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얼마 전부터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을 합성한 신조어로 말 그대로 ‘지옥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이란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로 불리는 현대의 청년층이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담아 만들어낸 말이라는데 한 번의 쓴웃음으로 흘려듣기엔 못내 찜찜한 감이 있다. 개인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의 신화가 서서히 사라지는 대신 소위 ‘금수저’ 내지 ‘남의 수저’ 등으로 표현되는 서열사회에 대한 절망 어린 인식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강해져 가는 것 같다. 취업난이나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한 위치를 몇 년간 전전한 청년들이라면 이처럼 비판적인 시각으로 돌아설 만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고, 국가 역시 이를 방관하는 불공정한 사회라는 그들의 인식이 결코 그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짧은 식견으론 바로 지금이 온고지신의 미덕이 필요한 때인 것같다. 본시 세상이란 돌고 도는 것이기에 분명 과거에도 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인류의 기원부터 쭈욱 훑다 보면 비슷한 상황이 무한 반복되어 왔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서열 사회의 개념도 그러하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함께 영구 소멸된 줄 알았건만 이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비장하게 부활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신분과 서열의 굴레는 영원하다. 언젠가 필자는 우연히 조선의 신분제와 그에 따른 인구 비율에 대한 자료를 접한 적이 있다. 경국대전에는 ‘양천제’라 하여 백성을 2개의 계급으로 나누었다. 즉 양인과 천민인데 원칙적으로 이외에는 없었다. 양인은 임금 이하 왕실 가족과 종친들, 양반이 주류를 이루는 관료집단, 일반농민, 상인, 수공업자들로 당시에는 ‘사농공상’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았다. 반면 천민은 팔천, 즉 소위 8가지의 천한 직종을 가진 이들이었다. 노비, 승려, 무당, 백정, 광대, 창기, 상여꾼, 공장이 그들이다.
이들을 다시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으로 나누자면 전자는 양반과 중인이 되겠고 후자는 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가 해당된다. 언젠가 필자가 지인에게 조선 시대의 사농공상 및 천민의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될 것 같은가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필자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양반 및 중인이 10% 이내이며 나머지는 아마 각각 20%씩 차지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하고 오히려 반문해온다. 공평과 공정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우리는 늘 이처럼 균등한 배분과 수평적 사고에 익숙하다. 종적 신분제의 굴레에서 오는 한계나 아픔과는 꽤나 무관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한 법, 사실 양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5% 정도였다. 중인은 약 1-2%에 불과했다. 그 다음으로 농, 공, 상인이 총 25%에서 30%를 차지했다. 결국 나머지 70%에 육박하는 인구가 천민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뜨악해지는 수치가 아닌가? 편견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세상은 늘 뒤바뀌는 법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 국고가 쪼들리자 조정에서는 공명첩을 발급하게 되는데, 돈이나 곡식을 기부하는 사람에게 관직을 주는 시스템으로 일종의 국가공인 매관매직이었다. 조선후기에는 경제와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돈 많은 양민이 족보를 사는 일이 성행하여 조선 인구의 약 50%가 양반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즉 서열과 원칙이 무의미한 세상이 온 것인데 이는 현대에 더욱 심화되어가는 것 같다. 언젠가 필자는 인터넷 서핑 중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필자의 본관과 성씨를 검색하였더니 각종 사전에 문중의 시조와 역사, 그리고 항렬까지 자세히 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뿐인가. 광산김씨 대종회의 홈페이지와 전자족보까지 줄줄이 뜨는 것을 보자 진보와 발전의 극치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먼지가 하얗게 쌓인 서고의 족보는 이제 정말 곰팡내 나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재미있었던 것은 위키백과의 주요 인물란에 오른 이들이었다. 고려의 학자이자 <동국문감>의 저자인 김태현으로부터 조선의 김장생, 김만중, 김춘택 등 태반이 문신 관료였으며 이는 최근 김용옥 교수와 김황식 총리에 이르기까지 소위 ‘먹물’이라는 거의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약간 이색적인 인물이라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김수환 추기경 정도인데 이들은 20세기를 산 인물들이니 좀 너그럽게 봐주어도 될 듯하다. 그러나 한 세기를 넘어 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리스트는 코미디언 김병조, 탤런트 김용건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하정우로 끝을 맺었다. 여성은 단 2명으로, 한 사람은 숙종의 첫 번째 정비였던 인경왕후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배우 김아중씨였다. 인경왕후와 김아중씨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백과사전에 오른 것이다. 연예인이라면 조선시대엔 아마 광대로서 팔천 중 하나인데 실로 대단한 반전을 이룬 셈이다. 상전벽해의 진리는 21세기의 연예인들이 제대로 입증하였다.
세상이란 이처럼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다. 필자 스스로도 어떤 면에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야 할지 모른다. 의원이란 본시 사람의 몸을 만지는 중인의 직업이요, 명리학은 사대부들의 은밀한 학문이었으나 일제의 간섭을 거치며 저자거리의 미천한 잡술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 길을 개척해 왔으니 죽어 조상님들을 뵐 낯은 없을지라도 시대적 요구와 트렌드에는 나름대로 충실했던 것이다. (모친은 필자가 소싯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교사가 될 것을 강요하였다. 고작 서당 훈장이라니, 매우 조선시대스러운 사고방식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이 연예계 종사자라 하니 시대의 흐름을 감지한 보수적인 어르신들 역시 소위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이 인물란에 오르도록 눈 감아 주었을 것이다. 그래야 문중도 광고가 된다. 하니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론 어떤 인물들이 수퍼스타가 될지 예측 가능하다. 누누이 강조했지만 삼라만상은 ‘일정하고도 끝없는 순환과 반복’의 규칙 속에 움직인다.
사실 조선 초기는 약 5%의 양반이 95%의 양민과 천민을 착취한 극악무도한 왕조시대로, 그 제도 역시 상당히 낙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비단 조선만의 문제는 아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판도를 뒤집기 시작한 시점까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 세계가 거의 유사한 신분제를 유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통치이념을 세웠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을 단순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라고 치부한다면 이는 다소 국부적 시야에 갇힌 결과이며 차라리 전 인류가 공유하고 감당해 나아가야 할 난제라 보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라는 자조는, 현재는 물론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사회와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내려졌던 불명예스러운 평가이다. 서열과 착취를 통한 소수 집단의 번영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욕구와 본성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과 생명체엔 운명이 있다.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랩톱도, 지면을 빌려 준 이 신문도, 그리고 헬조선이 되어버린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정해진 운명이 있다. 호시절이 늘 계속되는 것이 아니듯 불행한 시절도 언젠가는 막을 내린다. 우연히 침체된 시기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큰 틀은 받아들이되 자족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온고지신이다.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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