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 여유 있는 ‘베이비부머들’, 가계재정 압박 상황서 사립학교 손주들 학비 지원
현재 호주의 각 연령층 가운데 재정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는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꼽힌다. 현재 은퇴를 했거나 준비 중인 이들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가장 많은 자본 이득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궈놓은 부는 자녀세대에 이어져 주택구입시 든든한 재정 후원자(bank of mum and dad)가 되어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금융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자율 상승과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가계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손주들의 사립학교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 사립학교 학비는 상당히 인상되었으며, 이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유명 사립학교에 두 자녀를 등록한 경우, 하이스쿨을 마치기까지 교육비로 100만 달러 이상의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시드니 기반의 자산관리 컨설팅 사인 ‘Independent Wealth Advice’의 앤디 다로크(Andy Darroch)씨는 높은 이자율로 저축과 투자에 대한 수익이 높아지면서 은퇴한 세대들이 손주들의 학비를 부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다로크씨는 “연금, 특히 산업 펀드는 놀라운 수익을 창출했고, 실제로 예상보다 많은 재정을 갖고 은퇴하는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면서 “그런 반면 사립학교 학비가 빠르게 인상되는 상황에서, 부채를 안고 있으며 현금 흐름이 제한되고 지출 능력이 부족한 X세대(베이비 부머 이후 세대)는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터스 힐(Hunters Hill)에 자리한 유명 사립학교 St Joseph’s College 대변인은 “학교 측에서는 누가 학생의 학비를 지불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없다”고 전제한 뒤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재정 지원을 통해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손주들이 하이스쿨을 졸업하기 원하는 조부모들이 증가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와룽가(Wahroonga) 소재 Knox Grammar School의 스콧 제임스(Scott James) 교장도 학비 외에 여행이나 기타 부수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조부모들이 부담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제임스 교장 또한 이야깃거리임을 전제로 “근래 학부모가 납부해야 하는 학비 외 기타 비용을 조부모가 부담하는 사례가 늘었으며, 아마도 나이 든 세대의 재정투자 방식 변화로 인해 이런 사례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패트리샤 에반스(Patricia Evans)씨는 가족, 특히 손주들의 학업을 돕고자 하는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은퇴자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게는 현재 취학 전 연령의 손주가 두명 있으며,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재정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마음을 굳힌 상태이다.

에반스씨는 “불행하게도 나는 14살 때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는데, 그것이 내가 평생 안고 온 슬픔이었다”며 “하지만 많은 독서를 통해 정규 교육에서 놓친 부분을 보충했다”고 말했다. 그런 아픔으로 가족의 교육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두 손주가 사립학교에 등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없었지만 어느 학교에 입학하든 전적으로 후원하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디와이(Dee Why)를 기반으로 재정 컨설팅을 제공하는 마이클 라달리(Michael Radalj)씨는 손주가 있는 은퇴 세대의 경우 자신이 졸업한 사립학교에 대해 긴 세월 동안 애착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 자녀나 손주를 보내고 싶어하는 패턴을 따른다”는 라달리씨는 “보통 3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70대의 은퇴자들은 여행을 다니는 것에도 지친 이들로, 그럼에도 그들의 은행 계좌에는 계속 금융자산이 쌓이기에 가족을 위한 지출에 마음을 열고 있다”고 덧붙였다.
멜번에 본사를 둔 자산관리 회사 ‘Wattle Partners’의 제이미 넴사스(Jamie Nemtsas)씨는 자사 고객의 약 70%(은퇴 연령의)가 손주들의 학비를 대신 지불해주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은퇴한 투자 고객과 이야기를 하면 대개는 먼저 손주들의 학비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지난달(4월) 공개된 학교 금융 서비스 그룹 ‘EdStart’ 보고서에 따르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가계 재정 악화 속에서 2023학년도 사립학교 학비 체납 비율은 32%에 달했다. 그럼에도 자녀의 사립학교 등록을 원하는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보고서는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mortgage) 부채를 상환하는 가계들이 특히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60만 달러, 20년 상환의 모기지를 안고 있는 가계의 연간 상환액은 고정금리 상태의 3만6,000달러에서 현재 변동금리에 따라 5만8,000달러로 증가했다.
통계청(ABS)이 산정한 교육 부문 인플레이션은 2022년 3월부터 올해 3월 사이 14.8% 상승하는 등 자녀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은 급격히 증가했다.
또 다른 재정 고문 레베카 프리차드(Rebecca Pritchard)씨도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뿐 아니라 점차 더 많은 은퇴자들이 가족의 교육 및 기타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해 주고 싶어한다”는 프리차드씨는 “이들 가운데는 가족의 주택 보증금, 대출 보증을 제공하거나 어린 손주의 학비를 후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ABS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녀를 사립학교 또는 가톨릭 재단 학교에 등록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중간 소득 계층에서도 자녀가 공립학교에 다니는 비율은 더 높아졌다. 2012년을 기준으로 10만4,0000달러에서 18만2,000달러의 연소득을 올리는 가계의 학생 가운데 공립학교 등록 비율은 57%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22년, 그 비율은 64%로 증가했다. 사립학교 등록에 대한 욕구가 있지만 재정적인 문제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