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문방(鬼門方)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녀는 두 집의 중간 벽을 허물어 한 채로 만든 커다란 단독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조용한데다 내부의 짜임새도 좋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안팎을 둘러보니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집이었다. 그런데 왠지 석연찮은 곳이 있었다. 큰길가에 인접한 TV 룸과 그와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오래된 세탁실 겸 화장실이 그것이었다. 이 두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왠지 차갑고 정체된 공기가 두 뺨에 와 닿는듯하여 나도 모르게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지인은 원래 깔끔하고 집을 가꾸는 사람이라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왜 이처럼 음침한 기분이 드는지 궁금했다.
“평소에 이곳들을 자주 사용하시나요?” 하고 물었더니 지인의 대답이 예상 그대로다. TV 룸은 TV와 컴퓨터, 소파 등을 고루 갖추어놓았으나 아이들이 보름에 한 번이나 사용할까 말까 하고 남편도 반드시 컴퓨터를 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방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욕실과 세탁실도 사정이 비슷했다. 세탁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드나들고, 화장실은 몇 년 전 주방 옆에 새로 만든 욕실 겸 화장실을 쓰느라 아예 사용을 중지했단다. “조만간 두 군데 다 허물고 개조를 할까 생각 중이에요.”라고 지인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 이에 필자는 바로 귀문 방위의 폐해를 떠올렸다. 우리 선조들이 가장 피했던 귀문방(귀신이 드나드는 방향 또는 부정적인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방위)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동양에는 동서남북의 사정방(四正方)과 그 중간을 뜻하는 사움(四隅: 동북, 동남, 서남, 서북)이라는 팔방의 개념이 있었다. 그리고 귀문 방위라 하여 이 중 동북과 서남 방향을 경계하였다. 귀문방은 계절과 시간에도 적용되는데 사계의 중간인 환절기가 그것이다. 바람의 변화나 온도 차이 때문에 감기나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으로는 여름 철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3시경이며 겨울엔 온도가 가장 낮은 새벽 3시경이 귀문방이다. 딱히 여름이나 겨울이 아니라도 오후 3시는 노곤해서 일의 능률이 가장 떨어질 만하고 새벽 3시는 가장 깊이 잠들어 무방비 상태가 되는 시간대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취약해지는 이 귀문방에 부정하거나 불결한 장소를 배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과 부엌이다. 집 안에서 불결한 장소라면 당연히 화장실이었다. 가령 화장실이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북동쪽에 있다면, 한랭한 북동풍이 화장실을 통과하면서 악취가 퍼지고 차가운 공기가 방 안에 머물게 되어 인체에 좋을 리 없다. 그리하여 이 북동쪽은 특히 아기들에게 액운을 가져오는 매우 불길한 방향으로 보았던 것이다. 두 번째로, 남서쪽은 오후 3시쯤이면 햇볕이 뜨거워져 습기가 발생하고 음식이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 요즘처럼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부엌이 남서쪽에 있으면 필히 그런 일들이 발생했을 것이고 부인네들 역시 나른하여 집중력이 저하되므로 화재 등 안전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남서풍의 영향으로 온 집안에 연기와 요리 냄새가 꽉 차는 것을 경계한 점도 있다.
요컨대 우리 선조들은 물과 관련된 공간은 일종의 사기가 쉽게 침범하는 곳으로 보았는데 이는 한의학의 이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요인이 ‘한寒’과 ‘습濕’이므로 집 안에 늘 한습한 기운이 서리는 화장실과 부엌이 잘못 배치되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필히 건강을 지킬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는 사실이다. 물론 호주는 이러한 믿음을 중시하는 동양과 달리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 귀문방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특별한 문제점이 없다면 그저 화장실은 자주 환기를 시키고 은은한 향을 피워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부엌이 햇볕이 잘 드는 방향에 있다면 음식물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만으로도 조상들의 지혜를 실천함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몇년 전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기거하는 공저(公邸)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담이 있었다. 귀문 논리로 해석하자면 일왕이 머무는 고쿄(皇居)를 기준으로 총리의 공저가 남서쪽의 귀문방에 자리하기 때문에 그런 소동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태련 /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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