던 김 씨 아저씨. 경찰에 의뢰 수소문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고했다.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서로의 합의로 시작한 고용 관계가 일방적 약속 파기에 이어 고발로 이어지는 사례가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한국에 귀국한 아르바이트생이 이메일로 옴부즈맨에 고발하여 3년 치 차액 임금과 벌금을 지급하게 되었고, 또 멜버른의 어떤 수시 가게는 6명의 아르바이트생 최저임금 이하 지급으로 고발되어 12만 불 벌금을 통고받았다고도 했다.
은혜와 그 패들이 다녀간 열흘쯤 뒤, 옴부즈맨 (민원도우미 법원)에서 소환장이 날아왔다. 내용인즉 부당해고라 했다. 은혜가 고발한 것이었다. 오사장은 이를 어쩌나 싶었다. 은혜 뿐만이 아니라 가게 운영 시작부터 지난 2년 동안 워홀로들 세금 신고를 안 했기 때문이다. 현금으로 주급을 주었기에 영수증도 없었다. 불법이었으나, 대부분 워홀러 들이 연말 정산 세금 신고를 안 하고 귀국하였기에 괜찮았다.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옴부즈맨에서 점검하러 올 때 지난 2년 동안 지급한 임금 영수증도 없으니 말이다. 미지급 최저임금이 한꺼번에 페널티가 적용되어 쏟아지고, 앞으로도 계속 옴부즈맨 감시를 받을 것 생각하니 오사장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법원 출두 명령서 날짜는 꼬박꼬박 다가왔다. 거리는 한여름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쇼핑 센터는 가게마다 쇼핑객 들로 붐볐다. 텅 빈 법원 안에는 오사장과 은혜 둘 뿐이었다, 배심원도 방청객도 없었다. 그는 긴 나무 의자들이 놓인 홀 중앙 복도를 걸어가 앞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옴부즈맨 판사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오사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엄청난 벌이 머리 위로 쏟아질 거라 각오하고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이름이 호명되고 판사 앞으로 나갔다. 소장 내용을 눈으로 다시 읽고 난 판사가 이름과 사는 주소를 확인했다.
판사는 오사장과 은혜,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두고 부당해고를 한 이유를 오 사장에게 물었다. 순간 가슴이 쿵쾅댔다, 그는 준비했던 대답을 했다. 직원이었던 은혜가 두개골 수술 3개월 후 한국에서 호주로 왔고, 채용 당시 수술에 관하여 전혀 아무런 이야기 한 바 없었고, 플렛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은혜가 입원해 있었던 병원 주소, 담당 의사 이름을 판사에게 건넸다. 이윽고 판사의 눈이 야릇하게 반짝였다.
의사 소견서를 받아 일주일 이내에 호주를 떠나라는 판사의 선고를 미라는 따를까?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오사장이 판사에게 비행깃값으로 $500을 은혜에게 도네이션 하겠다고 한것은 그간 들추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숄더백을 한번 추겨 올린 후, 멀어져 가는 은혜 뒷모습을 오사장은 멀뚱히 지켜봤다.
*
부산한 오전 근무가 웬만큼 마무리되면 직원 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휴식 시간을 즐긴다. 바닷바람이 솔솔 부는 가게 뒷마당에는 낮은 목제 울타리가 쳐져 있고, 두 개의 우람한 쓰레기통 옆 그늘진 마당 한쪽에 죽은 나뭇잎들을 매단 유칼립투스 나무가 서 있다. 바람이 일면 은빛 잎들이 흔들렸다. 직원들 가운데 흡연자들이 즐겨 찿는 곳이다. 의자도 두어개 있고, 재떨이도 있고, 외벽에 등도 하나 달려있다. 정원이라 부르기엔 단출한 화단에 납작 엎드린 다육식물 들이 자라고 있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시미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다. 원래 창고로 사용하다가 여자들만 있는 휴게실이 불편하다며 조리장 혼자 간이 침대를 두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직원 중에 거기에 들어가 본 사람은 없었다. 사시미가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영양사가 튀어나왔고, 그 바람에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되었다. 그는 단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다. 영양사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였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영양사는 머리 끈을 다시 묶고 단정하게 매만진 뒤 가운 단추를 채웠다. 단추를 채우는 영양사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사시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담배를 피우고, 핸드폰 메시지 들을 확인하고, 가게 밖에 나가서 간단한 볼일을 보기도 하는 브릭 시간은 밤 9시까지 계속되는 일의 에너지 재충전 시간이다. 사시미가 재킷을 팔에 걸치고 나가면서 은주에게 손 키스를 던졌다. 그녀는 미소와 목례를 함께 보냈다.
교민지 신문을 펴든 인호가 물에 젖은 솜처럼 철퍼덕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인호 말인즉 지금부터 이민법이 바뀌고, 워홀러들에게 영주권 발급이 불가라 했다. 모두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얼굴을 쳐들고 하얀 플라스틱 등의자에 누워 햇볕을 즐기고 있던 은주가 벌떡 일어났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새우처럼 허리를 둥그렇게 말고 앉아 있는 인호에게 은주가 빵만 남은 햄버거를 휴지통에 던진 뒤 재빨리 다가갔다. 양손을 인호 어깨에 얹고 토닥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 중 은주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됐다. 인호는 시골 장터 국밥집 둘째 아들로, 영주권을 받기 위해 시드니에서 지난해 요리학교 2년을 마쳤다고 했다, 영주권 신청에 필요한 영어 점수 IELTS 6.0을 받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있으며, 지금 457 비자(스폰서쉽 비자)로 가게주인 오사장이 소득세와 연금을 매월 세무서에 지불해 주고 있다고 했다. 457 비자를 흔히들 노예 비자라고 한다. 가게주인은 영주권 신청 해주는 대신 저렴한 인건비로 부려 먹고 제대로 대우를 안 해줘서이다.
앞으로 일 년만 더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근무를 계속할 경우 영주권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더 이상 시드니 체류도 할 수 없어 떠나야 한다며 인호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번 뒤집히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바퀴벌레처럼 까부라져 있는 인호를 부추겨 홀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혔다. 눈물을 훔쳐주고, 다독여주었다. 알수 없는 사랑이 은주 가슴에 차올랐다.
어딘가 망가지는 소리, 깨지기 쉬운 것들이 기어코 깨지는 소리, 그건 인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은주도 그렇고, 모든 워홀러 들이 그랬다. 은주 역시 워홀러 들의 로망인 영주권 신청해 보려 영어 점수 아이엘츠(IELTS) 6.0은 지난 학기에 따 두고, 이브닝 코스로 요리학교 2년째 다니는 중이다. 돌아가야 한다니! 불현듯 눈앞에 생각고 싶지 않은 방배동 아파트가 떠 올랐다. 돌아가기가 정말 싫었다. 거실은 꽤 넓지만 은주방은 계단을 몇 개 올라가야 하는 천장 아래 다락방 이었다. 싱글침대와 키 높이의 옷장, 앉은뱅이책상이 있는 은주 방에서 어쩌다 새벽에 잠이 깨면 아래층에서 들리는 새 아빠와 엄마의 숨죽인 괴성에 귀를 막았다. 그때마다 엄마의 품위와 그녀의 근본이 시궁창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었다.
“에이 참 미치겠네” 사시미가 투덜대며 뒷마당에 나타났다. 듬성듬성 놓인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담배를 꼬나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사시미는 전문학교 1년 마치고 워홀러로 시드니로 와서 1년 더 체류하려고 농장에서 6개월 농장 일을 했다. 벌에 쏘이고 날아드는 날파리들 쫓으려 낮에도 모기향을 피우는, 땡볕 감 농장에서 감을 따 박스에 크기별로 담아, 포장 후 트럭에 싣는 일을 했다.
낮에도 개지 않는 뭉쳐진 담요가 여기저기 흩어진, 방 하나에 메트리스 4개씩 깔린 워홀러 합숙소는 노숙자들 쉼터를 닮았다. 농장 일꾼 들이 가득 쑤셔 넣은 작업복 들로 세탁기는 자주 멈췄다. 택배로 라면을 시드니에 있는 한국식품 점으로 주문해야 했었다.
동생 학비와 막내 병원비로 돈을 계속 송금했던 사시미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 조차 없었다. 꿍쳐 둔 비상금을 털어 다 쓰고, 원룸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근무하는 수시 가게 주인에게서 가불해서 지불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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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스퀘어 건너편 KFC 이층에서 인호와 만나기로 한 날 인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은주는 벽에 걸린 시계를 자주 올려다 봤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고 괜히 허리를 한번 돌려보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까무룩 잠이 들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인호였다. 막상 전화가 오자 받고 싶지 않았다. 벨은 한참을 울리다 끊어졌다. 이어서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미안, 나 지금 뉴질랜드로가….’ 액상에 뜬 메시지를 본 은주, 화들짝 놀랐다.
‘송죽’ 일식당, 대머리가 약간 벗겨진 최 사장은 그러잖아도 일이 익숙해지면 직원 들이 호주로 건너가 버려 직원 구하기가 힘들던 차에 인호가 반가웠다. 최 사장은 뉴질랜드 영주권을 받는데 필요한 스폰서 쉽(457 비자)을 서주었다. 오래 묵은 먼지처럼 의욕이라곤 없어 보이던 인호의 눈이 반짝이고, 참새 그물에 기러기 걸리는 행운이었다. 호주, 영국, 뉴질랜드는 영연방국으로 영주권 소유자는 어느 나라에서나 거주 할수 있다.
뉴질랜드에 도착하여 처음 얼마동안 인호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국인들은 볼수 없고, 짙은 갈색 피부에 체격이 크고 목과 어께에 살이 많은 마오리족들이 어께에 삼잎으로 엮어만든 망토를 걸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녔다, 사람들은 저녁 10시면 침실에 들었다. 도시의 밤은 고요했다.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는 정상 고도를 잡고 구름 위로 중력을 받아 눈 위를 미끄러지듯 요동 없이 편안하게 날아가고 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인호는 끝없이 펼쳐진 구름을 내다 보다 지긋이 눈을 감고 시드니를, 은주 얼굴을 떠올려 본다. 오클랜드에서 은주와의 만남은 인호에게 없어서는 아니될 가믐에 단비였다. 운전석 유리창을 끝까지 내리고, 양떼들이 풀을 뜯는 초원을 가로질러 야호를 외치며 미니카 토요타 야리스로 달렸다. 땅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유황 온천수가 하늘로 치솟는 로토루아 간헐천을 가고, 모코이아 섬이 마주 보이는 야외 온천장에 몸을 담기도 했다. 둘이서. 손바닥만 한 비행기 창에 펼쳐진 파노라마에 몰입한 채 그는 강렬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시드니 도착하여 인호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도쿄 스시’ 였다. 시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문이 닫혔거나, 빈 가게 들이 많았다, 직원들을 구하지 못해서 수시 가게에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사람 들을 채용한 수시 가게가 많았다. 시내는 여전히 관광객 들로 붐볐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가게 앞 넓은 조오지 스트리트에 트럼이 생겨 땡땡거리며 다니고, 시내 중심은 보행 자들만 다닐 수 있게 된 것 이외에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인호는 도꾜 수시에서 처음 은주를 만났다.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은주의 빠른 손놀림에 인호는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때의 마음으로부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감히 속을 내보이지도 못하고, 밤중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은주 방문 고리를 돌렸던, 5년 전 그때 일이 떠 올라 인호는 혼자 웃었다.
2024년 2월 16일부터 3월 3일까지 글로벌 성 소수자 ‘마디그라 축제’ 가 있는 날이다. 시내, 본다이 비치, 하이드 파크, 옥스퍼드 스트릿과 플린더시 스트릿 온 시내가 휘황찬란했다. 세계에서 가장 즐겁고 화려한 LGBTQI(Lesbian, Gay,Bisexual,Tran gender, Queer intersex) 퍼레이드로, 올해 제46회 마디그라 축제는 오토바이 행렬 과 원주민 그룹이 선두에 나서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최대하이라이트인 ‘ 시가행진’ 행사에 참여한 동성 애들과 동성 애들을 찬성하는 시내 행렬 인파 1만 2000여명이 총 200개 그룹으로 나뉘어 행진했다. 웃통을 벗고, 혀를 빼물고, 전통 마오리 하카(Haka) 춤을 추는 남자들, 수녀 복장을 한 할아버지, 피레이트 마스크를 쓴 영국 병정, 해골 마스크를 쓴 해적, 프렌치 파이 꽃을 귀에 꽂은 사모안 여자 들이 손목에 힘을 주어 깃발을 흔들며 뛰는데 뱃살과 젖가슴이 날개가 달린 듯 출렁댔다.
후줄근한 차림에 손차양한 은주가 축제 행렬이 지나는 대로변 구경꾼들 속에 섞여 있었다. 웃통을 벗었고, 뉴질랜드 마오리족 원주민 의상인 코로와이 삼잎치마를 걸친 사내가 행렬에서 빠져나와 군중 속에 서 있는 은주 손을 덥석 잡아 확 당기더니 어깨동무하고 마디그라 행렬 인파 속으로 끌어들였다. 화들짝 놀라 뒷걸음치는 은주, 사내는 블랙아이 마스크를 이마로 밀치며 “나야 나, 인호….” 솜을 잔뜩 넣은 쿠션처럼 살이 찌고, 퉁퉁한 체격으로 비대해진 인호가 수탉처럼 가슴을 크게 부풀린 채 외쳤다. 은주의 두 눈이 심봉사 첫 개안처럼 휘 번쩍 치켜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