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질병
최근 몇 년간 필자는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는 외국인 환자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가족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환자를 데려온 경우도 있었고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로부터 추천을 받아 필자를 찾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특이한 병증을 대할 때마다 필자는 관련 서적과 자료를 찾아가며 연구하는데 그 중 한의학이 잘 다루지 않는 정신계통이 가장 난해한 분야였다. 과거 심리적 질환으로 보았던 정신병은, 현재는 뇌의 생화학적 이상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가족력과 환경적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질환을 대할 때는 치료에 앞서 충분한 대화를 통해 환자들이 처한 상황이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끝내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필자는 주로 환자들의 동의를 얻어 그들의 사주를 확인한다. 환자들 스스로도 흥미로워 하지만 그들의 사주에 드러난 정신병리학적 요소를 거푸 발견할 때마다 서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오늘은 정신질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편중된 오행의 특성을 소개할까 한다. 오행이란 물론 사주를 이루는 목화토금수의 다섯 가지 기운이다. 사주팔자의 여덟 글자 내에 이 오행의 기운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빈번하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성격과 심리, 그리고 질병의 인자가 결정된다. 가령 목 기운은 인(仁)이다. 사주에 목 기운이 많은 사람은 대체로 명랑하고 인자하다. 동정심이 많고 창의력이 있어 누구에게나 쉽게 호감을 산다. 화 기운은 예(禮)로 표상된다. 윗사람을 깍듯이 대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말씨에도 품위가 있다. 토기는 신(信)이다. 한마디로 신용이 있다. 동업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파트너의 사주에 토기가 적절히 있는지 체크해 보는 편이 좋겠다. 금기는 의(義)이다. 의리가 있으면서도 서슬 퍼런 쇠의 기운 때문에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도와줄 땐 확실히 도와주지만 아니다 싶으면 철저히 가려낸다. 마지막으로 수의 기운은 지(智)이다. 정치인들의 사주엔 지략과 인내를 뜻하는 수기가 반드시 있다.
그렇다면 사주 상에서 이러한 오행의 기운들이 극단적으로 편중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목기가 넘쳐 거대 삼림이 형성되거나 화기가 거세어 불바다 같은 형국이 되어버린다면? 독자들도 예상하겠지만 사주의 주인공은 결코 원만할 수 없다. 치명적인 성격 결함을 갖게 된다. 가령 목기로 인해 명랑함이 지나치면 실없는 사람이 된다. 화기가 넘치면 거침없이 무례한 말을 토해내다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다. 토기가 태과하면 언뜻 보기엔 믿음직하지만 사실상 그 반대이며 동시에 고집불통이다. 금기가 심하면 잔인, 살벌하다. 형님, 아우 불러가며 의리를 다지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돌변하는 것이 금기가 가득한 사람들의 특징이다(한국에선 지난 십수 년간 이 금기의 남성들이 온갖 느와르 영화를 통해 우상화되었다). 여성들도 금기가 많으면 어딘지 모르게 괴팍하고 다가서기 어려운 기운이 감돈다. 수기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우울함이다. 우울증 환자들의 사주는 간명하기도 쉽다. 대개 칠흑처럼 깜깜한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형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필자가 예전에 잠시 알았던 한 지인은 목기 태과의 전형이었다. 그는 중국 선진에서 온 50대의 중의사로 침과 약, 두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였다. 그러나 타고난 실없음으로 인해 자신이 가진 모든 미덕과 장점을 공중분해 시켜버리는 기묘한 팔자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가 겪은 인생 대부분의 굴곡은 그의 성격적 단점과 제어 불가능한 입으로부터 기인된 것이었다. 그가 회고한 해프닝들 중 가장 필자의 기억에 남은 사건은 다음과 같다. 소싯적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공산당원으로 임명되는 최상의 특혜를 누렸다. 성적, 교우관계, 리더십 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최우수 학생으로서 수려한 외모까지 돋보였다. 그는 마치 정해진 것처럼 의약대에 진학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공산당의 수혜로 같은 도시의 국립병원에 바로 취직했다. 불과 1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할 만큼 승승장구했던 그는 대학으로 돌아가 일년간의 연구 과정만 마치면 다음 승진을 보장 받은 상태였다. 이 때 마침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그가 출근하던 길목엔 학생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정부를 성토하곤 했는데 당시 이십대 중반에 불과했던 그는 조용히 지나치지 못했다. 매일 십여분 정도 근처를 서성이다가 병원에 도착하면 동료나 직원들에게 자신이 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 없이 지껄였다. 자신의 지위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사태가 평정된 후 함구령이 내려졌고 병원 내에 정부에 반하는 언동을 한 자가 있다면 색출해 내라는 명령이 떨어졌단다. 그 길로 야반도주를 택한 그는 정처 없이 호주로 망명했으며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채 시드니에서 살고 있다.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무심히 슬퍼하다가도 자신이 한 때 ‘선택 받은 자’였다는 사실을 퍼뜩 상기해낸 듯 “중국은 위대하며 공산당은 영원하다!”라고 부르짖는다. 그럴 때면 어린 아이처럼 희색이 만면하다. 사실 그는 매우 온순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책 없는 순진함은 진지한 사유의 결핍으로 이어져 누가 보아도 좀 미친 것 같았으며 실제로도 변덕이 죽 끓듯 하여 주변인들로부터 실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할 정도였다.
물론 이 사례를 두고 정신 질환을 운운할 수는 없다. 이 정도의 성격적 결함은 흔히 있을 수 있는 경미한 것이며 이보다 더한 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비록 앞서 언급한 사고를 제외하고도 줄곧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긴 했으나 이 의사는 지난 수십 년간 인술을 베풂으로써 환자들의 진심 어린 존경을 받았으며 필자 역시 그의 친절함에 매우 경도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사주는 오행의 균형이 깨진 것일 뿐 결정적인 정신질환의 요소는 없기에 심리가 다소 불안하기는 해도 질환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필자가 경계하는 것은 이처럼 사주가 안정되지 못한 경우 외상이나 기타 환경적 영향을 격하게 받을 때 그 심각성이 두드러질 수 있으며 실제로 정신분열증은 목기 태과와 관련되어 있음이 역술가, 한의사, 심지어 명리학을 연구한 한국의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 이미 밝혀졌다. 요컨대 정신질환이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물론 오행의 편중 외에도 사주에는 정신질환에 기여하는 더욱 강력한 원인과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인들이 중첩될 때 반드시 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필자는 수 없이 보아왔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정신질환을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심신의 균형이 깨진 결과로 보기보다는 빙의나 저주, 사기의 침입으로 인해 발생한 괴이한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때문에 무속의 힘을 빌려 치병하려 들었고 한의학 역시 그러한 대세에 밀려 정신 분야의 연구에 소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는 정신과 의사들이 명리학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미래에 한국의 역학계를 선도할 이들은 명민한 한의사들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누가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한다는 것이 격려받아 마땅할 일이다.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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